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실패보다 정부실패가 더 고약하다는 말이 있다. 시장에서 독과점 폐해 등이 일어나면 정부가 이를 즉각 교정할 수 있는 데 반해, 정부실패는 대부분 교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시장실패는 시장이 있고 시장 내 행위자들이 있고 시장에서의 질서를 감시하는 정부가 있다. 행위자와 감독자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부실패는 행위자도 정부고 그것을 교정해야 하는 주체도 정부다. 정부가 스스로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하물며 국민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나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며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정부 관료들에게는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승진 인센티브, 감사리스크, 언론에서의 비난, 국회의 책임추궁 등을 고려할 때 관료들은 생태적으로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다.
게다가 실패를 인정한다면 그러한 정책이나 규제를 시행한 조직은 정당성을 잃는다. 담당 조직이 공중분해될 수 있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관료조직의 자기보존 본능이다. 끝까지 버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설명은 정부 조직은 실패 조짐이 보일수록 오히려 기존 정책에 더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실패가 정책의 개선을 촉발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더욱더 확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이다. 한국의 경우 부동산 정책 실패의 역사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잇달아 쏟아냈지만, 집값을 잡지는 못했다.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은 아마도 제도적 관성 혹은 경로의존성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돼 윤석열 정부, 이재명 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는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처음에는 몇 개 부처에서만 시행되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하나둘씩 늘어나 현재 6개 부처에서 8개 분야 규제샌드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8개의 전담 조직이 정부 내에 있는 셈이다.
게다가 샌드박스의 운영 성과가 신통치 않자, 국무조정실이 8개 분야 샌드박스의 운영을 총괄 조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샌드박스 이름도 샌드박스 플러스라고 업그레이드 됐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할 수 없는 비즈니스모델의 숫자가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증거는 없다.
샌드박스의 원조인 영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샌드박스는 신청기업에 예외를 허용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반면 영국은 규칙 자체를 수정해서 누구나 혜택을 받게 하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도 영국식 샌드박스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한시적 규제유예다. 한시적 규제유예는 민간의 규제 민원에 대해 행정규칙을 바꿔 일정한 기간 동안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다.
규제유예기간 동안 큰 부작용이 없으면, 한시적 규제유예를 영속화시킨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활용한 규제 완화 수단이다.
규제샌드박스와 가장 큰 차이점은 한시적 규제유예는 규제 자체의 적용을 유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규제로 어려움을 겪는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샌드박스는 임시허가나 실증특례를 신청한 기업에게만 혜택이 주어진다. 한시적 규제 유예에도 한계는 있다. 법률 개정 사항에 대해서는 정부가 규제유예를 시행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규제샌드박스에도 존재한다. 규제샌드박스에서 성공한 모델을 현실화시키려면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규제샌드박스가 정부실패의 전형이라는 판단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행한 지 7년째에 접어들었지만 뚜렷한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제도를 근원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미국 소재 한국계 스타트업 165개 사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스타트업들은 한국에서 시작해서 미국에 진출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미국에 본사를 두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말 그대로 모래성처럼 형해화되고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규제샌드박스라는 경로의존성에서 하루라도 빨리 탈피하자.
강영철 좋은규제시민포럼 이사장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