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정 부회장, 경영 참여 1년 만에 창업주 해임창업주 부부-차녀 vs 장녀 간 경영권 분쟁 격화가족 간 진흙탕 싸움에 주가는 단기 급등락 반복
심 부회장이 아버지 심 회장을 회사에서 쫓아내자 어머니가 나서서 차녀 심의정 전 사장을 앞세워 명예회복에 나서는 형국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제일바이오는 당초 오는 15일 경기 안산시 본사에서 이사 선임·해임안을 심의할 임시주주총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총 3일 전인 지난 12일 돌연 주총 소집을 철회하는 공시 보고서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했다.
당초 주총에는 3가지 안건이 상정됐다. 지난해 임기 만료로 물러난 심의정 전 사장을 주총 임시 의장과 사내이사에 선임하고 심윤정 부회장을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안건이 핵심이다. 아울러 심 전 부회장의 측근을 해임하고 심 전 사장의 측근을 새로 선임하는 안건도 있다.
그러나 심 전 사장 등 일부 임원에 대한 업무상 배임 혐의가 드러나면서 주총 진행은 무위로 돌아갔다. 다만 심 전 사장을 회사 경영 전면에 앞세우려는 나머지 가족들의 의중이 여전히 막강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물약품업계 유망 기업···2005년부터 2세 승계 돌입
제일바이오는 한국화이자제약에서 동물용 의약품을 연구했던 심광경 회장이 1977년 세운 회사다. 창업 당시부터 동물용 의약품을 생산해온 이 회사는 관련 업계 내 유망한 기업으로 이름값을 높였다. 현재의 법인은 1989년에 세워졌고 2002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1939년생으로 80대 중반의 고령이 된 심광경 회장은 부인 김문자 씨 사이에 세 자녀를 뒀다. 1967년과 1971년에 장녀 심윤정 부회장과 차녀 심의정 전 사장이 각각 태어났고 1973년 막내이자 장남인 심승규 전 대표가 태어났다.
2004년 말까지는 1세대인 심광경 회장의 단독 경영으로 회사가 꾸려졌다. 심 회장의 동생인 심영경 씨가 생산관리 업무를 총괄하며 경영에 참여한 바 있었으나 2004년 회사를 떠났다. 2세 경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다.
제일바이오는 2005년 3월 정기주총에서 장남 심승규 전 대표를 사내이사에 처음 선임했다. 누나들보다 먼저 회사 등기임원이 된 심 전 대표는 일본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제일바이오에 몸담았다.
1년 뒤인 2006년 아버지와 함께 회사 CEO가 된 심 전 대표는 기획 업무를 총괄하며 회사 안팎 업무를 도맡았다. 특히 2010년대 중반에는 중국 사업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임기 만료를 9개월 앞둔 2016년 6월 심 전 대표가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나게 된다.
정확한 사임의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야심차게 추진했던 중국 사업이 계획대로 잘 풀리지 않자 이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물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심승규 전 대표의 퇴임 3개월 전인 2016년 3월에는 심 전 대표의 작은 누나인 심의정 당시 기획관리실장이 사내이사로 새롭게 선임됐다. 심의정 실장은 과거 성신바이오 부사장을 지내다가 아버지의 회사로 들어온 인물이다.
심 실장은 2017년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연구소장을 맡았고 이듬해에는 사장까지 승진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말을 끝으로 임기가 만료되면서 사내이사직과 연구소장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장녀 심윤정 부회장은 심 회장의 세 자녀 중 가장 늦은 지난해 3월부터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심 부회장은 2006년부터 가정의학과 병원을 운영해온 전문의 출신 인사다. 동물의학을 전공한 아버지나 생물학을 전공한 남동생과 달리 심 부회장은 의학을 전공했다.
가족에 지분 물려준 창업주, 한 달 뒤 맏딸 의해 쫓겨나
20년 가까이 아버지와 자녀들이 번갈아 함께 책임지던 회사의 경영은 지난 3월부터 새 국면을 맞았다.
심광경 회장은 3월 24일 부인과 세 자녀에게 438만6441주의 회사 지분을 물려줬다. 이 증여를 통해 부인과 두 딸은 각각 146만2147주씩 지분이 늘었고 회사 지분을 팔고 떠났던 장남 심승규 전 대표도 누나들과 어머니에게 증여된 지분의 절반인 73만1073주가 생겼다.
증여 후 심 회장의 지분은 7.82%로 줄었고 부인 김문자 씨가 5.68%, 심윤정 부회장-심의정 전 사장 자매는 각각 5.23%, 심승규 전 대표는 2.51%의 지분을 갖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 경영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런데 4월 중순부터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4월 17일 제일바이오 이사회는 1년 전 회사를 떠났던 심의정 전 사장을 사내이사로 다시 부르기로 하고 6월 1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주주들의 동의를 얻겠다는 계획을 의결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이사회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심 회장이 대표직에서 해임되고 심 부회장이 후임 대표에 선임된 것이다. 회사를 스스로 떠났던 동생이 지분 수증 이후 경영진으로 돌아온다는 계획이 나오자 맏딸이 아버지를 쫓아낸 것이다.
격분한 아버지는 바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심광경 전 회장은 지난 4월 26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 본인을 해임 처리한 이사회 결의의 효력을 정지하고 심 부회장의 대표 직무 집행을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을 냈다.
이어 4월 27일에는 심 회장의 부인 김문자 씨가 기존에 결의된 주총 안건에 추가로 안건을 더해서 심 부회장의 이사직 해임안을 의결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아버지를 쫓아낸 맏딸에 대한 어머니의 반격이었다.
그러나 장녀를 향한 심 회장 부부의 공격은 실패했다. 법원 재판부는 심 부회장의 대표 선임 과정에 법적 하자가 없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심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주총 안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5월 16일 심 부회장의 해임안과 심 전 사장의 선임을 동시에 다루는 주총 안건이 확정됐다. 오는 6월 15일 임시주총을 열겠다는 주총 소집 확정 공고 역시 5월 31일 공시됐다.
이대로 주총이 열린다면 심 부회장의 반란은 두 달을 채 못 버티고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심광경 회장 부부의 지분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표 대결로 갈 경우 심 부회장 측이 불리했기 때문이다.
심 회장은 가족들에게 지분 증여를 결의한 후에도 회사 지분을 꾸준히 늘렸는데 4월 18일부터 4월 28일까지 총 아홉 차례에 걸쳐 장내매수 방식으로 41만5859주를 사들였다. 김문자 씨 역시 비슷한 기간 14만5579주를 매입했다.
공교롭게도 심 회장 부부의 지분 추가 매입은 심의정 전 사장의 경영 복귀가 결정된 직후부터 진행됐다. 이를 고려할 때 심 회장 부부가 장녀인 심 부회장보다 차녀인 심 전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지분을 더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위기서 반격 성공한 언니···경영권 분쟁 심화 불씨 '여전'
그런데 이번에 판이 또 뒤집혔다. 제일바이오는 주총 확정 공시 후 일주일이 지난 7일과 8일 횡령·배임 혐의 발생 사실을 공시했다. 전직 임원이 1억7000여만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 행위를 했다면서 수원남부경찰서와 분당경찰서에 해당 임원을 고소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지난 12일 제일바이오는 예정된 주총 소집을 철회한다는 공시를 추가로 냈다. 사내이사 후보자가 배임 혐의자이기 때문에 사내이사 후보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으므로 주총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일바이오 측의 주장이었다.
제일바이오 측 주장을 해석하면 "업무상 배임을 한 사람이 사내이사 후보"라는 뜻이 되는데 주총 계획 중 이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은 심의정 전 사장이 유일하다. 심 부회장이 동생의 배임 사실을 발견했고 이를 직접 경찰에 고소한 셈이다.
결국 심 전 사장의 업무상 배임 관련 사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심 부회장의 단독 체제로 제일바이오 경영이 이뤄지게 됐다. 다만 그동안 심 부회장과 맞선 심광경 회장-김문자 씨-심의정 전 사장의 반격 의지가 강한 만큼 경영권 분쟁이 더 심화될 불씨는 남아있다.
이에 대해 제일바이오 측은 지난 13일 심윤정 부회장 명의로 주총 철회에 대한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심 부회장은 "주총이 열리더라도 가족과 표 대결을 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순리대로 뜻에 따르겠다"면서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기대감으로 회사 주식을 거래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과문 안에는 아버지인 심 회장에 대한 비난도 일부 담겼다. 심 부회장은 "80대 중반의 고령인 심 회장은 건강상 문제로 경영을 제대로 못 하고 있으며 유능한 인력 이탈과 거래처의 외면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특히 회사의 현금을 노리고 덤비는 무자본 M&A 세력에게 회사를 매각하고자 했기에 이를 막고자 심 회장을 해임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제일바이오의 주가는 경영권 분쟁 흐름에 따라 출렁였다. 심 부회장의 반란이 시작된 지난 4월 24일에는 3.5% 뛰었고 구제역 이슈까지 더해지며 2200원대까지 올랐다. 지난 2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하며 1년여 만에 2000원대로 주가가 올랐다.
그러나 심 전 사장에 대한 고소로 경영권 분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후부터는 내림세로 진입했다. 결국 14일 코스닥 시장에서 제일바이오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4.0% 내린 1824원에 마감했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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