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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회장님 자본주의로 소멸하는 자본시장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회장님 자본주의로 소멸하는 자본시장

등록 2024.12.23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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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자본주의로 소멸하는 자본시장 기사의 사진

지난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주재한 상법 382의 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 관련 토론회를 봤다. 토론회 소감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이제까지 한국 자본주의는 '회장님 자본주의'로 여기까지 온 측면이 있다. 즉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최종현, 이건희 등 1,2세대 회장님 창업가들의 탁월한 리더십과 '근면 성실 빨리빨리'의 한국적 특장점이 결합한 결과 대한민국은 초고속 산업화에 성공했다. 여기까진 '공(功)7 과(過)3'의 평가 관점에서 회장님 자본주의의 순기능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제 3세 또는 4세 회장님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 한국 경제의 견인차였던 그 회장님 자본주의가 한국 자본주의의 고질적 문제이자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그 문제의 핵심은 쥐꼬리 지분 회장님들과 다수 지분 일반주주 간의 이해 충돌에서 출발한다. 회장님들은 회사의 합병 시점과 그 조건을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반면, 일반주주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회장님들은 첨예하게 이해가 충돌하는 각종 자본거래 조건의 유리한 자기 결정권을 갖는 반면, 일반주주들은 그 결정에 대한 대항력 수단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 기업분할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회장님들은 기업을 뗐다 붙였다 몇 번 하면 지분율이 오르고 그만큼 일반주주들의 그것은 낮아진다. 완벽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일반주주들은 백주 대낮에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이라고나 할까.

앞선 의사결정들은 최종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이뤄지지만 사전에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사회 역시도 회장님 이익수호에 몰두하는 까닭에 편파적인 중요 자본거래 안건들이 이사회를 쉽게 통과한다. 회장님의, 회장님에 의한, 회장님을 위한 이사회다. 여기에서 주주친화정책은 유명무실할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대다수 회장님들이,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으로 충일했었던 1,2세대 회장님들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혜안을 제시하며 '자식과 부인만 빼고 다 바꿔라!'는 결기있었던 그 회장님, 무에서 유를 만들고 글로벌 구석 구석에 숨어 있는 잠재시장에 신제품을 연결시키곤 '임자 해봤어?'라고 밀어붙이며 기필코 성공시켰던 그 회장님이 아니라는데 결정적 함정이 있다. 하지만 그 때 그 회장님이 아님에도, 가신들과 이사회는 그 때 그 회장님처럼 떠받들고 모신다. 이렇듯 조타실과 같은 이사회에 문제가 발생한 기업들의 항로는 오도되고, 경쟁력은 하향하며, 주주들은 '불이익 불만 불행' 3 不의 늪에 빠졌다.

벌거벗은 회장님과 3불에 빠진 투자자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따라서 이 회장님 자본주의가 개혁되지 못한다면 한국 자본주의는 부자 3대 못 가듯 서서히 침몰할 것이다. SNS를 통해 기업 및 투자정보를 쉽게 얻고 전세계 자본시장 접근성이 용이한 MZ세대들은 이미 상당수 국장을 떠났다. (필자의 '상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 24년 11월 26일자 뉴스웨이 기사 참조) 향후에는 베이비부머들도 그 행렬에 가세할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함께 떠날 것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소멸할 것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에 '주주'를 추가하는 상법 개정의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최근 금융위에서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대체하자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국소 처방의 되풀이에 불과하며, 이 경우 또다시 법망을 교묘히 피한 창의적 편법 거래방식들의 등장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금융위 처방으로 벌거벗은 회장님에게 다시 옷을 입혀 드릴 순 없다. 성난 투자자들의 이탈행렬을 되돌리긴 더 어렵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함으로써 자본시장 밸류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금융위의 정책 목표 달성은 백일몽이 될 것이다. 이제 대증요법이 아닌 원인치료(causal therapy)가 요구된다. 더 물러설 곳도 없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에게 확대하는 상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다만 상법 개정안에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에 기초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 및 총주주 이익 보호 등에 더하여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재무중대성과 연관된 E(환경)과 S(사회)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라는 조항이 반드시 보충되어야 한다. 그것이 영미에서도 이미 노정된 주주자본주의의 허다한 한계의 극복,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이행, 규범(공시의무화, ESG실사법, 탄소중립, 녹색성장기본법)간 정합성, AI·로봇·양자·저탄소경제로의 대전환이라는 시대정신에 조응하는 법 개정이 되는 것이다.

누차 적지만, 그간 한국에서 ESG는 '아무말 대잔치'로 고생해왔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ESG는 각 진영의 확증편향, 소망편향에 근거한 견강부회 아전인수로 또 고생했다. 투자자 측은 E와 S는 각각 관련법으로 보호되니 이제는 G(일반주주 보호) 차례라고 항변했다. 경영자 측은 ESG를 사회적 약자 지원활동으로 잘못 정의내리곤, 만일 상법이 원안대로 개정되면 이러한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둘 다 완벽하게 틀렸다. 최근 운위되는 ESG의 참뜻은 중장기적 주주가치 제고다. 즉 ROE(자기자본이익률) 높이고, COE(자본비용) 낮춤으로써 중장기적 기업의 내재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경영전략이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SSB), 한국회계기준원(KSSB) 그리고 주요 선진국 금융당국의 지속가능성(ESG) 공시 가이드라인에서도 ESG를 재무항목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양측 모두에게 위 가이드라인 중 하나를 택해 정독해 보시길 간절히 권한다.

1986년 공전의 히트를 쳤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란 TV 코미디 프로가 생각난다. 비룡그룹이라는 가상의 재벌그룹 이사회 장면을 통해 이사회 멤버들의 아부 장면들을 리얼하게 그려 공전의 히트를 쳤다. 유행어도 남겼다. 회장님 말씀 한마디에 이사들 모두는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좋~습니다"를 외쳤고, 어떤 이사는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이란 명대사도 남겼다. 이 프로가 크게 사랑받았던 이유는 당시 불편한 사회적 진실을 고발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로부터 38년이 지났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여전히 주식회사 대한민국 이사회에서는 '회장님 우리 회장님 딸랑딸랑'의 이사들이 생존력을 발휘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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