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해킹 의혹···해명마다 거짓말 드러나MB정부서도 각계각층 무차별 민간인 사찰‘국익 우선’ 목표 상실···국민신뢰 하락 큰 문제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외국 보안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찰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도 민간인을 상대로 한 불법 사찰로 인해 큰 홍역을 치른 전례가 있음에도 불과 5년도 지나지 않아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관련 업무를 맡았던 국정원 직원이 돌연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면서 논란은 더욱 격화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프로그램 구입 과정과 배경, 국정원의 석연찮은 해명 등을 놓고 무수한 의혹 속에 국가기관의 불순한 의도와 미숙함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국정원 불법 해킹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13일이다. 대외 명칭 ‘육군 5163부대’로 명명된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로부터 해킹 소프트웨어 ‘리모트컨트롤시스템(RCS)’ 구입을 비롯해 각종 해킹 기술을 문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음 날 이병호 국정원장은 RCS 구입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북한의 해킹 등 사이버전에 대비해 연구가 목적이었다며 해외 선진 해킹 기술에 대한 대응역량 강화 차원이라는 점을 들어 해명했다. 동시에 실제 해킹 여부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이 원장의 진술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는 지난 2012년 1월과 7월에 걸쳐 총 20명분의 RCS 프로그램을 구입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직전인 그해 3월과 11월에 30개 이상의 해킹 프로그램 계정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야권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총공세에 돌입하자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 사용기록을 공개하겠다는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민간인을 상대로 한 스마트폰 해킹은 없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와중에 지난 19일에는 20년차의 경력을 가진 국정원 직원이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 직원은 유서에서 내국인과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음을 주장했고, 국정원은 삭제된 파일을 100% 복구해 국회 정보위원회에 공개하기로 했다.
지난 2012년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는 민간인들을 상대로 MB정부 국무총리실 주도의 전방위적인 불법 사찰 의혹이 나오면서 엄청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년부터 각계 여론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불법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왔다는 주장이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국회의원, 민선 자치단체장, 종교계 인사, 방송·언론은 물론이고 민간인들까지 감시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당시 한창이던 촛불 시위와 관련해 정부에 부정적인 여론의 주도세력을 뒷조사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의 패러디물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사기업 대표를 자리에서 끌어내고 지분까지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의 구체적인 조사 의뢰에 따라 지원관실이 움직인 정황이 포착됐고, 지원관실은 결과를 국정원에 넘기는 등 상호 긴밀한 협조 체계를 갖췄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들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실행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이를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고위 인사들은 대부분 무혐의 처에 그쳤다.
이처럼 MB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까지 불법 사찰 논란이 크게 일면서 국가 정보기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정보기관의 역할이 정권 유지에 무게가 쏠리면서 이 같은 병폐가 발생하고 국익 증대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MB정부 초기까지 근무했던 국정원의 한 전직 직원은 “어느 나라에나 정보기관은 다 있고 때때로 감찰과 사찰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익에 초점을 맞춘다”며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보기관이 치열한 국제적 정보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창희 기자 allnewone@
뉴스웨이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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