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아니다” 朴정부 발뺌에 무너진 신뢰= 청와대와 정부는 증세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사실상 증세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의 시각이다.
대표적인 것이 담뱃값 인상이다. 하루아침에 한 갑당 2000원씩 일괄적으로 뛰어오른 담뱃값으로 2조7800억원의 세수 증가분이 발생했고 이는 흡연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개정도 각종 성형수술이 부가가치세 부과 항목에 포함되면서 증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자동차세와 주민세의 경우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지만 이 역시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정부의 ‘증세 시도’였다는 지적이다.
국민들이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은 2013년 일부 특별공제 항목의 공제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율공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이다. 이는 올해 연말정산 파동의 시발점이 됐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정부에서는 증세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증세와 감세는 세율 인상이나 인하, 혹은 정책적 목적으로 세목을 신설하는 행위”라며 “2013년 세제개편은 증세 혹은 감세 목적이 아니라 세 부담의 형평성을 바로잡고자 한 세 부담 구조조정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 역시 연말정산 파동 당시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국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가 멈출 줄 모르는 지지율 하락에 어쩔 수 없이 이내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는 증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제쳐두고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달 초 내각과 청와대 간 정책협의와 조율을 강화하기 위해 정책조정협의회를 신설키로 결정했다. 정부는 청와대 내부의 정책점검과 조정 기능을 강화기 위해 정책조정수석이 주재하는 정책점검회의를 신설하고 여당 원내지도부 구성 이후 당정청 협력 강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계획은 증세와 복지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를 수정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與野 곳곳서 쏟아지는 자성의 목소리= 여야를 막론하고 증세와 관련한 목소리가 현 정부 들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3일 임시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고 정치인이 그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으름장을 놨다. 여론의 악화를 우려한 동시에 그 여파가 여권 전체로 퍼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새로이 여당 원내사령탑에 오른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경선 과정에서부터 일찌감치 증세에 대한 생각을 내놨다. 그는 “정부의 현 정책 기조가 국민들에게 정직하지 못하다”라며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당장 세금 올릴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도 “다만 증세 없는 복지라는 현 정부 기조에 대해 국민들이 이미 세금을 올리고 있지 않느냐고 할 정도로 꿰뚫고 있는데 세금과 복지문제의 장기적 목표를 어떻게 하고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도 증세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눈치다. 문 위원장은 “정부 정책이 이렇게 갈팡질팡, 우왕좌왕, 지리멸렬,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것은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비현실적 정책기조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아울러 “잘못된 정책보다 나쁜 건 잘못을 알고도 바꾸지 않는 것”이라며 “증세 없는 복지는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뢰 바탕으로 증세 논의 가능= 국민의 80%가 현 정부가 사실상 증세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고 65%가 증세 없는 복지가 불가능하다고 대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그만큼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 국민 여론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재정 집행이 투명하고 복지 서비스가 확실하게 이뤄진다면 기꺼이 증세에 찬성할 여론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에 대한 여론의 신뢰가 턱없이 부족해 여전히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한 논의는 사실상 추진 동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정책의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와 정부가 여전히 증세를 부인·거부하고 있어 여론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권의 한 당직자는 “증세에 대한 ‘포비아’를 버리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결국 더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며 “공론의 장을 만들면서 국민적 신뢰를 쌓는 작업을 병행할 때 비로소 증세와 복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창희 기자 allnewone@
뉴스웨이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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