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홈 시장 주도권 노린 건설사, 직접 플랫폼 개발 뛰어들어건설사별 셈법 복잡···가전·통신 계열사, 자회사와 합종연횡 활발전문가 "관건은 개방형 생태계 구축과 AI 기반 서비스 도입"
우리 정부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지정한 스마트홈 시장이 국제 표준 '매터' 마련으로 한층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조사연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스마트홈 시장 규모는 2023년 1348억 달러(약 178조8209억원)에서 오는 2028년 2316억 달러(약 307조3980억원)로, 향후 5년 내 약 71%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AI스마트홈산업협회가 발표한 '국내 스마트홈 시장 규모 추이'는 ▲2021년 85조7048억원 ▲2022년 93조728억원 ▲2023년 100조4455억원이다.
정부와 업계에서는 대응 마련에 분주하다. 국내에서 지난해 매터의 적용·확산을 지원하기 위한 추진한 '지능형 IoT 적용 및 확산 사업'이 대표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당시 최종 사업자로 현대에이치티 컨소시엄과 코맥스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주 사업자인 현대에이치티와 코맥스는 월패드를 비롯한 가정 내 유선 통신장비를 전문으로 다루는 업체다. 여기에 국내 1, 3위 스마트홈 플랫폼인 '스마트싱스'와 'LG씽큐'를 각각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가 포함됐다. 이들이 개발한 기기와 플랫폼을 현대건설과 LH가 구축하고 있는 아파트에 적용, 최종 실증사업까지 수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기기·플랫폼·건설사 간 컨소시엄 제안을 입찰공고에 명시했기 때문으로, 이외에도 8개 컨소시엄, 총 30개 기업이 사업 참여를 신청했다고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여태까지 국내 스마트홈 시장을 주도한 건 가전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로, 작년 사업 우선 대상자 선정에서도 그게 드러났다"며 "스마트폰 시장이 운영체제 중심으로 재편됐듯이 스마트홈 사업도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이 치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플랫폼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각각 국내 2, 4위인 LG유플러스 'U플러스 AI'와 SK텔레콤 '누구', 카카오 '카카오홈' 등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가전, 통신사에 이어 IT업계와 건설사까지 스마트홈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주도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업에서는 수요처로 참여한 건설사 역시 수년 전부터 독자 플랫폼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건설사별 셈법은 복잡하다.
그룹사 내 독자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건설사는 주로 타 플랫폼 기업과 협력에 나서되 그룹 내 계열사와 연계할 수 있는 장점은 최대한 살리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현대건설은 2016년 건설업계 최초로 SKT와 IoT 업무협약을 통해 스마트홈 플랫폼 '하이오티(Hi-oT)'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8년에는 현대오토에버와 함께 자체 플랫폼을 구축해 냉난방 등 에너지소비 시스템부터 냉장고, 세탁기, 공기청정기를 비롯한 가전제품까지 네트워크로 제어할 수 있는 IoT를 도입했다. 또 현대차·기아차와 함께 개발한 '액티브 하우스' 기술로 주차 위치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반면 그룹 내 이미 탄탄한 스마트홈 플랫폼을 갖고 있는 기업은 기존 노하우를 활용한 독자 앱을 통해 플랫폼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그룹 내 '스마트싱스'라는 1위 플랫폼을 보유한 삼성물산이 가장 적극적이다. 삼성물산은 2018년 삼성SDS와 협력해 홈 IoT 플랫폼을 자체 개발하고 2019년 분양한 부산 '래미안 어반파크'부터 자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래미안 A.IoT 플랫폼'이라 불린 이 개방형 플랫폼은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KT, LG유플러스, SK텔레콤, 카카오, 네이버 등의 서비스와 연동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래미안 A.IoT 플랫폼 개발 당시부터 삼성전자 스마트싱스 개발·운영 노하우가 상당수 활용된 것으로 본다. 실제로 매터 표준이 본격화된 이후 다시 개발에 나선 스마트홈 플랫폼 앱 '홈닉'은 삼성전자 출신 IoT 전문가 조혜정 삼성물산 라이프솔루션 본부장이 진두지휘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홈닉을 다른 건설사가 시공한 아파트에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견 건설사들과 업무협약(MOU)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혜정 본부장은 아파트도 하드웨어를 넘어서 '소프트웨어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업계 2·3위 플랫폼을 보유한 LG그룹 내엔 건설사가 없다는 점에서 긴밀한 연관관계가 있는 GS건설을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GS건설은 2017년부터 스마트홈 개발 전담 팀을 만들었고, 2019년 자회사 자이S&D와 함께 '자이 AI 플랫폼'을 개발했다. 지난 2021년 자사 플랫폼과 LG 씽큐(ThinQ)를 연동하기 위한 업무 협약을 LG전자와 체결했다. 지난해 5월엔 LG전자와 스마트코티지 상품화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해외 진출을 노린 행보를 보였다. GS건설은 주로 가전, 통신, IT 기업과 협업해 플랫폼 연동 범위를 넓히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외에도 포스코건설의 '아이큐텍(AiQ TECH)', 코오롱글로벌의 '스마트 하늘채 IoK',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스마트홈' 등이 스마트홈 플랫폼 주도권을 두고 경쟁을 펼치고 있다.
국내 대형 건설사가 연이어 스마트홈 플랫폼에 관심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에 대해 업계에서는 미래 먹거리로 충분한 성장 가능성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건설업계가 해외사업과 국내 주택사업, 토목사업 등 전 부문에서 성장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서 스마트홈 사업과 그 연장선에 있는 스마트시티사업이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정KPMG는 지난 2018년 4월 발표한 '건설산업의 벨류체인 변화' 보고서에서 스마트 시티가 국내 건설사의 새로운 성장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며 국내 건설사들이 스마트시티의 사업전략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그동안 주거 시장을 주도했던 건설사가 스마트홈 사업 진행 과정에서 IT·전자 업체에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있다. 앞서 살펴본 '지능형 IoT 적용 및 확산 사업'에서도 건설사는 단순 수요처로 분류됐다. 실상 최종 테스트베드 수준으로 제한적인 참여만 한 셈이다. 만약 자체 플랫폼 개발로 수요처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 제공업체로 진화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면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
김학용 IoT전략연구소 소장은 "사실 건설사 자체 플랫폼은 기존 서비스와 크게 차이는 없다"면서도 "건설사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장치를 조정할 수 있으므로 좀 더 수월히 제어 및 조회가 가능해 그런 측면에서는 좀 유리한 입장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 스마트홈 플랫폼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 소장은 "어두워지면 불 켜주는 간단한 서비스도 좋지만, 결국 사용자들이 원하는 건 사용 편의성과 개인 맞춤형 서비스"라면서 "매터 표준에 따른 개방성을 확보하고, 생성형 AI가 생활패턴에 맞춰 선제적으로 서비스를 제시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로서는 스마트홈 플랫폼이 건설사 주도로 만들어지게 되면 여러 제품이 한 시스템 내에서 건물과 직관적으로 구동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설사 입장에선 얼마나 다양한 브랜드 제품·서비스와 연동을 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이에 따라 건설사와 IT, 전자 업체 간 MOU 등 협력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문제는 또 있다. 국내에서 기업 간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사이 스마트폰 OS 사례처럼 외국 플랫폼이 세계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국산 플랫폼이 하루빨리 실증을 거쳐 국제 진출에 나설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는 아마존, 구글, 애플, 화웨이, 샤오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스마트홈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공동주택 위주로 발전한 한국 스마트홈 시장이 민간 주도로 발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러나 과기정통부가 2022년 하반기 한국AI스마트홈산업협회를 사무국으로 해 국내 기업·기관·학계 등을 모아 구성한 민간 협의체 '지능형 스마트홈 얼라이언스'는 취재 결과 아직 발족식도 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AI스마트홈산업협회 관계자는 "조만간 발족식을 열 예정"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날짜는 확답하지 않았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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