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장 사업 총괄하는 정기선, 경영 승계 속도지난해 결혼하며 교육자 집안과 혼맥 형성동생들 경영 참여 안해···형제간 다툼 無굵직한 M&A 마치면 ‘오너 체제’ 전환 예고
현대중공업 후계자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경영지원실장)의 경영 보폭도 넓어지고 있다. 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해 말 ‘미래위원회’를 발족하며 정기선 부사장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그룹이 추진하는 로봇·바이오·인공지능(AI)·수소·에너지 등 신성장 사업을 사실상 정 부사장이 총괄하는 것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더 엄격해진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로 친환경 선박 기술력을 높여야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어서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이니깐 충분한 준비를 해야 돼서 최근 ESG위원회를 꾸려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기선, 정몽준 자녀 중 나홀로 경영 참여=1973년 설립된 현대중공업은 고 정주영 현대 창업자가 울산만 인근에 조선소를 세우면서 세계 1위 조선사로 일궈낸 기업이다. 여섯째 아들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맡아오면서 국내 10대 그룹 반열에 올려놨다. 하지만 정치에 뜻이 깊어 실제 정 이사장이 그룹 경영에 관여한 기간은 길지 않다. 정기선 부사장 승계 작업과 동시에 현대중공업은 정 이사장의 최측근인 권오갑 회장을 필두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 중이다.
정몽준 이사장은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딸인 김영명 씨와 연애 결혼을 해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현재 후계구도를 보면 장남 정기선 부사장만 경영에 나홀로 참여하고 있다. 직함은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 외에도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와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본주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계열사 중에선 현대글로벌서비스 등기이사로 있다.
장녀 정남이 씨는 현대중공업이 아닌 아산나눔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은 현대중공업, KCC, 현대해상,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등 ‘범 현대가’ 그룹이 설립에 참여한 사회복지재단이다. 컨설팅 회사(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다 2013년 아산나눔재단에 합류한 정남이 씨는 현재 아산나눔재단의 창업지원센터 ‘마루180’을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발굴하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차녀 정선이 씨는 경영엔 관심이 없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차남 정예선 씨는 세월호 사건 당시 유가족 관련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아직 학업을 마치지 않았다. 학업을 끝내면 형 정기선 부사장을 따라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재벌가 혼맥 벗어나···대를 잇는 연애 결혼 눈길=현대중공업 후계자들은 대기업 간에 사돈을 맺는 재벌가 혼맥 전통에 다소 벗어나 있다. 정몽준 이사장은 아내 김영명 예올 이사장과 1년여 간 연애한 뒤 1979년 결혼했다. 지난해 7월 노총각 딱지를 뗀 정기선 부사장은 재벌가 자녀가 아닌 교육자 집안의 딸 정모씨와 혼인 서약을 맺었다. 정 부사장의 아내가 일반인이기 때문에 아직 언론에 얼굴이 공개된 것은 없다.
정기선 부부는 연세대 대학 선후배 사이로 부인 정모씨는 대학 졸업 후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아내 정모씨가 대학 시절 아산재단 소속 장학프로그램인 ‘아산서원’의 온라인 홍보단으로 활동했다는 이력이 알려진 것 정도다.
장녀 정남이 씨는 2017년 6월 사업가 서승범씨와 결혼했는데, 서씨 매형이 두산가 박지원 부회장이다. 정남이씨 결혼식 가족사진에 박지원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재계에 알려졌다. 서승범씨는 철강업체 유봉의 대표이사로 있다. 차녀 정선이씨는 2014년 8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만난 백종현씨와 연애 결혼했다. 막내 아들 정예선씨는 미혼이다.
◇경영권 싸움 없는 ‘원톱’=현대중공업은 자식들 간 경영권 싸움이 없기로 유명하다. 정남이·선이·예선 3명의 동생들은 그룹 경영을 놓고 단 한 번도 잡음을 낸 적이 없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정기선 부사장은 육군 ROTC(43기)로 군복무를 마친 뒤 2009년 현대중공업 대리로 입사했으나 미국 유학길에 오른 뒤, 동아일보와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을 거쳐 2013년 6월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재입사했다.
후계자답게 2015년 상무, 2016년 전무를 거쳐 2017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참여 범위를 늘려갔다. 그 사이 두 여동생은 경영 참여 욕심이 없이 각자 길을 가고 있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5.26%를 보유해 아버지 정 이사장(26.6%)에 이어 개인 2대주주로 있다. 향후 지분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 이사장이 적절한 경영권 승계 시기를 저울질 한 뒤, 지주사 보유 지분을 아들에게 넘기고 증여세 납부 등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 승계 작업을 완료할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분 10.61%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있으나 우호 지분인 아산사회복지재단 1.92%, 아산나눔재단 0.49% 등을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약 34.34%에 이른다.
정 부사장과 재계 친분이 있는 동갑내기 인물로는 장선익 동국제강 상무, 유석훈 유진그룹 상무 등이 있다. 이들은 서울 청운중학교 동기동창으로 3세 경영에 나서고 있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여서 지난해 결혼식장에 장선익 상무는 물론, 김동관 사장이 참여해 시선을 끌었다.
정 부사장이 그동안 별다른 사건사고에 연루된 적이 없다는 점도 주목받는다. 재계에선 밥상문화를 중요시하는 현대가 가풍 영향으로 정 부사장의 사생활이 흠잡을 곳은 딱히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중공업그룹 한 직원은 “인품이 좋다”며 “회사 사옥에서 직원들과 마주칠 때면 따뜻하게 인사도 잘 해주시고, 윗사람들을 잘 챙기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몽준 이사장이 학군사관으로 군 생활을 마쳤고 정기선 부사장도 수색대 소대장(중위)을 하고 전역하며 몸가짐이 바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결혼식 땐 옛 부대 동료들이 축하해줄 만큼 인간관계가 좋다”고 귀띔했다.
◇두산인프라·대우조선 인수 후 오너 체제로=현대중공업은 최대주주인 정몽준 이사장이 정계 입문한 1988년 이후 30여년 만에 전문경영인체제에서 ‘오너 체제’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올해 두산인프라코어 및 대우조선해양 인수 작업을 완료하면 ‘정주영→정몽준→정기선’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현대중공업 경영 승계가 더욱 뚜렷한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재계는 평가한다.
올 연말 현대중공업그룹 인사에서 정 부사장의 사장 승진은 유력하게 점쳐진다. 2017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올해 4년째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업계 등에서 두산인프라코어와 대우조선 기업결함이 마무리되면 ‘정기선 체제’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아직은 경영 성과를 평가하긴 이른 감이 크다.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전문 경영진들이 해외 수주 등 주요 사업을 도맡아 왔다. 때문에 정 부사장이 앞으로 추진하게 될 신사업에서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본격적인 경영 역량을 외부에서 평가받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기업은 경영진 세대 교체가 빨라지고 있으나 현대중공업은 정몽준 이사장 측근들이 경영진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권오갑 회장은 올해 한국 나이로 71세가 됐다. 결국 정기선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고 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경영진 세대교체를 통해 오너 경영체제를 구축할 전망이다.
남은 단기 과제는 빅딜의 마무리다.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한 현대중공업지주는 자회사 현대건설기계 사업 시너지를 위해 결단을 내렸고 통합회사는 건설장비 시장에서 단숨에 ‘글로벌 톱10’에 진입하며 사업 확대 기반을 마련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한국과 유럽연합(EU)·일본·중국·카자흐스탄·싱가포르 등 6개국 경쟁 당국에 기업결합 심사를 신청했다. 양사 합병이 마무리되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아래 현대중공업, 삼호중공업, 미포조선, 대우조선 등 4개의 사업회사를 거느리는 구조로 재편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결합 심사는 일본·EU·한국 세 곳이 남아 있는데, 연내 심사 승인은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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