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투자 가능성···협력사 지분 취득해 영향력 넓혀와실질적 지배 무시 못해···이사회 진입 등 입김 세질 듯KCGI 역공카드···오너일가 부정적인 국민연금도 변수
24일 항공업계 등에 따르면 델타항공은 지난 2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항공과의 조인트벤처 관계를 더 강화하기 위해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 지분 4.3%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또 양국 정부의 규제 승인을 얻으면 한진칼 지분율을 10%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델타항공의 행보가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한다. 델타항공은 조 회장이 2000년 창설을 주도한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초창기 회원사로, 지난해 대한항공과 조인트벤처를 체결하며 가장 높은 수준의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사실상 ‘혈맹관계’를 맺은 것. 조 회장 일가와 수십년간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만큼, 과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델타항공의 이번 지분 매입으로 한진칼 지분 구조는 고(故) 조양호 전 회장 일가를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28.93%, KCGI가 15.98%, 델타항공 4.30%, 국민연금 4.11% 등으로 재편됐다. 단순 수치상으로 파악되는 조 회장 우호지분만 33.23%로, KCGI의 2배가 넘는다.
일각에서는 단순한 지분 투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델타항공은 에어프랑스와 그루포에어로멕시코, 중국 동방항공, 브라질 골항공 등 협력관계에 있는 항공사 지분을 취득하며 글로벌 항공 시장 내 영향력을 강화해 왔다. 한진칼 투자 역시 주도권 확보 전략의 일환으로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투자 대상이 한진칼인 점을 고려하면 단순 투자로 보기는 힘들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국내 항공법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적사에 대한 지분 투자는 49%까지만 허용된다. 그 이하라도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으면 면허 취소 사유다.
델타항공이 밝힌 지분 투자 계획은 10%로 대한항공 지분을 사들이더라도 국내법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한진칼을 선택한 것은 조 회장의 우군을 자처한 것이라는 해석이 자연스럽다.
또 델타항공은 지난달부터 미국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를 창구로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조 전 회장 별세 전 2만5000원대 안팎 수준이던 주가는 최근 4만대까지 치솟았다. 골드만삭스는 비교적 주가가 높게 형성된 이 시기에 주식을 매입했는데, 이익을 보는 장사는 아니다.
실질적인 지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델타항공은 조인트벤처를 운영 중인 에어프랑스의 지분을 취득한 후 이사회 자리를 꿰찼다. 조 전 회장 별세로 공석이 된 한진칼 이사회 진입도 노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근거다. 또 한진칼과 대한항공 모두에 입김이 닿는 만큼, 델타항공에 유리한 경영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지만 델타항공이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경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고, 당장은 실지배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상황이다.
KCGI는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취득으로 열세에 몰리고 있지만, 경영권 압박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KCGI는 “한진그룹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함께 하자”면서 “델타항공 최고 경영자인 에드 바스티안을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고 회유에 나섰는데, KCGI와 델타항공이 연대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하는 이유다.
KCGI가 새로운 역공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새로운 투자자를 확보, 주식를 추가로 매입할 것이란 의견이다. 현재 주가가 급락하고 있는 만큼, 지분율을 확대하기에는 최적의 기회다.
하지만 결국에는 지분을 팔아 투자금 회수에 나설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제기된다. KCGI가 장기간에 걸쳐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사모펀드인 만큼 눈에 띄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한진칼 주가는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조 회장 우위로 흘러가면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 KCGI의 한진칼 지분 평균 매입 단가는 3만4000원선으로 추산되는데, 이날 오전 주가는 3만2000원선에 머물고 있다.
총수일가에 우호적이지 않는 국민연금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4대주주다. 올해 3월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회사·자회사와 관련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사는 이사직을 즉시 상실한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제안하며 경영참여를 시작했다. 당시 국민연금의 움직임을 두고 시장에서는 ‘배임·횡령’ 혐의를 받는 조 전 회장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연금이 KCGI 편을 들어줄 경우, 소액주주들의 표심 향방도 갈릴 수 있다.
하지만 공적기관으로서 경영권 다툼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해 말 7.34%이던 지분율을 4%대로 낮춘 이유도 어느 한 편을 들어주기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쏠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델타항공이 지분을 확보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할지 여부는 두고봐야 한다”면서 “수세에 몰린 KCGI가 막판 총공세를 퍼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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