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 분석 역량, 비용 등 제반 사항 갖춰지지 않아독립적으로 의결권 행사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이에 대해 자산운용사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비용과 제도, 시장 참여자들의 합의 등 제반 사항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운용사만의 노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자산운용사들을 향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데 이어 이달에는 올해 1분기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펀드 의결권 행사·공시 내역을 점검하고 불성실 행사·공시 사례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책임감 있는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소액주주 권리 보호에 기여하라는 취지다. 지난해 말 기준 기관 전용 사모펀드를 제외한 공·사모 펀드가 보유한 국내 상장주식은 76.4조원 규모다. 시가총액 3%에 해당하는 수치다.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를 기준으로 공시대상이 아닌 법인의 주주총회 안건에 자산운용사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공시대상 법인인 경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찬성 의견을 행사하는 경우가 93%를 넘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일각에서는 공시 대상과 내용에 대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재 자산운용사는 펀드별 자산총액의 5% 또는 100억원 이상 보유 주권 상장법인에 대해서만 의결권 행사 내용을 공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자산운용사들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를 강화하는 것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안건 분석에 필요한 전문 역량이 갖춰져 있지 않고, 수반되는 비용의 문제도 논의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는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난해 10월 의결권 가이드라인에 지배구조 문제 등 최신 이슈에 대한 내용을 추가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신사업 투자 여부 등과 같이 전형적이지 않은 안건들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해외의 경우 ISS, 글래스루이스 등 의결권 자문기관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 등이 의결권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해외에 비해 활용도는 떨어진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산운용사들이 소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첫번째 이유는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며 "주주총회 안건이 주주들에게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평가하려면 그에 걸맞은 전문적 역량을 갖춰야 하고 이는 비용으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결국 펀드 비용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익자 보호 차원에서도 적절한 선을 고민해야 한다"며 "공모펀드는 적게는 이삼십개에서 많게는 백여개 기업에 분산투자하는데 백여개 기업의 세부안건까지 검토해야 한다면 펀드가 보유한 지분의 영향력보다 안건 분석에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과의 관계도 의결권 행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총회 시즌이 되면 운용사에 기업 오너들이나 관계자들로부터 대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며 "운용사 입장에서는 기업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지난 8일 자산운용사 CEO와의 간담회를 마친 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산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관계적 측면에서의 어려움, 의결권 행사 기준의 문제를 들며 운용사가 독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 혹은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했다"며 "해당 문제에 대해 금융위원회와 다시 한 번 살펴보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류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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