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운전자들의 시력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이는 공사 비리와 엮여있다. 2021년 한국도로공사가 전국 45개 구간에서 차선 도색 공사를 발주했는데, 이 가운데 무려 34개 업체가 저가 원료를 써서 123억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당시 업체들은 정상 제품에 저가 원료를 8대 2 비율로 섞었고, 이 때문에 차선 밝기가 기준 이하로 떨어져 비 오는 날이면 차선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이윤을 위해 운전자 생명이 담보로 잡힌 것이다. 지금도 전국 도로 어딘가에는 그들이 남긴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지자체도 이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2021년부터 고성능 차선 도입에 나섰다. 반사 성능이 뛰어난 유리알을 섞은 페인트로, 기존 차선보다 시인성과 내구성을 높인 차선이다. 서울시는 2021년 394㎞를 시작으로, 2022년 766㎞, 2023년 834㎞, 2024년 1067㎞를 적용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7167㎞ 도로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3061㎞ 구간에만 도색을 마쳤다. 올해도 1378㎞ 추가 도색이 예정돼 있지만, 4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서울 도로 절반 이상은 '빗길 지뢰밭'인 셈이다.
문제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차선이 보이지 않으면 차로 유지 보조 기능은 물론, 자율주행 기능도 제 기능을 못 한다. 센서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차량이 갑자기 차선을 이탈하거나 오작동할 위험이 커진다.
또한 차선 시인성 개선 공사는 언제 하느냐가 중요하다. 실효성을 극대화하려면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완료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는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전국 도로에 시인성 높은 차선이 신속히 적용되도록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주요 도로만 개선해서는 효과가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 차선은 운전자의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기준인 만큼, 전국의 도로가 관리돼야 한다. 지금처럼 지역마다 다른 적용 속도와 품질이 들쭉날쭉한 상태로는 전국 단위의 교통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이제는 운전자가 전국 어디서든, 빗길 위에서도 안심하고 달릴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할 차례다.

뉴스웨이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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