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소버린·경영권 간섭·삼성그룹 흔들기 등 관측 엇갈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반대하며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의 향후 행보에 대한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또 5일에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삼성물산 지분을 가진 삼성그룹 계열사들에 힘을 모아 삼성합병 작업에 반대하자고 여론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물산에는 주주제안서를 보내 7월17일 임시주총에서 정관변경을 통해 삼성전자(4.1%)등 주요 주식의 현물배당을 요구했다.
이후 9일에는 삼성물산과 이사진들에 대한 주주총회결의금지등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으며 11일에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 2대주주인 KCC에게 자사주를 매각한 것과 관련해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엘리엇, 제2의 소버린 등극?
그러나 일각에서는 엘리엇의 이와같은 행동이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퍼포먼스로 다른 외국계 헤지펀드들과 같이 엘리엇 역시 주식을 대량매각한 뒤 떠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거 영국계 헤지펀드 소버린자산운용 역시 과거 SK 지분 14.99%를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선 뒤 계열사 청산 및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고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는 등 경영간섭을 했지만 지분을 전량 매각해 결국 1조원 가까운 시세차익을 거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영국계 헤지펀드인 헤르메스도 지난 2004년 삼성물산 주식 5%를 매집한 뒤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급등하자 보유지분을 모두 팔아치워 300억원대의 차익을 거둔 뒤 떠난 전례가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소송 제기 등 논란이 증폭되는 과정을 통해 주가를 올려놓고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거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오는 7월17일 임시주총과 8월6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일 사이에 엘리엇이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합병이 승인되거나 혹은 무산되더라도 엘리엇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적다는 점에서 장기전이 어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합병이 승인된다면 현재 합병비율 상 현재 엘리엇의 지분은 2%수준으로 낮아져 삼성측에서 요구를 들어줄리 없고 다른 삼성물산 투자자들과 연합을 한다고 해도 투자자들의 성향이 상이해 의견을 모아 경영권 간섭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에도 주가가 빠질 가능성이 높아 엘리엇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재합병을 시도해 주가를 끌어올릴 수도 있겠지만 앞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도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가능성은 낮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결국 헤지펀드가 금전적인 이득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합병이 통과될 가능성이 더 높은데 합병 이후 지분구조를 보면 삼성그룹은 다 합쳐서 40%가 넘는 지분율을 갖기 때문에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어 실익이 없고 만약 합병이 무산되면 주가가 빠져 손해가 된다”고 분석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도 “물산은 보유 지분 가치나 영업가치 대비해서 주가가 좀 낮은 편이니까 이렇게 이슈를 만들어서 시세를 올린 다음에 차익을 거두려는 목적으로 보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본인들이 봤을 때 철저하게 저평가된 주식들만 고르는데 제일모직과 합병을 한다는 이슈가 생겼으니까 이를 걸고 넘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루비콘강 건넌 엘리엇, 끝까지 간다
반면 일각에서는 현재 소송 등 전방위 압박을 펼치고 있는 엘리엇의 행동이 그동안 해외에서 보여줬던 행보와 일치하는 것으로 철저한 계획 하에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실제 엘리엇의 패턴을 보면 기업의 일정지분을 보유하고 경영권이나 재무전략 등에 적극 개입하는데 이사회에 자기 멤버를 넣거나 교체를 요구하는 행위가 가장 빈번하며 자사주 매입, 기업분할 및 매각, 현금배당 등의 요구가 많다.
특히 수익을 남기기 위해 소송꾼으로 불릴정도로 법적인 조치를 불사하는데 지난 2001년에는 재정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의 국채를 4800만달러에 산 후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자 소송을 제기, 결국 2012년 16억달러를 상환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분 보유 기업들에 대한 경영권 참여 요구가 많은데 지난 2014년 주니퍼의 경우 1월 의견 전달을 시작으로 2월에는 3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2명의 신규 이사 선임, 4월에는 1억6000만달러의 비용절감 및 글로벌 인력 6% 감원 등을 이끌어냈다. 이후 7월에는 모바일 보안부문을 매각, 10월에는 CEO까지 교체됐다.
올해 역시 1월 인포매티카의 지분 8%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엘리엇은 지속적으로 지분매각과 회사 매각을 요구해 결국 4월 PEF 페르미나와 캐나다연금기금에 회사를 매각하기로 하고 주당 48.75달러의 현금을 받게 됐다.
따라서 엘리엇의 이와 같은 행동패턴을 고려했을 때 엘리엇이 삼성물산에 요구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삼성SDS의 현물배당이 그저 허언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내달 주총에서 합병이 의결되더라도 엘리엇이 추가 지분을 매입하거나 우호세력이 장내에서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 매입할 경우 따로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해 이사해임안, 중간배당, 자산양수도(삼성전자, SDS 지분 매각)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밖에도 합병 주총 이후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시한다면 법적인 장기전이 이어질 수도 있다. 엘리엇의 경우 사법/정부/정치권 활용, 시민단체 등을 동원한 정치적 공격, 언론매체를 공격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국내에서 법원이 삼성측의 손을 들어줄 경우 국내법상 문제를 들며 ISD(투자자-국가간 소송) 독소조항을 활용해 역공을 펼칠 가능성도 높다. 우리나라는 상장사 주가를 기본으로 합병비율을 정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은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의 행보를 보면 미리 준비가 된 것처럼 빠른 전개로 원점에서 보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언제,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미 2~3월에 삼성물산 지분을 4.95% 취득해 준비했다는 점에서부터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며 “이미 합병이 문제 소지가 있음을 미리 준비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주식을 팔고 빠지려면 이미 그런 기미를 보였어야 했는데 오히려 소송까지 한 만큼 당분간은 주식을 팔지 않고 계속 가져갈 것 같다”며 “만약 합병이 결정되더라도 합병법인의 주주로 여러 가지 안을 제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DMG모리세키의 경우 올해 초 제휴사인 독일의 DMG모리세키 AG의 기업가치를 22억유로로 산정하고 합병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엘리엇이 지분 공격을 시작하면서 분쟁이 장기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엘리엇,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짜 원하는 건 삼성전자?
일각에서는 엘리엇이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삼성SDS의 지분을 현물배당하라고 요구했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노린 것이 삼성전자가 아니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주식가치로 14조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승계를 위해 삼성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 확보가 중요한 삼성그룹에게는 엘리엇의 행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엘리엇의 당초 목적이 삼성전자 주식 확보이자 삼성그룹의 경영권 간섭이라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지분을 더 매입해 삼성물산 합병 이후에도 현물배당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또 삼성물산이 지주사 노릇을 하게 된다면 이들이 삼성물산 꼭대기에서 그룹 전반에 대한 경영권 간섭을 할 수도 있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 2002년에도 삼성전자 우선주를 둘러싸고 삼성그룹과 분쟁이 있었던 헤지펀드로 2002년 초 삼성전자의 정관 변경에 반대해 소송에 나선 적이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정기주주총회에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없도록 정관 개정안을 상정했고 엘리엇은 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했다.
이처럼 엘리엇이 국내 기업 중 유독 삼성전자에 이와 같은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삼성의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화재 등에 대한 이 회장 등 오너일가의 지분은 각각 4.69%, 20.82%, 0.09%에 불과해 조금의 지분으로도 금방 회사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은 오너일가의 취약한 지분구조에도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지금까지 문제없이 경영권을 방어해 왔지만 최근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엘리엇의 눈에 띈 것이다.
윤태호 연구원은 “표면적으로 엘리엇의 경영 참가 목적은 부당한 합병 반대와 소액주주의 권리 찾기이나 무수익자산이였던 삼성전자 지분의 현물배당 및 매각 등 삼성그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제시하고 이를 거절할 경우 삼성이 주주를 도외시한다는 이유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아연 기자 csdie@
뉴스웨이 김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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