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 주수·처방 기준 등 사회적 합의 부족 지적약물낙태 법제화 부족, 의료·법적 혼란 우려
정부가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논쟁에 불을 붙인 가운데 학계와 의료계가 법 개정 없이 약물낙태를 허용할 경우 법적·의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들은 허용 주수와 처방 기준, 의료진의 책임 범위 등을 입법으로 명확히 하고 약물의 안전성 검증과 의료인 보호 장치를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3일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이재명 정부의 낙태약물 무법적 허용의 문제점'을 주제로 긴급 학술세미나를 열고 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이번 세미나는 국민의힘 조배숙·김미애·백종헌·안상훈·서명옥·한지아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이 주관했다.
세미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방안 마련을 지시한 이후 정부의 관련 논의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마련됐다. 앞서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성명을 통해 법 개정 없는 약물 도입 중단과 객관적인 안전성 검증, 의료 안전망 구축 등을 촉구했으며, 이날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법 개정 없는 약물 도입···"의료 현장 혼란 불가피"
발제자들은 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행정 조치만으로 임신중지 의약품 사용을 허용할 경우 의료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박성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 없이 약물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법 개정 없이 행정 조치만으로 약물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헌법적 질서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명확한 법적 기준 없이 의사의 재량에 맡길 경우 의료진은 의료사고와 법적 분쟁 위험에 노출되고, 여성 역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물 사용으로 건강상 위험을 떠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혜 순천향의대 부천병원 교수는 현행 의료제도와 관련 법률, 정부 정책 간 정합성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그는 임신중지 의약품이 정식 도입되더라도 온라인 불법 유통이 해소된다고 보기 어렵고,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허용 주수 역시 사회적 합의와 입법을 통해 정비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국내 초미숙아 생존율 연구 등을 언급하며 임신중지 허용 주수를 정할 때는 태아의 생존 가능성과 국내 의료 수준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성 검증과 의료인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약물 자체의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장지영 이화여대 서울병원 교수는 해외에서 인용되는 약물 관련 통계가 부작용 보고 체계의 한계로 실제 위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대규모 보험청구자료 분석에서 기존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료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합병증 발생률이 확인되면서 약물낙태의 안전성 평가 근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장 교수는 미국 FDA가 미페프리스톤의 안전성에 대한 공식 재평가 절차에 착수했으며, 데이터 검증과 이상사례 분석, 전문가 검토 등을 포함한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약물 도입 여부는 접근성 확대가 아니라 객관적인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인의 양심적 거부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찬주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교수는 "의료인이 양심이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의료행위를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며 관련 보호 장치 마련을 요구했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은 "법적 기준 없이 의사의 재량에 맡기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의료인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생명 보호 원칙과 의료인의 양심적 거부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 ▲낙태가 상업적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의료인이 양심에 반하는 의료행위를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명보호 3대 원칙'을 제시했다.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정부에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관련 지시를 철회하고 국회에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건강권을 함께 고려한 입법 논의를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또 위기 임산부에 대한 상담부터 출산·양육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지원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안다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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