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함정 1척이 30년 사업···노후 함정 쏟아지는 동남아, K조선 '각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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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 1척이 30년 사업···노후 함정 쏟아지는 동남아, K조선 '각축'

등록 2026.09.10 15:58

이승용

  기자

남중국해 긴장에 해군 현대화 속도···현지 생산·MRO로 승부한화오션 태국 우협 선정···HD현대는 필리핀 후속 수주전함정 수출 넘어 기술이전·정비까지···현지 산업과 협력 강화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동남아시아가 글로벌 함정 수주전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각국이 해군 전력 현대화에 나서면서다. 국내 조선사들은 함정 한 척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 유지·보수·정비(MRO)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첫 함정 수주를 발판으로 수십 년짜리 후속 사업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1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동남아 함정 수주전의 경쟁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격과 함정 성능, 납기 등이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발주국이 요구하는 현지 협력과 기존 함정과의 운용 연속성, 인도 이후 정비 능력까지 수주 경쟁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군함은 상선과 달리 한 번 인도한다고 거래가 끝나는 상품이 아니다. 장기간 운용되는 만큼 정비와 부품 공급이 뒤따르고 운용 과정에서 성능 개량도 필요하다. 후속함을 발주할 경우 기존 함정과 지휘통제체계나 무장·전자장비의 운용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때문에 첫 함정을 어느 업체가 공급하느냐가 이후 사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발주국 입장에서는 이미 운용해본 함정과 같은 계열의 함정을 추가 도입할 경우 승조원 교육과 정비체계 구축 등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조선사 입장에서는 초도함 납품 이후 MRO와 부품 공급, 성능 개량, 후속함 건조로 사업을 확대할 여지가 생긴다.

한화오션의 태국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9일 태국 왕립해군의 차세대 호위함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호위함 1척 건조와 통합 군수지원이 포함된 사업으로 태국 해군이 제시한 사업비는 167억3000만바트(약 6833억원)다. 한화오션은 4000t급 수출형 호위함 '오션-40F'를 제안했다.

이번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이 내세운 카드 중 하나는 '한 번 만들어본 함정'이었다.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인 2013년 태국 해군의 호위함 사업을 수주했고 2018년 3700t급 푸미폰 아둔야뎃함을 인도했다. 이미 같은 해군에 함정을 공급한 경험이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국 해군의 추가 함정 확보 계획까지 고려하면 초도함 1척의 의미는 더 커진다. 태국이 기존 전력을 교체·확충하는 과정에서 같은 계열의 함정을 추가 도입할 경우 기존 운용 경험과 정비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으로서는 이번 사업을 개별 함정 수주가 아니라 태국 해군과의 장기 협력 관계를 이어가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필리핀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이미 이 같은 구조를 경험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016년 필리핀 해군 호위함 사업에 진출한 뒤 지금까지 함정 12척을 수주했고 이 가운데 6척을 인도했다. 지난해에는 필리핀 해군의 3200t급 호위함 2척을 8447억원에 추가 수주했다. 기존 함정과의 체계 호환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추가 수주의 강점으로 작용했다.

HD현대중공업은 함정 인도 이후를 겨냥한 현지 지원체계도 구축했다. 2022년 필리핀에 군수지원센터를 설립해 정비와 기술 지원, 부품 공급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지 조선산업과의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4년 필리핀 수빅 조선소 부지를 활용해 현지 조선사업을 시작했고 지난 7월 첫 현지 건조 상선을 진수했다.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해 상선 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필리핀 정부가 요구하는 조선산업 육성과의 접점을 넓히려는 행보로 볼 수 있다.

다만 상선과 군함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수빅에서 상선을 건조한다고 해서 곧바로 필리핀 해군 함정의 현지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군함은 무장과 전투체계, 지휘통제체계 등 별도의 기술·보안 요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지 조선소와 인력, 공급망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향후 방산 협력의 기반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있다.

동남아 국가들이 현지 협력을 중시하는 배경에는 자체 방산·조선 역량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다. 해외에서 함정을 구매하더라도 선체 건조와 정비, 부품 공급 등 일부 영역을 자국 산업으로 가져오려는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조선사들도 단순히 함정을 수출하는 방식만으로는 장기 수주를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 조선사들이 동남아에서 경쟁하는 방식도 이 같은 변화에 맞춰 달라지고 있다. 한화오션은 태국에서 기존 납품 실적을 바탕으로 후속 사업의 기반을 만들고 있고 HD현대중공업은 필리핀에서 함정 수출과 MRO, 현지 조선산업 협력을 함께 가져가는 방식이다.

동남아 함정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몇 척을 팔았느냐'보다 첫 함정을 발판으로 얼마나 긴 사업 관계를 확보하느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초도함 수주 뒤 정비와 부품 공급을 맡고, 성능 개량과 후속함 건조까지 연결하면 하나의 수주가 장기간 반복되는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함정 사업은 초도함 인도 이후 수십 년간 MRO와 부품 공급, 성능개량 수요가 이어져 첫 수주의 파급력이 크다"며 "특히 동남아 국가들이 현지 건조와 기술이전을 자국 방산업 육성 정책과 연계하고 있어 기존 납품 실적과 현지 생산·정비 기반을 갖춘 업체가 후속 사업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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