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도 사용 않는 ‘의무고발제’로는 공정거래질서 확립 못해
새 정부는 출범 즉시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동수)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한 공약을 이행하라는 시민단체의 성명이 나왔다.
시민단체의 이날 성명은 공정위가 어제(3일) 약을 싸게 파는 의약품도매상들에 대한 제약회사의 의약품 공급을 방해한 한국제약협회를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YMCA는 4일 ‘새정부의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공약 이행촉구 서울YMCA 성명’을 내고, “박근혜 당선인이 지난해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이상한 방향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YMCA에 따르면 인수위는 검찰청,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중소기업청, 조달청 등 5개 기관에 ‘고발요청권’을 주고 이들 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 한해 공정위가 이를 의무 고발토록 하는 ‘의무고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불공정거래 관련 고발요청권을 갖고 있는 검찰은 독립적인 수사권까지 갖고 있지만 지난 10년간 검찰이 공정위에 요청한 고발은 단 19건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최근 2년간은 단 한건의 고발 요청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별도의 조사권도 없는 중기청 등의 기관들이 고발요청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서울YMCA는 “박 당선인은 경제적 약자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잘못된 시장 질서를 바로 잡겠다”며 “공정거래 관련법의 집행체계 개선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이 같은 공약은 현재 공정거래법 집행이 공정위에 독점돼 있어 법 집행의 견제경로가 없다는 점에서, 집행체계를 다양화해 외부 견제로 공정위의 공정성을 제고하고 법 집행의 엄정성과 효율성을 확대·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나왔다는 것.
서울YMCA는 “공정위는 최근 10년간 6000여건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적발했지만 검찰고발 건수는 1% 정도에 그쳐,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는 공정위가 국가재정과 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기업들의 불공정행위에 그동안 얼마나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는지를 말해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가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철저히 제재하지 않고, 기업이 편취한 부당이득에 비해 미미한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함으로 인해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이 보장되는 불공정행위에 대한 유혹을 끊기가 어려웠다”고 꼬집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은 “담합의 경우 담합이라는 은밀한 행위가 적발될 확률이 크지 않고 적발됐다 하더라도 ‘이미 구현한 부당이득이 수백·수천억원’인 상황에서 공정위 과징금은 그 1/10, 1/100에 불과해 불공정행위의 유인을 차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YMCA는 공정위가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담합사실을 자진 신고한 1순위 기업에는 과징금 100%, 2순위는 과징금의 50%를 감면해주는 공정위의 리니언시(leniency) 제도를 악용하는 대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은 “시장을 주도하는 2개의 기업이 담합하면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공정거래법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데는 공정위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서울YMCA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기업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일축하면서, “전속고발권 폐지로 위축되거나 영향을 받을 건전한 기업활동은 없다”고 설명했다.
제도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기업활동 위축보다는 불법적인 행위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인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서울YMCA의 입장이다.
서울YMCA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통해 소비자, 피해 당사자, 제3자 등이 직접 고소·고발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업들로 하여금 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유혹을 차단하게 하고, 시장 내에서 견제와 감시를 통한 공정한 경쟁질서가 확립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YMCA는 이와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걸려봐야 본전’이 아니라 ‘의도적인 불공정행위가 드러나면 회복하기 힘든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을 기업이 가짐과 동시에 소비자 개개인의 피해구제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다.
서울YMCA 관계자는 “박 당선인과 인수위는 당초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며 “공정위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해 대기업과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한 거래질서와 불법행위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하길 촉구한다”고 거듭 밝혔다.
박일경 기자 ikpark@
뉴스웨이 박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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