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개발 기간만 30년···국내는 5년 채 안돼기업유치 선행하고 탄력적인 주택·교통망 갖춰슬럼화 방지···자연·역사 보존 관광수요도 발생
지난 25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최근 출범한 ‘신도시 포럼’ 축사에서 남긴 말이다. 신도시 개발에 대한 청사진으로 가득하지만 지금까지 국내 신도시 개발 역사는 밝지 않았다. 그나마 성공 사례로 분류되는 분당, 판교 등을 제외하면 심각한 교통문제와 기업유치 실패로 베드타운(Bed-Town)화 돼 버린 곳이 더 많은 실정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집값이 천정부지로 뛸 때 마다 보여주기식 공급으로 신도시 카드를 사용해 왔고, 토지 분양 이후에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눈에 보이는 집부터 짓고 보자’는 식의 개발은 국내 신도시를 단순 위성도시로 전락시키고 양극화로 이끌었다.
◆프랑스, ‘살고 싶은 도시’ 모토로 30년 동안 신도시 개발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 ‘세르지 퐁트와즈’ 신도시 개발 계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기간‘ 이었다. 프랑스 수도인 파리의 인구 밀집도를 낮추기 위해 시작된 신도시 개발은 1969년에서 2000년까지 30년 넘게 진행됐다.
도시가 자족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개발 기간을 두고 진출기업수(3500여개)와 고용인구수(8만명) 목표를 뚜렷하게 세웠다. 기업 유치를 가장 선행 정책으로 내세워 기업활동이 가능 하도록 세르지 생크리스토프 기차역 주변으로 교통, 통신 등 기반시설을 갖추고, 개발 당시부터 6개 구역으로 자족용지를 분할해 어떤 종류의 기업이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디테일도 신경썼다. 그 결과 현재 목표치였던 3500여개 기업이 진출해 있고, 일자리 역시 8만여개에 이른다.
더 주목할만한 점은 초기 개발 후에도 지속적인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해당 신도시에 ▲기업 건축에 대한 규제 완화 ▲계속적인 기업 진입을 위한 입지 확대 등을 단행했다.
일자리가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인구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탄력적으로 주택과 교통을 공급했다. 단 5~6년 만에 주택 분양을 완료하는 국내와 달리 30년 동안 유동적으로 집을 공급했기 때문에 주택난이나 교통문제가 거의 없었다.
비단 프랑스의 ‘세르지 퐁트와즈’ 뿐 아니라 영국, 일본에서도 신도시 개발 기간을 길게 잡고 있다. 영국의 밀턴 케인즈 신도시는 1967~1994년까지 28년, 영국 런콘은 1964~1994년까지 31년이라는 기간동안 개발을 진행했다. 가까운 일본 역시 하나의 신도시 개발에 19~26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반면, 국내 신도시 개발 기간은 길어야 5년이 채 안된다. 국내 신도시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불리는 분당도 1989~1993년까지 단 4년간 개발이 전부였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권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명분하에 진행된 정치적 신도시 조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기간이 짧다보니 전문가들이 신도시 개발에 참여할 여지도 없었다.
이 때문에 국내 신도시는 주거의 물리적 틀과 시설만을 우선 공급해 왔던 것이 현실이다. 당장 최근 발표된 3기 신도시 개발 계획안만 하더라도 ‘어느 지역에 몇 만가구를 짓겠다’라는 문구가 주를 이룬다. 계획안에 표기 돼 있는 미래 지향적 기간은 ‘2026년 이후 4만4000호’가 전부다.
자족용지와 교통대책 역시 구상은 넘쳐나지만 구체적인 안은 부족하다. ‘기존 신도시 대비 2배 수준’,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기업지원허브 지원’ 등을 제안하지만,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다. 교통대책 역시 ‘지구계획 수립 과정에서 변경가능’이란 문구를 삽입해 보는 이를 난해하게 만든다.
만약 정부가 보다 장기적인 3기 신도시 계획안과 함께 1·2기 신도시 교통대책과 기업 유치 방안을 함께 가지고 나왔다면 지금처럼 기존 신도시들의 반발의 사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 부동산 업계 전문가는 “해외 신도시는 몇 십년을 두고 도시가 자족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토지 분양이 끝나고 계획대로 집만 지어지면 나몰라라 하는 식”이라며 “현재 일산 신도시와 검단 신도시 주민들이 반발하는 핵심도 이러한 소외감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민 심리까지 어루만지는 섬세한 신도시
프랑스 신도시 개발 중 인상적인 대목은 도시 슬럼화 방지를 위한 노력이다. 세르지 퐁트와즈에는 중저층 아파트가 55%, 단독주택이 40% 가량을 차지하며, 평형은 대형부터 소규모까지 한 구역에 골고루 배치돼 있다. 특정한 지역이 과도하게 부동산 값이 오르거나, 부촌으로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프랑스 정부는 신도시 초기 입주자들이 원도심과 떨어져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방법도 고심했다. 세르지 퐁트와즈 중심부에 벨베더르타워를 설치해 파리에 라데팡스 그랜드아치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타워는 파리 도심의 루브르박물관과 샹세리제거리, 개선문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 중심축’의 역할을 했다. 이는 파리와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한 배려로 평가된다.
이 뿐 아니라 신도시 초기 입주자들의 기반 시설 부족 불편을 줄이기 위해 레저‧상업‧보육 시설을 우선적으로 마련했다. 이 과정에는 1000여명이 넘는 도시계획 및 건축가들이 개발에 참여했다고 알려졌다.
영국의 런던과 버밍엄 중간에 위치한 밀턴케인스 신도시도 주목할만 하다. 67년 신도시가 기획됐지만 70년 첫 삽을 뜨기까지 3년에 걸쳐 개발계획이 수립된 이곳은, 철도·도로 등 기본 인프라를 먼저 건설하고 개발초기부터 남녀 성비, 주민 연령층까지 고려해 도시계획을 짰다.
◆‘역사’가 숨쉬는 신도시···관광 수요도 끌어들여
‘있는 것’을 보존하는 데 역점을 둔 신도시 개발은 아직 국내에선 생소한 느낌이다. 우리에게 신도시 개발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토지를 매입해 개발한 후 아파트와 교통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반면 세르지 퐁트와즈 신도시는 기존에 있던 역사적인 유물과 건축물, 포도밭, 농가를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특히 13세기에 건립된 로마카톨릭 교회는 대표적인 문화 유적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녹지와 숲도 자연 그대로 둬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도록 했다.
프랑스 개발공사(EPA) 홍보팀은 “프랑스 신도시들은 역사가 있는 신도시로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을 보존하려 애썼다”며 “수 백년 된 성당이나 성곽, 철길을 보기 위해 고고학자와 관광객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뉴스웨이 이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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