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최근 유럽연합(EU)은 원료의약품의 중국 등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핵심의약품법(Critical Medicines Act)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벨기에 정부는 지난 2일 유럽의 반도체법과 핵심원자재법과 같이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핵심의약품법 제정 추진을 제안했다.
이 법은 EU 내 필수의약품의 생산뿐만 아니라 의약품원료 및 기초화학물질의 생산을 촉진해 중국과 인도 등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다. 현재 벨기에가 제안하고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18개국이 지지하고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한 세부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유럽 반도체법 및 핵심원자재법와 같은 형식의 법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반도체법은 총 430억 유로(한과 약 62조원) 규모의 보조금 및 투자를 통해 반도체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030년까지 EU 전세계 반도체 생산 시장 점유율을 기존 9%에서 20%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이같은 법안 추진 배경은 대량의 의약품 공급망이 해외 소수 제조자에 의존하고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실제 전세계적으로 원료의약품의 중국 의존도는 40%에 달한다. 의약품 생산공장 또한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의약품 구입량이 폭증하며 2020년 3월 세계 의약품 구입량은 전년 대비 15% 상승하고, 기존의 특허 만료 제네릭 의약품 사용이 급증했다.
의약품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의약품 수요가 증가함은 물론 패닉 구매가 발생하고, 공장 셧다운, 이동 제한 등으로 제조시설 가동이 안 되며 생산과 공급이 감소하게 됐다. 2019~2020년 미국의 의약품 부족은 37%, 호주는 300% 증가해 의약품 자국 제조와 공급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인도가 타이레놀 성분 등의 의약품 수출을 금지했을 때 유럽도 의약품 공급망의 취약성을 경험한 바 있다. 또 유럽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으로 EU국가들이 의약품 생산 관리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
업계는 벨기에 등 19개국이 핵심의약품법 제정을 지지함에 따라 EU집행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법안 제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럽 외에도 많은 국가가 원료의약품을 포함한 필수의약품의 국내 제조 증가를 목표로 지원을 강화해 왔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20년 3월 식품의약국(FDA) 관리의 권한을 강화하고 주요 의약품 제조시설의 위험관리계획 수립·유지·이행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캐어스 법안(CARES Act)을 통해 필수의약품의 공급 안정 지원에 나섰다. 그간 미국은 완제약 제조시설의 60%가 외국에 존재하고, 원료 제조시설의 14%만 미국에 존재하는 등 해외 의존이 매우 높았다.
이후에도 미국 정부는 각종 지원책을 제시하며 고품질 의약품의 자국 생산을 늘릴 방안들을 제시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주요 산업재료 공급망 점검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해 구체적 조치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국내의 경우 자사 원료의약품을 이용, 생산한 약제에 대해 등재시 약가를 우대하는 등의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대에 불과하다. 2019년엔 16.2%로 2008년 통계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 또한 가격이 저렴한 중국, 인도산 원료 수입 비중이 높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에 따르면 2021년 전체 원료의약품 수입(20억155만4000달러)에서 중국 수입(6억8014만8000달러) 비중은 30%가 넘는다.
엄승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지난 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제6차 K-생명바이오포럼에서 자사 생산 원료 우대 기간을 현행 1년에서 5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기초 필수의약품 원료 생산은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기술'에, 일반원료는 '신성장·원천기술'에 포함해 세제 공제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상무는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에 R&D 및 시설투자 보조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이 전무하다. 규모가 작은 내수시장만을 바라보고 원료의약품 생산시설을 구축하긴 쉽지 않다. 특히나 내수시장이 탄탄하지 않으면 기반을 다지기 어렵다"라며 "해외시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어 "현재 자사 합성 원료를 사용한 완제의약품의 약가를 68% 수준으로 1년간 우대해 주고 있는데, 의약품 허가 후 1년 안에 제품을 파는 것은 어렵다. 이 기간을 최대 5년까지 연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자사 합성 개념도 계열사까지 확대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며 "원료의약품의 국산화가 이뤄지기 위해선 해당 원료를 사용한 완제약에 대한 약가 인상이 따라주어야 하는데 건강보험 재정상 인상이 어렵기 때문에 차등제에서 제외해 주길 바란다"며 "약가 우대정책, 세약공제 등이 뒷받침되면 원료의약품의 자국 생산이 활성화되며 안정적 공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촉구했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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