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보험에서 사망 이르게된 '종합' 판단 요구한 첫 판례우울증 등 정신질환 환자들 인식 개선 계기가 될 수 있어보험업계는 "지나치게 폭넓은 예외 인정은 안돼" 보수적
원칙적으로 피보험자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상해보험금 지급은 어렵지만 법조계에서 우울증 등 심신미약으로 인한 '의사결정 불가 상황'을 비교적 폭넓게 해석하는 움직임이 나온 것이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업계와 소비자간 오랜 난제였던만큼 이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업계는 그에 대한 면책사유를 넓게 보는 것은 이를 억제하거나 예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보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法, 고인의 의사결정 가능 여부···거시적으로 판단해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 5월18일 우울증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한 유족이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받지 못한 사례에 대해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다도 된다'고 판단한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이 유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건은 이렇다. 미성년자인 A씨는 2010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다가 2019년 11월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2018년부터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졌고 2019년 5월에는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둔 뒤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당일 A씨는 새벽까지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망 후 유족은 2012년 A씨 앞으로 들어둔 상해보험금을 신청했으나 손보사는 이를 거부했다. 보험사는 A씨가 사망 당시 정상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사건이 소송전으로 넘어간 뒤 1심은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지만, 2심은 "A 씨가 사망 직전 유족과 통화하며 '미안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등 자신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인식하고 있었고, 방식 등에 비춰 볼 때 충동적이거나 돌발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핵심은 장기 우울증 환자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되기까지 과정을 종합적·거시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A씨가 사망 무렵 경제적·사회적·신체적 문제로 증세가 악화된 상황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판단하기 위해선 그 상황 전체의 양상과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의사로부터 우울병 등의 진단을 받아 상당 기간 치료를 받아왔고 그 증상과 행위 사이에 관련성이 있어 보이는 경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서 "그 무렵의 상황을 평가할 때 그 상황 전체의 양상과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특정 시점에서의 행위를 들어 그 상황을 섣불리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생명보험의 경우 가입한 지 2년이 지난 경우 유족에게 일반사망 보험금을 지급한다. 반면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하는 '상해보험'은 일반상해가 인정돼야 한다. 실제 상해보험 약관에는 '피보험자의 고의'로 사망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예외(자유로운 의사결정 불가능)에 해당되는 상황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할 경우'인데 보통 우울증, 조현병 등의 병을 앓고 있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위가 '의식의 흐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다.
최근까지도 법원은 극단적 선택 방법이 복잡하다면 보험금 부지급을 인정해줬다. 그러나 이번 판례로 향후 상해보험일 경우에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진 셈이다.
이같은 판결은 최근 늘어가는 우울증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높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우울증 환자는 93만3481명으로 2017년부터 연평균 7.8% 증가했다. 이에 보험업계도 우울증을 보장의 한 영역으로 바라보고 관련 상품을 출시하는 추세다. 우울증 환자를 단순 부적응자로 보던 시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 "예외 인정 늘어나면 부정적 영향 더 커···경계해야"
다만 보험업계는 극단적 선택에 대한 면책사유 범위가 넓어질 경우 억제·예방 등 측면에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조계가 우울증 등 병리적 상황에 놓인 피보험자의 극단적 선택을 '예외' 상황으로 인정하는 추세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친 것이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예외가 많이 생길수록 보험금을 목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것이란 의미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극단적 선택의 동기로 '정신적·정신과적 문제'(38.4%)가 가장 많았지만 '경제적 문제'(25.4%) 역시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남성의 경우 경제생활 문제가 1위를 차지했다.
보험연구원은 과거 생명보험에서 극단적 선택에도 사망보험금을 보장해주는 최소 기간인 2년 이후인 3년차에 많이 나타난다고 분석한 바 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의 사례를 진단한 당시 보고서를 보면 생명보험 가입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율은 3년차 때 평균 8.7건으로 2년차(평균 7건)에 비해 많았다.
하지만 4년차는 평균 9.2건, 5년차 평균 9.5건으로 이후에도 높은 수준을 보인만큼 보험상품의 극단적선택 보장과 사망간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고 볼 순 없다는 의견이 현재까지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보험업계에서는 면책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등 주장도 함께 나오는 상황이다. 명확히 입증되진 않았지만 물질주의가 만연하는 상황에서 보험금이 극단적 선택을 유도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보험연구원은 이번 대법원 판례에 대한 리포트를 발간하고 "우울증이 존재하고 극단적 선택이 급성 우울증 국면에서 행해졌다면 의사결정능력 결여가 인정될 수 있다"면서도 "의학적 판단을 지나치게 중시하거나 망인이 사망시점에서 의사결정능력을 보유했는지 여부에 대한 법적·규범적 판단을 배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이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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