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고공행진하는데 미 연준까지 기준금리 동결 "환율·물가 더 뛸라"···한은 금리인하 속도조절 불가피마땅한 카드 없는 내수회복···"구조적으로 문제 풀어야"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 연준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4.25∼4.50%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9월과 11월, 12월 세 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했던 연준은 새해 첫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택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속도가 느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초 내수 진작을 위한 2월 금리인하가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넓히기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 간 기준금리 차는 1.50%포인트(p)에 달하고, 다음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내릴 경우 1.75%p까지 벌어진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확대될수록 원·달러 환율 상승과 외국인 자금 이탈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다시 치솟고 있는 소비자 물가도 한은의 고심을 키우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142.14로, 전월 대비 2.4%나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과 국제유가 상승이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석유공사가 집계한 서울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 21일부터 열흘째 1800원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초 1653원까지 내려갔던 서울 휘발유값은 약 4개월 만에 150원 넘게 폭등했다.
지난달 농림수산품 가격도 공급 감소 여파로 3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감귤(22.6%), 무(22%), 닭고기(14.3%) 등의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농림수산품 물가는 전월 대비 2.8% 상승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소비자물가도 치솟으면서 통화정책에 의한 경기부양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통화정책 외에 추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성장률 하락을 만회하려면 가급적 빨리 15조~20조원 규모의 추경을 집행해야 한다는 게 이 총재의 생각이다.
금리인하가 지연되면서 국내 경제는 1%대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춘 상태다. JP모건의 성장률 전망치는 1.3%에서 1.2%로 낮아졌고 모건스탠리도 1.7%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최근 씨티은행도 기존 1.5%에서 1.4%로 눈높이를 낮췄다.
이에 대해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미 연준의 이번 기준금리 동결은 앞으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걸 시사한다고 봐야 한다"며 "한미 금리 차 확대 리스크를 고려할 때 한은이 2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이창용 총재가 경기부양 여론을 의식해 기준금리를 더 내릴 가능성도 있다"며 "현재로서는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재정을 확대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테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각에선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모두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금리를 내리거나 시중에 돈을 풀면 물가만 끌어올리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됐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더 내리기는 곤란한 상태"라며 "금리인하 속도조절에 따른 내수침체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실 돈이 없어서 안 쓰는 게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해외 소비 비중이 늘다 보니 신용카드 사용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내수 부진은 구조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은 소비가 아닌 채무 상환으로 쓰이게 될 가능성이 높고, 자산의 양극화가 문제이지 소득의 양극화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미국과 중국으로 유출되고 있는 기술 인력들이 돌아오게 만들어야 근본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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