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몽같은 시간이었을까. 지난해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근 몇 년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 단어도 요새는 한숨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배터리 업계에 길고 긴 장마가 찾아온 듯하다.
장마는 한순간에 찾아왔다. 불과 3년 전, 그러니까 2022년만 하더라도 배터리 업계는 호황기였다. 제조사, 소재사 할 것 없이 이차전지 업체들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수혜 기업으로 떠오르면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달콤한 러브콜은 물론 BMW, 포드 등 거물급 정상들도 한국을 찾아 우리나라 회장들에게 협력의 손길을 줄줄이 내밀었다. 그야말로 배터리 업계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급속한 약진, 전기차 수요 둔화, 미국의 보조금 정책 변화까지 맞물리며 국내 업체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였다. 한국 기업들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한 채 가동률 하락, 실적 하락이라는 아쉬운 성적표만 받아들일 뿐이었다.
문제는 올해 전기차 시장 전망도 어둡다는 것이다. 이들 실적을 견인했던 미국 전기차 보조금 지급도 종료됐고, 일부 고객사들은 전기차 확장 계획을 철회하고 내연기관차 생산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배터리 3사 모두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사업을 키우고 있지만, 이마저도 중국과의 전면전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장마를 멈출 방법은 정부의 '동기부여'다. 단순히 "사업이 좋지 않으니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 알려달라"라는 의미의 말은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책 금융이든, 연구개발(R&D) 지원금이든 보다 명확한 신호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도 중장기 투자를 멈추지 않고 다음 사이클을 대비할 수 있다.
며칠 전 한 매체는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에 이어 배터리 산업 역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배터리 산업의 성장 둔화가 장기화되면서 정부 차원의 판단이 필요해졌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산업부는 기사가 나간 뒤 부랴부랴 설명자료를 내고 "석유화학처럼 자발적 구조조정을 전제로 정부가 지원하거나, 배터리 기업 수를 줄여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었다"고 발을 뺐다. 그러면서 "정부도 적극 지원하겠지만, 업계에서도 현 상황이 지금의 석유화학 업계와 같이 흘러가지 않도록 다양한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의 해명자료를 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배터리 산업의 업황이 둔화된 지 벌써 3년이 넘어간다. 산업부의 말처럼 배터리 업계가 석유화학 업계처럼 흘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배터리 산업은 우리나라의 국가 전략 사업이다. 정부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한다.
뉴스웨이 전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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