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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행동주의 투자와 ESG : 한국 맥락에 부합하는 방향성 모색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행동주의 투자와 ESG : 한국 맥락에 부합하는 방향성 모색

등록 2023.03.22 09:09

제프 우벤은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다. 그는 1990년대 피델리티 밸류 펀드의 운용을 맡아 최고의 성과를 낸 바 있다. 이후 그는 피델리티를 나와 '가치투자'와 '행동주의'를 결합한 '밸류액트'라는 운용사를 설립했다.

그는 2020년 이곳을 은퇴하기 전까지 20여년간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대상으로 한 행동주의 투자의 다양한 성공사례들을 남긴 바 있다. 그의 행동주의는 투자대상기업과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맺어 상호 윈윈을 모색하는 투자로도 유명하다.

은퇴를 선언했던 그가 자본시장에 컴백했다. '인클루시브 캐피털 파트너스'라는 ESG운용사의 공동설립자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여기서도 반(反) ESG기업들을 투자 배제하는 전통적인 전략보다 해당 기업의 지분을 일정량 매입한 후 주주관여를 통해 ESG성과를 개선하고 관련 위험을 낮추거나 제거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과거의 주주관여가 자본 재배치,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한 주주환원율 제고였다면 컴백 이후 그는 ESG측면을 보다 강조하고 있다.

그는 2021년 여름 또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ESG행동주의 투자자인 '엔진넘버원'의 주주제안을 통해 그가 엑손 모빌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이다. 배제가 아닌 우호적 참여를 통해 개선하려는 제프 우벤 특유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ESG투자자들이 기피해왔던 대표적인 화석연료기업에 투자하고 해당 기업의 보드멤버로 참여한 것이 그것이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덧붙였다. "탈탄소가 예정된 미래라면 투자를 배제할 것이 아니라 화석연료 기업에 참여해 친환경 기업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렇듯 해외에서는 ESG행동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도 또 다른 성격의 행동주의 움직임들이 눈에 띈다. 잘 알려져 있듯 최근 에스엠, KT&G, BYC 등을 둘러싼 몇몇 기관투자자들의 행보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행동주의 투자는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 기업들의 장기적 번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한국 맥락에 부합하는 행동주의 투자의 방향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동주의 투자란 무엇인가?
​행동주의는 '적대적 부끄럼 전략'과 '우호적 대안 제시를 통한 비공개 대화'라는 극단적 전략 사이에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스펙트럼상에는 다양한 행동주의 투자 전략들이 제시될 수 있다.

​전자는 배임 횡령 등 법적 문제와 이사회 운영 선임 등과 관련한 기업 지배구조 문제, 기타 소수주주권 훼손 등 기존 경영진의 문제점들을 외부에 공개하고, 동시에 주주제안 등을 통한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배당성향 제고, 자사주 취득 및 소각, 특정 자산 및 사업부 매각, 구조조정 등을 통한 경영 효율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한다.

이를 통해 자기 진영에 유리한 여론전을 전개하여 기존 경영진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우호세력 규합과 공개매수 등을 통해 기존 이사회 및 경영진 교체까지 시도하는 전략이다.

​반면 우호적 대화 전략은 전자와 같은 행동주의 투자전략 범주에 속하지만 전자의 전략과 크게 다르다. 일단 후자의 접근법은 기업과의 비공개 대화를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인내심을 갖고 문제를 풀려는 전략이다. 위법적 사안이 아닌 경우 상호 절충을 통해 타협안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들 우호적 대화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인게이지먼트 과정에서 기업 경영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지 않고 큰 틀의 거시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만 주로 관여한다. 예컨대, 이사회 구조와 운영 방식, 자본 재배치, ESG 성과 개선, 소수주주권 보장 등이 그것이다.

​행동주의 투자와 기업의 장기적 번영과의 관계
​행동주의가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일반화하기 쉽지 않다. 즉 상황에 따라 사례가 다 다르다는 얘기다. 특히 '적대적 부끄럼 전략'의 경우 기존 경영진과의 마찰이나 의견대립으로 인해 시장에서의 지분경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외부투자자 공격에 대해 자사주 취득, 백기사 동원, 진흙탕 언론플레이 등을 통해 기존 지배주주(경영진)의 지분을 방어할 경우 기업의 내재가치 제고와 무관한 비생산적이며 소모적인 이전투구로 확산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주가는 수급 논리에 의해 내재가치와 무관하게 변동성이 확대되고 거품이 발생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면 상호 생산적인 대화와 협상의 장은 마련되기 어렵다. 또한 싸움을 부추겨 뭔가 자극적인 기사 소재를 항시 찾는 언론들의 선정적 보도나, 특정 일방과의 친소관계에 따라 편파적 기사가 생산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적대적 부끄럼 투자전략'은 자본시장을 통한 경영 보정이라는 순기능보다는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기 쉽다. 즉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은 오랫동안 축적해온 명성, 기업 이미지, 브랜드 가치 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기업의 무형적 가치와 자산은 한번 축적하기까지는 장기간의 막대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고 단기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

​이러한 배경과 이유로 인해 영국이나 미국 자본시장과 같은 금융 선진국들에서는 2010년 전후를 변곡점으로 적대적 부끄럼 전략은 퇴조하고 스튜어드십에 입각한 장기적 우호적 대화 전략이 주로 등장하고 있다.

이 경우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인게이지를 시작하기 전에 2~3년 가량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해당 기업에게 뜨내기 주주가 아닌 장기적 동반자 혹은 파트너라는 인식을 먼저 심어준다. 그래야 대화의 여건이 마련되기 쉽다.

동시에 펀드 내에 해당 섹터 및 경영의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내외부 자문단을 구성하여 해당 기업에게 설득력 있고 실질적이며 최적화된 진단과 솔루션을 제시함으로써 해당 기업을 대화의 장으로 안내하고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타협점을 모색해 나간다. 이러한 투자전략을 '컨설팅 투자'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한편 행동주의 투자자와 피투자기업과의 대화 분위기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행동주의가 기업의 장기적 번영에 우호적 영향을 미치거나 그 반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싸우자고 덤비는 상대와 마주할 기업이나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무리 상대가 대의명분 있는 이슈를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적대적 접근이나 외부 폭로전 등을 전개하면 상호 건설적 대화의 장은 마련되기 어렵다. 따라서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이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노련한 대화법과 협상전략를 준비하여 구사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행동주의 투자자의 표적이 되는 기업들은 내재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저평가된 기업들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의 입장을 고려하고 긴 호흡의 장기적인 대화를 추진한다면 그들이 목표로 하는 기업의 장기적 번영과 주가의 상승을 이끄는데 쉬울 수 있다.

​한국 맥락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행동주의 방향
​행동주의 투자의 진정한 목적은 해당 기업의 단기적 주가 상승에 있는 것이 아니다. 피투자기업의 장기적 번영에 있는 것이다. 후자는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다. 주가와 기업가치는 장기적으로 상호 수렴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큰 이격이 발생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격이 과도할 수 있고,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시장에 엄청난 후유증과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기실 많은 적대적 부끄럼 전략 투자자들이 시장의 비이성적 뇌동매매를 이용해 주가 거품을 유도하고 그것을 노리기도 한다. 하지만 꺼지지 않는 거품은 없고 그러한 과정이 반복된다면 시장은 그 자체로 신뢰를 잃는다.

또한 행동주의 투자들은 의도적으로 공격을 과대 포장함으로써 내재가치와 무관하게 주가를 띄워 놓고 해당 기업에 되팔거나, 공개매수 제안이 있을 경우 해당 제안 세력에게 주식을 매각하고 퇴각하는 전략들도 구사한다.

​따라서 행동주의 투자의 순기능이 강화되려면 장기투자가 전제되어야 한다. 행동 투자자는 시장에 해당 기업을 장기 보유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그 대전제 하에서 기업의 장기번영 청사진과 로드맵, 전략 등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한 대안을 놓고 기업과 장기적 관점에서 대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당 기간 비공개 대화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먼저 기업과 '한 배'를 탈 것이라는 믿음을 시장과 기업 측에 심어 줘야 행동주의 투자가 지향하는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2010년을 전후로 글로벌 대표적인 행동주의 투자자들인 캘퍼스나 영국의 허미스 역시 적대적 부끄럼 전략에서 우호적 비공개 대화로 그 투자 전략을 변경한 바 있는데, 그러한 스탠스 변화의 배경에는 앞서 언급했던 이유들이 깔려 있다. 우리도 이들 행동주의 투자기관들의 변신을 벤치마크할 필요가 있다.

둘째, 행동주의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문화 특성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는 특유의 체면 문화가 있다. 물론 서양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공개적인 비판을 주고받는 토론문화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의 이사회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서양과 달리 특정 안건을 놓고 이사들 사이에서 공개적인 격론을 벌이는 경우가 드물다. 이러한 회의 방식이나 문화에 대한 가치 판단은 차치하고, 이것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유교권 국가들에 내재하는 고유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 대신 이사회 안건 상정 이전에 이사들의 의견을 비공식적으로 청취하여 사전조율된 안건이 이사회에 올라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울러 한국의 '연장자 문화'도 고려할 부분이다. 이 역시도 그 가치 판단은 논외로 하고 한국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문화적 기제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행동주의 펀드 내에 경험 많고 오랜 경력 등을 갖는 시니어가 협상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기실 해외의 노련한 행동주의 펀드들도 투자와 인게이지먼트 성공을 위해 이러한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여 시니어들이 협상 테이블에 참여하기도 한다.

​셋째, ESG까지 고려해야 한다. 2021년 발간된 하버드 로스쿨의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로 갈수록 기업의 ESG성과와 비즈니스 회복력, 경쟁력, 재무성과 간에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블랙록을 위시한 세계 최대 운용사들과 주요 연기금, 국부펀드들이 ESG전략을 속속 도입하는 것이다.

또한 ESG이슈를 내건다면 행동주의 투자자의 성공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ESG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그 대의명분으로 인해 공적 연기금들과 같은 여타 기관투자자들도 캠페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즉 행동주의 펀드가 특정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이나 작업장 안전 문제, 민주적 기업문화 형성 등을 의제로 제시할 경우 공적 연기금들은 해당 캠페인에 반대할 명분이 약해진다. 특히 서구사회와 달리 '공동체성'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할 때 이 부분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오랫동안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행동주의 투자를 이끌어 왔었던 캘퍼스와 허미스 그리고 제프 우벤의 변신을 벤치마크해서 이제 한국형 행동주의 투자를 보다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할 때 행동주의 투자가 단순한 투자전략의 일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장기적 번영을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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