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사들···원자잿값 상승에 대출 중단 겹악재갈수록 미착공 비율 높아져 악성 채무 전환 우려까지부동산PF 대출 112조, 돈줄 막혀 금융위기로 번질수도과거에도 미착공 PF로 인해 10년 가까이 골머리 앓아
부동산 호황에 기대 아파트 수주를 늘리면서 남발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서가 시장 침체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가파른 금리 인상 여파로 부동산시장이 침체하면서 부동산 PF대출의 연쇄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건설·부동산발(發) PF 부실 사태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설사들의 PF 대출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자칫 금융권 위기로도 번질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PF 보증 여파로 40여 곳의 건설사가 일제히 문을 닫은 줄도산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중견건설사 부도 공포 확산···과거에도 40여 곳 건설사 문 닫아 = 부동산 PF는 건설사가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올린뒤 분양 수익을 내는 구조다. 개발사업의 미래가치를 보고 자금을 미리 빌려주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부동산 호황기가 지속하자 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도 덩달아 급증했다.
25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국내 건설사 20곳의 PF 보증 규모는 18조원으로 2018년 말(12조원)보다 5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사의 PF 보증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9년 25조원으로 정점을 찍고 줄곧 내려오다 2020년 이후 주택시장 호황기와 함께 다시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PF 대출 잔액 또한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융권(은행·보험·여전·저축은행·증권)의 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2조2000억원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인 것으로 집계됐다. 저축은행 사태 직후인 2013년 말(38조8000억원)에 비해서는 3배 규모다. 대출 연체율도 2021년 말 0.18%에서 지난 6월말 0.50%로 껑충 뛰었다.
부동산 PF는 주택 경기가 호황일 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금과 같은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투자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자잿값 폭등으로 공사비 부담까지 겹치면 부동산개발 수익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달 발생한 강원 춘천 레고랜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올 들어 부동산시장 침체로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미분양이 늘면서 투자금 회수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미 미분양이 속출하는 대구에선 시행사가 초기 대출(브릿지론)을 받아 땅을 확보하고 인허가까지 받았지만, 금융기관에서 그다음 사업 단계를 위한 본PF대출이 막혀 해당 사업장이 아예 공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수도권에서도 PF 대출이 막혀 사업이 중단된 현장이 속출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충남 지역 중견건설사인 우석건설이 지난달말 도래한 전자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지난달 만기 도래한 구매자금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거래 은행에 지급 제시한 전자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 우석건설은 충남권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중견사였다.
문제는 앞으로 PF 악재에 시달리는 건설사가 잇따를 거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말 기준 건설사가 PF 보증을 해준 사업장의 58%는 미착공 사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분양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꺾이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더 큰 리스크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시공능력평가 40여곳 중견건설사 상당수가 도산했다. PF 우발채무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다. 2008년 말 당시 미국 4위권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주택담보채권의 과잉적 투자가 결국 파산에 이르면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촉발하면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결과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폭제로 작용됐고 이같은 거센 한파는 여지없이 국내 경제에도 막대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 최고 정점에 오르며 활황기를 맞이했던 국내 주택시장은 때 아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휩쓸려 실물경제 불황에 따른 하향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대규모 분양에 나섰던 건설업체들은 막대한 PF대출 이자를 막지 못해 워크아웃을 신청하거나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어야 했다. 당시 상황과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형 건설사 PF 우려는 일러, 과거와 달리 책임준공이면 채무 인수 의무 없어 = 일각에서는 PF 사태는 중견 건설사뿐 아니라 대형 건설사들도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자금 시장이 얼어붙자 국내 주요 건설사 대부분은 사업 허가를 받고도 첫 삽을 뜨지 못하는 '미착공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대형 건설사일수록 높은 신용도, 탄탄한 재무 융통성을 바탕으로 개발사업 등에서 참여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리스크 노출이 더 클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GS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포스코건설, 한화건설,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사 상당수가 우발채무 가운데 미착공 비중이 7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2~3년간 부동산 호황기에 시행사가 부지매입 비용을 조달할 때, 시공사인 건설사가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에 착공이 늦어질수록 건설사 부담도 커지게 된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늘어난 미착공 사업장은 시장이 돌아서기 전까진 사업을 재개할 만큼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악성 채무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대형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 신용만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채권 시장에선 건설사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다만 아직까지는 대형 건설사들의 PF 우려는 이르다는 시각도 나온다. 서현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대형 건설사 PF 대출 보증잔액 규모는 올해 2분기 말 기준 4조3천억원으로 과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12조4천억원보다는 현저히 낮아진 상황"이라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8조8천억원 보유하고 있어 재무적인 완충력 또한 높아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시공사 대부분이 연대보증 등의 형태로 신용보강을 했고, 분양실패 등으로 시행사들이 부실화되면 프로젝트의 채무를 시공사가 부담해야했다"라며 "하지만 요즘에는 리스크가 적은 책임준공 형태로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책임준공이란 준공만 하면 채무인수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경태,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형 시공사 도산을 내다보는 것은 다소 앞서간 추측"이라며 "가려져 있던 불확실성이 측정 가능한 위험으로 드러난 것이며 주택 및 분양 경기와 관련해 건설사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악재는 올해 다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뉴스웨이 김소윤 기자
yoon13@newsway.co.kr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