개봉 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준희는 ‘시크하고 도도하다’는 주변의 선입견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너무도 러블리하고 달달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영화 속 그가 연기한 ‘은수’는 마지막 조금은 오글거리는 장면으로 박정우(윤계상)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고준희에게서 불어는 풍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혹시 사랑을 하는 중일까.
“제발 사랑 좀 하고 싶어요(웃음). 요새 너무 외로워요. 하하하. 절 요즘 미치게 하는 것은 단연코 사랑입니다(웃음). 저도 벌써 서른 살인데 좀 연애다운 연애 좀 해보고 싶어요. 근데 저한테 달달한 냄새가 나요? 그럼 아직도 은수가 안 떠났나? 하하하. 전 요즘 거울만 보면 자꾸 까매지는 것 같아서 속상한데. 여자가 사랑을 하면 얼굴이 편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안 그래요(웃음)”
그렇게 애기하면서도 고준희는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영화에 대한 부담감도 솔직히 있을 것이다. 주연 여배우가 영화를 끝내고 ‘흥행은 관객들의 몫이다’는 틀에 박힌 소리도 할 법하다. 좀 내숭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런 질문에 고준희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사실 예전에는 그런 내숭도 좀 부렸어요. 그래도 나도 여배우인데. 그런데 그게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더라구요. 인터뷰 때 좀 그런 모습도 보여드리고 그랬는데, 천성이 어디가나요. 제가 그냥 집에서도 그러고 평소에도 운동화에 바지 입고 다니고 그래요. 내숭? 아휴 저하고는 잘 안 맞아요. 흥행에 대한 부담은 당연히 되는데 제가 걱정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편하게 생각할려고 그래요.”
◆ 고준희, 에로영화 얘기 속 노출?
고준희가 이 영화에 출연을 결정한 뒤 남성팬들의 가슴을 설레였다. 우선 ‘레드카펫’은 섹시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다. 에로 영화 현장에서 벌어지는 얘기를 그리고 있기에 남성관객들의 관심을 끌만한 대사와 장면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야릇한 섹시 코드는 양념일 정도다. 고준희가 지금까지 보여 온 모습과는 사실 거리가 좀 있다. “혹시 고준희가?”라는 기대감이 생길 만한 부분이다.
“혹시 그걸 기대하시는 건가요? 제가 벗는 걸? 하하하. 제가 벗으면 남성 관객들이 좋아할까요?(웃음) 저 몸매 별로에요. 진짜 노출은 몸매가 끝내주는 분들이 하셔야 할 거 같아요. 함께 했던 실제 에로배우 분들 몸매를 보니 정말 ‘와우’란 말이 나오더라구요. 전 벗냐구요? 어떻하죠? 진짜 꽁꽁 싸매고 나오는데(웃음) 저희 영화가 에로 영화 현장에 계신 분들 얘기라 포인트가 그쪽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진짜는 감동이 있다는 거에요. 그 점에서 보셔도 참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에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주류 영화계의 여배우가 비주류로 정의되는 에로 영화 현장 얘기에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레드카펫’은 실제 270편의 에로 영화를 찍은 박범수 감독의 첫 주류 도전작이다. 박 감독에게 ‘에로’에 대한 타이틀은 숨길 과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러낼 과거도 아니었다. 혹시 고준희는 ‘에로’란 단어에 거부감은 없었을까.
“그런 질문도 많이 받아왔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에로감독 출신이었던 건 알고 시작했어요. 글쎄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우선 매니저 오빠가 시나리오를 주시면서 영상 하나를 보여주셨어요. 감독님이 부산영화제에서 ‘레드카펫’ 제작을 위한 피칭을 하는 영상이었죠. 그 영상에서 정말 진정성이 보이더라구요. 이런 분이라면 믿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죠. 더군다나 제가 이 영화에 마지막으로 합류했어요. 윤계상 오정세 조달환 오빠가 먼저 와 있었죠. 너무 든든했어요.”
◆ “현장 자체가 그냥 ‘레드카펫’이었죠”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아무런 고민도 없이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고준희를 마지막으로 이끈 방아쇠가 됐다. 촬영하는 기간 동안 정말 너무도 즐거웠다. 데뷔 후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이렇게 현장이 즐겁기는 처음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 다시 한 번 싱글벙글로 변했다.
“계상 오빠와는 2007년 드라마 ‘사랑에 미치다’ 이후 7년 만에 만났죠. 잘 알아요. 연기에 정말 진중한 분이에요. 제가 ‘결혼전야’를 찍고 곧바로 합류해서 분석 시간이 좀 부족했는데 오빠 도움 정말 많이 받았어요. 정세 오빠는 현장에서 모든 사람들의 활력소 같은 분이에요. 조금만 늘어지면 장난으로 분위기를 바꿔주죠. 진짜 독한 장난을 많이 치는데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요. 달환 오빠는 그냥 딱 그 모습이에요. 찬성이도 얼마나 활기찬지. 그냥 현장이 딱 ‘레드카펫’이었어요. 하하하.”
20대 초반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활동했다. 이후 중반부터는 열정에 넘쳐 일을 했다. 가장 최근부터 보자면 2011년 온스타일 ‘스타일 매거진’ MC, 2012년 tvN ‘일년에 열두남자’, SBS ‘추적자’, 지난해 SBS 드라마 ‘야왕’, 영화 ‘결혼전야’, 그리고 ‘레드카펫’까지 쉼없이 달렸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은 아닐까.
“지난 해 10월부터 하루도 안쉬었어요. 20대에는 그랬어요. 빨리 잘되고 싶었어요. 조급했죠. 이젠 몸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그냥 즐거워요. 다른 기자분이 절 보고 ‘오랜만에 보니 많이 밝아졌다’고 하시더라구요. 예전에는 제가 여배우병이 있었나봐요. 너무 죄송했어요(웃음). 농담처럼 제 대표작이 ‘단발머리’라고 했는데 이젠 ‘레드카펫’으로 좀 대신해도 될까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한 참을 수다를 떨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날따라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리던 탓에 습도가 심했다. 부스스하게 가라앉은 단발머리를 몇 번이고 손으로 넘기며 연신 투덜이다. 그 모습이 밉상이라기 보단 딱 고준희의 사랑스러움 그대로였다. 얼추 시간이 지나고 배가 고프다던 고준희. 비밀 얘기라며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배고픔이에요. 오빠 먹을 거 좀 없어요”라며 매니저를 돌아봤다.
여배우가 이렇게 내숭이 없어도 되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그게 고준희의 매력 아닐까. 그래서 요즘 극장가 흥행작 한 켠을 ‘레드카펫’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나 보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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