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수단 등장 이후 끊임없이 존재를 지켜온 역할이 있다. 흔히 말하는 운전자(Driver)다. 그리고 '운전'이라는 노동 행위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 택시와 렌탈의 구분이 이루어졌다. 이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운전자에게 일정 비용을 내고 이동을 하면 택시이고, 운전 노동을 자신이 직접 수행하되 이동 수단만 빌려 이용하면 렌터카다. 국내 여객운수사업 또한 택시와 렌터카를 운전자 여부로 구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렌탈도 택시처럼 누군가가 운전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해 주목받았다. 그러자 택시는 즉각 반발했다. 허가받은 사람만 운전 노동에 종사토록 규정한 제도를 앞세워 '불법'으로 몰아세웠다. 이른바 '택시 면허'다. 물론 오랜 시간 고착화된 면허 거래에서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점을 우려하는 속내는 감추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부동산처럼 오르내리는 면허 거래 가격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면허'라는 제도가 오히려 모빌리티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면허 사업은 굳이 사업자가 투자할 이유도, 서비스를 개선할 이유도 없었던 만큼 '택시'는 언제부터인가 불편함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그렇다고 마땅한 탈출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는 사업자에게 무료로 면허를 내주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면허가 돈으로 거래된 탓에 보상 방안이 없어서다. 발전 없는 택시 대체를 위해 여러 모빌리티 스타트업이 뛰어들었지만 그때마다 택시는 면허 가격 하락을 이유로 반대했다. 결국 금전적 보상 없이는 혁신 자체가 어려운 구조로 고착됐다.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를 로봇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초창기 로봇 운전자 도입 배경은 운전 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교통약자를 위한 노력이었지만 지금은 인간 역할을 로봇에게 맡겨 이동 사업의 수익성 증대로 명분이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기술 혁신을 반대하는 곳은 당연히 운전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집단이다. 실제 통행량이 많지 않은 일정 구간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화물의 경우 이미 운전자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때마다 운전자의 반대가 적지 않아 기술의 상용화도 더디게 이루어지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교묘한 줄타기를 한다. 기술 혁신을 지원하면서도 한편에선 운전자 배제를 우려한다. 여기서 지원과 우려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투표 가능 숫자이고, 이때 시선은 어쩔 수 없이 사람 운전자로 많이 모일 수밖에 없다. 사람을 대신하는 운전 로봇에게는 참정권이 없는 탓이다. 다시 말해 정치는 필연적으로 모빌리티 혁신의 발목을 잡아야 하는 한계 집단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동 서비스 공급자보다 이용자가 월등히 많다는 점에서 때로는 기술 혁신을 통한 모빌리티 산업 전환을 외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용자는 숫자로 측정 가능한 집단이 아니어서 목소리만 낼 뿐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요즘 택시를 두고 시끄럽다. 표면적인 문제는 이용자가 많을 때 운행하는 택시가 적다는 점이다. 그럼 공급을 늘리면 된다. 하지만 수익이 적어 운전 노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 문제 해결 방안은 매우 명료하다. 운전 노동의 소득이 증가하면 된다. 이 말은 운전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비용을 더 내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용자는 굳이 비싼 값을 치러야 할 명분이 없다고 반발한다.
운전자가 친절한지, 목적지로 이동시켜주는 이동 수단이 새것인지, 운전을 안전하게 하는지 등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이런 소비자 평가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택시 업계 반발로 무산됐다. 이용자는 서비스 차별화를 원하는 반면 이동 서비스 공급자는 서비스 획일화를 원해 벌어지는 갈등이다. 그렇다면 중간 지점이 보인다. 차별화와 획일화를 섞으면 된다. 획일화는 공공으로 운영하고 차별화는 민간으로 양분하면 된다. '택시'라는 글자 뒤에 '서비스'를 붙여 '택시 서비스'라 하지만 실제 '서비스' 개념은 별로 없으니 제대로 나누자는 것이다.
뉴스웨이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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