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마련 중이던 모친, 장녀와 OCI 그룹 통합 추진장·차남 제외에 업계도 '당혹'···"소통 부재는 아쉬워"R&D 자금 투입은 긍정, 양사 모두 경영진 리스크 존재
"한미는 R&D를 열심히 하는 회사다.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신약개발에 OCI의 자본이 투입된다면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그룹의 상속세는 기업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의 금액이다. 그것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거라면 어느 정도의 법적 장치는 필요해 보인다."
한미약품그룹이 경영권 분쟁 조짐을 보이자 제약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량·복합신약으로 국내 제약업계의 역사를 새로 쓴 한미약품이 고(故) 임성기 선대회장 사망 이후 상속세 문제, 경영승계 정책 부재 등에 의해 제기돼 온 우려의 시선들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신약 R&D 분야에 대규모 자금이 투입될 경우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기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오너일가 내 소통부재, 이로 인한 분열은 아쉽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장·차남 배제된 한미-OCI 통합···이사회 장악 실패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12일 소재·에너지 전문 OCI그룹과 각사 현물출자와 신주발행 취득 등을 통한 그룹간 통합 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OCI그룹의 지주회사인 OCI홀딩스가 7703억원을 투입해 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취득하고 장녀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한미약품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하는 내용이다.
지난 11일 기준 송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11.66%, 임주현 실장은 10.2%다. 이번 계약이 계획대로 완료된다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27.03%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고 한미사이언스는 제약바이오 자회사를 거느리는 중간 지주사가 된다. 'OCI홀딩스→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다.
기업 통합 후 송 회장의 지분은 1% 미만, 임주현 사장은 약 2%대로 예상된다. 대신 OCI홀딩스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통합에 반발하고 있어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계약에 장남인 임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을 배재한 채 모녀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현재 임 사장은 법무법인을 통해 OCI와 한미약품 통합을 막기 위한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지난 13일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한미사이언스와 OCI 발표에 대해 한미 측이나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고지나 정보, 자료도 전달받은 적 없다"며 "현 상황에 대해 신중하고 종합적으로 파악한 후 공식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임 사장이 그룹 이사회 장악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임 선대회장 타계 전까지만해도 그룹의 후계구도는 임 사장의 승계로 윤곽이 잡히는 분위기였다. 임 선대회장 타계 전부터 경영에 참여하며 입지를 넓혔고, 북경한미약품을 한미약품의 캐시카우로 키우는 데에도 그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한미약품 전략팀 과장으로 입사한 임 사장은 2004년부터 북경한미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동사장(회장)을 지내며 빠른 성장을 이끌었다.
그는 2020년 8월 임 선대회장 타계 후 송 회장과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그룹을 이끌었으나 2022년 3월 주주총회에서 재선임 안건이 올라오지 않아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그 후 송 회장의 단독 체제로 전환됐고 송 회장의 경영권이 강화되며 그룹의 후계구도는 원점이 됐다.
한미약품 사내이사 임기 역시 오는 3월 26일을 끝으로 종료되는데, 업계에선 올해 이 자리에서도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미그룹 측은 "이번 통합 절차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원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이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이지만,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속해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도 "임 사장이 대주주로서 이번 통합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임 사장과) 만나 이번 통합의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 설명해 이번 통합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임 사장이 기존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고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주라고 할지라도 이사회 멤버가 아니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문제를 삼을 순 없을 것 같다"며 "반대로 이사회에서 누군가 반대를 했다면 이번 딜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사회 장악하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022년 임 사장이 한미사이언스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게 이번 사태로 이어지게 된 발판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상속세 문제, 승계정책 부재가 '경영권 분쟁' 야기
장·차남이 배제된 이번 계약과 관련해 당혹감을 느끼는 건 비단 임 사장뿐이 아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첫째(임종윤)는 이사회에서 물러나기도 했고, 현재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타이틀도 없으니 어느 정도 예측은 할 수 있겠지만 막내 아들까지 모르게 진행했을 줄 몰랐다"며 "둘 다 지분이 어느 정도 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며 "경영권과 관련한 잡음이 있는 게 회사 경영은 물론 제약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빨리 해결을 보길 바란다"고 부연했다.
지난 11일 기준 임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9.91%를, 임종훈 사장은 10.56%를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너일가 간 분쟁이)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임 사장이 대주주이고 오너일가인데 사전 소통이 없었다는 것은 이런저런 해석을 낳을 것 같다. 또 정보가 불투명했다는 점도 부적절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부정적 시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송 회장이 OCI-한미그룹 통합을 결정한 배경엔 상속세 재원 마련이 크게 자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송 회장과 세 자녀는 지난 2020년 임 선대회장 타계 후 한미사이언스 지분 34.29%를 상속 받아 5000억원이 넘는 상속세가 발생했고, 연부연납제도를 통해 5년 동안 상속세를 분할납부하기로 했다.
이에 송 회장과 임 사장은 작년 5월 공시를 통해 PEF인 라데팡스파트너스(이하 라데팡스)와 코러스유한회사(코러스)에 3132억원 규모의 한미사이언스 주식 824만2117주(11.8%)를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 거래에 참여하기로 한 새마을금고의 뱅크런 사태로 투자가 무산됐다.
작년 말 송 회장이 상속세 납부를 위해 금융권에서 조달한 주식담보 대출 만기가 도래하자 그는 남은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라데팡스와의 딜이 클로징됐다면 이 상황까지 안 왔을 것"이라며 "돈을 구하기 어려우니 라데팡스측이 이번 거래를 주선하며 수수료만 받기로 하고 한 발 물러선 모습이다. 한미측도 사모펀드와 더 안 좋은 조건으로 거래하는 것보단 이 방식이 나았을 거다"라고 말했다.
실제 송 회장은 이번 계약을 통해 취득한 현금을 상속세 납부 등에 쓸 예정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선 "상속세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거라면 기업이 가고자하는 범주 안에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5000억원은 기업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의 금액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계정책의 부재도 경영권 분쟁의 씨앗이 됐다. 창업주가 후계구도를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세 남매가 동일선상에서 후계구도를 그리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세 남매의 지분율이 비슷한 상황에서 송 회장이 최종 결정권을 쥐게 되며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단 시각이다.
투자업계에서도 송 회장의 단독 체제 전환 후 한미그룹을 주목해왔다. 한 관계자는 "고 임 회장 타계 전 송 회장은 경영 전면에 있던 사람이 아니다. 시장에선 모친이 경영권을 쥐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또 "결국 송 회장의 마음이 누구에 향하느냐에 달린 일이었다. 남매의 난은 예견됐던 일"이라고 했다.
'넥스트 스텝' 필요한 한미···OCI 통합, R&D 청신호될까
이번 사태의 배경에 상속세 마련이 전부가 아니었을 거란 시각도 있다. '넥스트'가 필요한 한미그룹에게 경영능력과 R&D 자금 마련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룹은 지난 2022년부터 이사진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며 경영진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고 임 회장과 함께 한미를 이끌어온 이관순 부회장과 권세창·우종수 사장이 잇달아 회사를 떠났고, 이밖에도 큰 폭의 임원진 교체가 이어졌다.
회사 내부에선 경영진의 세대교체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 관계자는 "외부에선 선대회장과 한미그룹을 이끌었던 핵심멤버들이 나간 것에 우려를 표했는데 내부 평가는 다른 것 같다. 인적재편은 제대로 된 것 같다"며 "특히 오너 2세들이 선대회장만큼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있는지 확실치 않아서 내부선 기대감이 큰 상황이었다. 다만 (OCI그룹과 통합) 변수가 생겨서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지켜봐야할 듯하다"고 말했다.
OCI와의 그룹 통합은 R&D 추진 동력 확보 차원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앞선 관계자는 "이종기업간 통합경영이 어떤 시너지를 낼 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일단 한미그룹은 R&D를 열심히 하는 기업이다. 현금성 자산이 많은 OCI의 자산이 R&D에 투입된다면 자금이 소요되는 R&D측면에선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송 회장 또한 최근 임직원들에 메일을 보내 "한미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동반자와 함께 보다 크고 강한 경영 기반을 마련해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런 결단을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한미그룹은 자산 총액 기준 대한민국 30대 기업으로 단숨에 도약하게 됐다. 앞으로 한미그룹과 OCI그룹은 아름다운 동반자로서 공동 경영을 통해 소재·에너지와 제약·바이오라는 전문 분야에 각각 집중하면서도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경영진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OCI는 지난 2018년 제약·바이오 사업에 진출, 2022년 부광약품을 인수했지만 2년 연속 적자를 보고 있다.
OCI홀딩스는 각 그룹별 1명씩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 2명을 선임해 공동 이사회를 구성할 예정인데, OCI의 이우현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각자 대표를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한미그룹의 후계 승계는 장녀로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앞선 관계자는 "R&D를 비롯한 제약바이오 경영 전반에 대해서는 한미측에 맡기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테스트베드 차원에서 부광약품을 인수한 것처럼 보이는데 (경영능력이) 증명되지 않은 선례가 있어 그게 리스크로 보인다. 한미를 통해서 반전을 이뤄낼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OCI 이우현 회장과 임주현 사장의 전문성도 퀘스천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경영진 리스크가 향후 행보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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