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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베테랑’ 정말 재미있게 해보자 만든 영화에요”

[인터뷰] 황정민 “‘베테랑’ 정말 재미있게 해보자 만든 영화에요”

등록 2015.08.19 00:23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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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마무리가 좀 그랬다. 2010년 개봉한 영화 ‘부당거래’에서 황정민은 적당한 비리와 적당한 타협으로 범죄와 그리고 힘과 얼굴을 마주했다. 세상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부당거래’ 속 황정민의 찌든 표정과 피곤한 행색은 그래서 더욱 안쓰럽고 또 그의 행동에 동정심을 던지고 싶었다. 사실 그건 영화 속 황정민에 대한 동정심이라기 보단 배우 황정민의 기술에 걸려든 관객의 항복이다. 황정민의 연기에는 동정이란 감정이 전달된다. 선인도 악인도 그의 모습을 통해 걸러지고 치환되면 그렇게 보인다. 그의 연기는 그렇게 묘한 힘을 지닌다. 그래서 때로는 슬프고 또 한 편으론 씁쓸한 뒷맛을 남길 때도 있다. 곱씹게 된다. 캐릭터가 떠오르고 인물이 되새겨지고 배우가 생각이 나며 연기가 잔상처럼 흔들린다. 물론 황정민의 연기가 그런 틀 안에 갇혀 있는 한계성을 지닌다면 충무로의 먹이사슬 상위권에 자리한 그의 위치가 너무도 거품이 씌어 있단 역설이기도 하다. 영화 ‘베테랑’의 ‘서도철’과 황정민 두 인물의 폭발성과 너무도 진한 인간미가 단순하게 ‘동정심 전염’ 연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황정민의 힘이고 황정민의 존재감이다.

이미 5년 전 ‘부당거래’로 류승완 감독과 한 번 만났었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꽤 즐거운 기억만이 머릿속에 남아 있단다. 형사물이지만 ‘부당거래’는 감정의 굴곡이 극심했던 작품이다. 배우로선 상당히 소모적인 작품이었다. 육체적이든 감정적이든. 사실 황정민은 재미있는 사나이다. 인간미가 넘치는 사나이다. 때문에 ‘부당거래’의 류승완 감독과 또 다시 형사물인 ‘베테랑’을 선택한 것도 납득이 됐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사실 어떤 작품을 하든 스트레스 안 받고 할 수는 없어요. 이번에는 정말 류 감독과 함께 재미있는 거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함께 했어요. 저도 그랬고, 류 감독도 그랬고. 우리가 즐거우면 분명 관객들도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게 이 영화의 시작이었던 거 같아요. 이렇게 해보면 재미있을까? 어떻게 관객들이 반응할까? 그 부분이 정말 묘하게도 잘 맞아 떨어졌던 작품이에요. 결과물만 봐도 그 고민이 허투루 했던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죠.”

그의 말처럼 ‘베테랑’ 속 황정민은 너무도 즐거워보였다. 아니 황정민을 통해 살아난 ‘서도철’이란 인물은 러닝타임 내내 즐기면서 행복해했다. 우선 시원스러웠다. 고민을 하지도 않았다. 본능으로 범죄를 직감했다.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인물이 서도철이었다. 형사는 ‘서도철’과 같아야 한다는 교본처럼 보이기도 했다. 황정민의 본능과 서도철의 본능이 맞닿는 순간이었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맞아요. 제가 생각한 서도철이 바로 본능적인 인물이었어요. 사실 본능이 먼저 움직이게 되니 순간순간의 애드리브도 많았죠. 매 장면이나 씬 마다 조금씩 들어갔던 것 같아요. 물론 전체의 틀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은 있었죠. 감독과 상의를 하면서 조금씩 만들어 갔어요. 영화 초반 범죄 현장에서 춤추는 거, 마지막에 ‘이 새끼 싸움 존나 잘해’ 등이 현장에서 만들어 진 애드리브에요(웃음).”

황정민은 언론시사회 그리고 기자간담회 연이은 매체 인터뷰에서 ‘서도철’과 자신의 공통점을 강조했다. 작품에 대한 애정, 당연하고 뻔한 립서비스용 발언이 아니었다. 그는 눈빛에 힘을 주며 말했다. 자신의 배우적 집요함과 형사 서도철의 직업적 집요함은 분명 하나라고. 때문에 황정민이 연기한 서도철의 느낌이 지금까지 봐온 여타 형사물의 뻔한 캐릭터가 안된 것 같기도 하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지금까지 내가 맡아온 배역들 모두 나와 조금씩은 비슷하죠. 배우들은 다 그래요. 캐릭터 안에서 자신을 찾을려고 해요. 하지만 서도철의 집요함은 분명 나에게도 있어요. 사실 진짜 비슷한 건 나도 그렇고 서도철도 그렇고 집에서 찍소리 못하는 거죠. 하하하. 저도 직업이 배우일 뿐이지 그냥 남편이고 아빠고 평범한 사람이에요. 서도철도 마찬가지고. 영화 속 서도철이 집에 들어와서 하는 행동 우리 마누라가 보면 진짜 깜짝 놀랄 거에요. 제가 실제로 집에서 그러니깐(웃음)”

평범한 소시민이자 아빠인 서도철이다. 하지만 그런 서도철이 영화 속에서 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말 얼굴이 변한다. 그건 인간적인 분노이면서도 직업적 직감이다. 그는 범죄에 대한 냄새를 맡고 달려든다. 영화 전체로 보자면 전반전의 서도철과 후반전의 서도철이 나오게 되는 데 바로 그 중간에 걸친 변환점이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서도철도 아빠잖아요. 아들에 대한 마음, 가족에 대한 마음이 우리에겐 또 누구에게나 같은 거구요. 배기사의 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아빠가 당한 일을 겁에 질려 얘기를 할때 정말 가슴 아팠죠. 영화 속에서 보면 서도철의 아들과 배기사의 아들 나이가 같게 나와요. 아주 작은 디테일이라고 할까. 순간적인 감정 이입이죠. 사실 우리 아이도 영화 속 아들과 같은 9세인데, 실제 출연을 시킬까도 생각했었죠. 하하하. 근데 자는 녀석을 들어봤는데 ‘안되겠구나’란 생각이 단 번에 들데요. 너무 커 이 자식이. 하하하.”

무엇보다 이번 ‘베테랑’의 묘미는 액션이다. 리얼함으로 승부를 건다. 류승완 감독과 함께했던 전작 ‘부당거래’에서도 액션은 사실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베테랑’은 진짜 같아야 했다. 멋지게 합이 짜여진 액션이 아니다. 실제 거리 싸움이고 막싸움이다. 사실 형사 액션물의 리얼한 액션은 멋들어진 합의 액션보단 ‘베테랑’의 실전 액션이 더 어울려 보였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액션이야 전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 밖에 없죠. 하하하. 류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이 진짜 ‘베테랑’이잖아요. 우선 ‘부당거래’때의 액션과도 좀 차이가 있어요. ‘부당거래’때의 최철기란 인물은 속내를 들키면 안 되는 약점이 있어요. 그래서 액션에서도 어떤 포인트에서 멈칫하는 게 있죠. 반면 서도철은 그냥 쏟아내요. 치고받고 던지고. 하하하. 시원해요.”

그런 시원함의 끝은 황정민의 몫이 반이었고, 그 반대편에 선 유아인의 몫이 반이었다. 황정민은 잡아야 한다. 유아인 도망쳐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지독스러울 정도다. 황정민의 폭발성은 사실 유아인의 존재감이 받쳐준 결과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선배 황정민 역시 유아인의 존재감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상대역이잖아요. 서로 통해야 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반대편에 선 인물이기에 현장에선 말도 안했어요. 그저 내 머릿속에는 ‘저 인간 쓰레기 새끼를 어떻게 해야 잡지’란 생각 뿐이었어요. 그렇다고 그 생각이 유아인을 가리키는 건 아니에요. 하하하. 그냥 내 눈에 촬영 기간 동안에는 유아인이 아닌 조태오였어요. 보셨으니 느끼셨잖아요. 정말 나쁜 새끼에요. 하하하.”

그 나쁜놈은 유아인이란 인물을 통해 200% 살아났다. 여러 관계자들이 그랬다. 연출을 맡은 류승완 감독조차도 유아인을 통해 ‘조태오’를 끌어내야 한단 점에서 처음에는 겁이 났었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황정민 역시 그랬을까. 유아인도 반항아 캐릭터를 많이 해왔지만 모두가 동정표를 받는 인물들이었다. 지금까지의 황정민과 비슷한 캐릭터였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내가 상대할 조태오가 어떤 놈일까 막연히 상상을 해보죠. 이런 모습이고 어떻게 살아온 인물이겠다. 뭐 이런 정도요. 유아인은 그 이상을 만들어 왔어요. 서도철에 대한 응원은 반대로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가 나쁜놈이기에 가능한거죠. 정말 잘했잖아요. 글쎄요. 이제 겨우 서른 살인데, 저런 에너지와 디테일을 가진 배우가 있나요? 내가 서른 살이었을때 ‘와이키키 브라더스’ 할때였어요. 전 그렇게 안했어요. 아니 못했죠. 정말 대단한 배우에요.”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함께 한 ‘베테랑 팀원’에 대한 애정도 빼놓지 않는 황정민이다. 광역수사대 팀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손발을 맞춰온 한 팀처럼 보였다. 베테랑 중에 베테랑만 모인 진짜 형사들처럼 보인다. 주고받는 대화도 맛깔스럽다. 맛이 느껴졌다. 황정민은 이런 칭찬에 ‘의도했던 부분이 바로 그 점이다’며 좋아했다.

“나 혼자 베테랑으로 보이면 절대 안되는 거에요. 팀원 모두가 베테랑이라야 영화 ‘베테랑’이 완성되죠. 실제 영화 속 모습처럼 현장에서도 그랬어요. 하하하. 난 윽박지르고, 달수 형은 달래고(웃음). 윤주가 참 고생 많이 했어요. 모델쪽에선 최고의 베테랑인데 연기는 처음이잖아요. 그런데도 감이 있어요. 순간순간의 집중력이 너무 좋더라구요. 백지 같은 모습이라 내가 줘도 달수 형이 줘도 뭔가를 받아내는 재미가 전해져 왔죠.”

황정민은 ‘신세계’와 ‘국제시장’의 연이은 성공 이후 선택한 영화가 바로 ‘베테랑’이다. 특히 이번 여름 극장가 흥행 시장에서 ‘빅4’로 불리는 한국영화 4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다. 전작 ‘국제시장’의 1000만이란 숫자 이후 또 다시 달려야 할 ‘베테랑’의 수장으로서 부담감도 분명할 것 같다.

사진 = 이수길 기자사진 = 이수길 기자

“달수형을 보고 1억 배우라고 다들 그러시잖아요. 그런데 달수 형은 1억이란 숫자 진짜 싫어하세요. 아시죠. 하하하. 저도 그래요. 1000만? 그저 숫자잖아요. 흥행은 제가 선택하고 또 제가 잘한다고 오는 것도 아닌 거 같아요. 관객 분들의 그릇이죠. 내가 잘했는데 결과도 좋으면 금상첨화죠. 하지만 안 되면 ‘내 그릇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에요. 숫자? 의미 없는 허수일 뿐이에요. 배우에겐.”

‘베테랑’ 개봉 이후 올해 말 황정민은 ‘히말라야’로 다시 돌아온다. 산악 영화다. 정말로 힘들었단다. 국내에선 레퍼런스 자체가 없는 영화이기에 모든 것이 생소했다고. 실제 히말라야에도 올라봤단다. 4000m의 숫자가 주는 압박이 엄청났다고. 혹시 ‘히말라야’와 ‘베테랑’ 가운데 다시 찍어야 한다면? 황정민은 주저 없이 ‘베테랑’을 선택했다. “재미있자고 찍은 영화라니까요. 하하하.”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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