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라자, 임상3상서만 1000억원 투입···'끈기'로 개발글로벌 빅파마 대열 진입 가능성, '적정 약가' 중요 정부, 블록버스터 신약 창출 목표···"파격 지원 있어야"
업계는 '렉라자'를 시작으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글로벌 빅파마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신약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R&D(연구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해야한다고 강조한다.
'타그리소' 경쟁약으로 올라선 국산 신약 '렉라자'···빅파마 대열 진입 가능성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렉라자는 비소세포폐암 중에서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이하 EGFR) T790M'이라는 유전자 돌연변이 환자를 타깃으로 하는 3세대 EGFR 억제제(표적치료제)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5년 7월 오스코텍의 자회사인 제노스코로부터 전임상 직전 단계의 렉라자를 기술도입해 물질 최적화와 공정 개발, 전임상 및 임상을 지속했고, 지난 2021년 31호 국산 신약으로 허가받았다.
항암제는 환자에게 처방되는 순서에 따라 1~3차 치료제로 나뉜다. 처음에는 환자에 다른 약을 써본 후 실패하거나 불응할 때 쓸 수 있는 2차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이후 1차 치료로 수행한 다국가 임상3상 시험을 기반으로 지난 6월 말 1차 치료제로도 허가받으면서 연매출 1조원 이상의 글로벌 블록버스터 약물로의 기대감을 키웠다. 약물치료 전력이 없는 암 환자에 국산 항암제를 먼저 쓸 수 있게 된 것은 렉라자가 처음이다.
국내 사망률 1위인 폐암 대부분은 비소세포폐암이 차지한다. 특히 환자의 30~40%는 EGFR 변이 양성으로 진단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은 T790M 돌연변이에 의한 내성으로 기존 1~2세대 표적치료제 사용이 어려워지게 된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3세대 치료제는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와 렉라자 뿐이다.
현재 항암제 시장은 1차 치료제로 먼저 허가 받은 타그리소 위주로 형성돼 있다. 지난해 이 약의 국내 매출은 1065억원, 글로벌 매출은 54억4400만달러(약 7조원)이다.
렉라자는 우선 국내 시장에서의 우위 선점을 위해 급여 확대를 꾀하고 있다. 타그리소와 렉라자 모두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은 상태여서 실질적인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암환자가 급여 등재된 1차 항암제를 사용할 땐 약값의 5%만 부담하면 되지만, 비급여로 처방받을 땐 연간 수천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현재 폐암 환자가 비급여로 타그리소를 처방받는 경우 매월 700만원에 가까운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 렉라자도 1년 약값이 7000만원이 넘는다.
통상 식품의약처의 허가를 받아 급여 등재되기까지 평균 1년 6개월 이상이 걸리는데 렉라자는 이례적인 속도로 급여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렉라자는 2021년 7월 2차 치료제로 보험급여를 받았고,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지 두 달 만인 지난 8월 건보 적용 1차 관문인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를, 이달 12일에는 2차 관문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를 통과했다.
타그리소의 경우 지난 달 약평위에서 1차 급여 확대의 적정성을 인정받았다. 2018년 12월 1차 치료제로 허가 획득 후 4년 여만이다.
약평위에서 1차 치료제로의 급여적정성을 인정받으면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 급여목록에 오르게 된다. 최대 60일의 건보공단 약가협상 기간 등을 고려하면 렉라자의 보험 급여는 내년 상반기에 최종 확대될 전망이다.
국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 시장은 약 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렉라자는 국산 신약이라는 점을 내세워 1차 치료에 대한 건보 적용 전까지 환자들에게 전액 무료로 공급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지금까지 무료로 렉라자를 공급받은 환자는 200명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확인된다. 이미 렉라자가 처방되고 있고, 공급 받는 환자수도 늘고 있는 만큼 급여 등재 후 시장 안착과 처방 확대는 순조롭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렉라자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18년 렉라자를 기술이전 받은 존슨앤드존슨(J&J) 자회사 얀센(현 J&J 이노베이티브 메디슨)이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임상3상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렉라자의 글로벌 허가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얀센은 자사의 EGFR-MET 타겟 이중 항체 치료제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와 렉라자 병용요법을 1차 치료요법으로 연구하는 글로벌 임상 3상시험(마리포사‧MARIPOSA)을 진행하고 있다.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군은 항암제 효능 평가의 핵심 지표인 무진행 생존 기간 중앙값(mPFS)이 23.7개월로 타그리소 단독군의 16.6개월 대비 질병 진행 및 사망의 위험을 30%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표준 치료법인 '타그리소'를 뛰어넘는 결과를 확인한 것이다.
마리포사와 관련한 자세한 데이터는 오는 20~24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2023 유럽종양학회(ESMO 2023)에서 공개된다.
회사 자체적으로도 렉라자의 글로벌 진출을 준비 중이다. 유한양행은 렉라자의 1차 치료제 허가 후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에 도전해 국내 1호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은 지난 7월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저소득국가에서 렉라자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게 글로벌 판권을 가진 얀센과 추후 협의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다국가 임상을 통해 1차 치료제로 인정받은 것인 만큼, 향후 해외 진출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업계는 렉라자의 사례가 국내 신약개발 기업들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블록버스터 약물'은 소위 말하는 글로벌 빅파마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핵심 키"라며 "기본적으로 품목 하나의 연매출이 1조원 이상일 때 블록버스터 약물이라고 말하는데, 글로벌 50위 제약사들의 연매출 실적이 5조원정도 된다. 잭팟이 터지면 탑 50위 안에 진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고 말했다.
협회측은 "아쉽게도 아직 국내에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제품이 없다. 그런데 (블록버스터 신약이 되는) 케이스를 렉라자가 만들어준다면 국내 업계에선 첫 성공사례가 되는 것이다. 제약바이오 산업계에선 상징적인 의미이고,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며 "블록버스터 신약개발, 글로벌 빅파마 진입과 같은 성공사례가 하나 생기면 다른 기업들에게도 매우 긍정적인 시그널을 주게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을 수 있기에 (렉라자 사례는) 의미가 크다"고 부연했다.
막대한 비용·시간 수반되는 신약개발···재정 지원과 적정 약가 보장 필요
렉라자를 이을 블록버스터급 신약으로는 HLB의 간암 치료제 '리보세라닙',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 케이캡과 같은 P-CAB 계열의 대웅제약 신약 '펙수클루',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 한미약품의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베돈' 등이 꼽힌다.
다만 업계는 추가적인 블록버스터급 약물 탄생에 있어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약개발에는 통해 10년이라는 기간과 1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그마저도 개발 성공을 담보하기 어려워 기업 단독으로는 연구개발에 한계가 발생할 수 있다.
렉라자만 해도 국내외에서 진행한 다국적 임상3상에서만 1000억원의 비용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유한양행의 2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YH25448'(렉라자의 개발코드명)의 자산화한 연구개발비 금액은 977억원이었다. 2020년 임상 개시 후 지금까지 연간 300억원 가량을 R&D에 투입한 것이다.
개별 제약사가 부담하기엔 큰 금액이다. 다만 유한양행은 국내 업계에서 매출 1위 자리를 유지하는 상위 제약사로 꼽힌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1조7758억원 정도다. 여기에 약물에 대한 확신, 신약개발을 지속하겠다는 뚝심 등이 반영되며 렉라자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현재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 의지를 내비친 이후 다양한 지원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는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겠다고 밝히며 정부의 지원 의지를 더욱 공고히 했고, 보건복지부는 연초부터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 '바이오헬스 산업 수출 활성화 전략 방안' 등을 잇달아 공개하며 2027년까지 제약바이오 글로벌 6대 강국으로 올라서겠단 목표를 제시했다.
또 2027년까지 연매출 1조원 이상의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신약 2개를, 2030년까지는 3개를 창출하다고 했다. 내년 바이오·디지털헬스 R&D 예산은 올해보다 12% 늘린 7801억원을 편성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렉라자를 포함, 블록버스터급 신약 가능성이 있는 약물들을 염두하고 (2030년까지 블록버스터 약물 3개 창출) 목표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신약개발 산업에 힘을 실어주고 실직적인 지원을 통해 최종 목표치 창출까지 이르도록 길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파격적인 재정적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신약개발의 요건을 꼽으면 기술과 인력, 자본 세 가지를 뽑는데 자본이 있으면 나머지도 확보가 된다. 하지만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규모는 여전히 작다. 대기업은 셀트리온 등 매우 소수이고 영세 기업이 주를 이룬다"며 "신약은 막대한 돈과 시간이 필요한데 민간에선 한계가 있으니 파격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가 지원하는 신약개발지원사업에서도 전체적인 재원의 규모를 늘리는게 필요하다. 특히 나눠주기식이 아닌 될 만한 곳에 지원사격하는 컨셉으로 가야 한다"며 "또 현재는 정부 주도의 탑-다운 방식으로 과제를 선정하는데, 정부가 디테일한 부분까지 제시하기 보다는 큰 틀만 정하고 디테일한 부분은 기업체들이 제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관계자는 규제 완화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기업을 옥죄는 정책은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상충된다. 진정성 있게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규제 역시 걸맞게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국산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도록 적정 약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신약 가격 책정 결정과정이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 치중되다보니 혁신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낮은 보험 약가를 산정 받는 경우 해외 수출 시 해당 약가를 기준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한 업계 관계자는 "렉라자가 1차 치료제로 보험급여를 받게될 경우 어느 정도의 약가 인하가 이뤄질진 모르겠다. 다만 글로벌 블록버스터 약물 수준의 의약품이 제대로 평가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국내에서의 평가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국산 신약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데다 유한양행의 기업문화와 상징 때문에 지금 무상으로 약을 공급하고 비용 부담 절감에 일조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다만 국내에서 받는 약가가 해외 시장에서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정 약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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