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나 스스로 돈을 벌겠다는 각오로 길을 나섰지만, 그의 앞에는 수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이 훗날 '왕회장'이라 불리며 현대그룹을 일군 정주영 명예회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철도 공사판과 막노동을 전전하다 쌀가게 배달원으로 자리를 잡았고, 남다른 성실함 덕분에 스물세 살의 나이에 쌀가게를 물려받게 됩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터진 중일전쟁으로 가게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첫 실패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정 회장은 자동차 정비업에 뛰어들었지만 화재로 한 달 만에 잿더미가 되었고, 다시 차린 공장마저 일제의 기업정리령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광산을 인수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으나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주영 회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그는 처음으로 '현대'라는 이름을 걸고 현대자동차공업사(1946년)와 현대토건사(1947년)를 설립했고, 이듬해 두 회사를 합병해 현대건설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어렵게 일군 기반을 잃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는 좌절 대신 다시 도전을 택했습니다. 부산으로 내려가 미군 토목공사를 따내며 재기의 기회를 만들었고, 전쟁 후 도시 재건 수요에 힘입어 현대건설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수차례 무너져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그는 현대그룹을 국내 최고 기업으로 키워냈습니다.
"예기치 못한 수많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결코 없다는 것이 내 삶의 체험에서 얻은 신념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남긴 이 말은 그의 삶 전체를 압축하는 문장입니다.
기업가로서 정상에 오른 뒤에도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2년 정치에 도전해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그저 선거에 나가 뽑히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흔들림 없이 기업가의 길로 돌아갔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끈기. 그것이 곧 정주영이라는 인물이었고, 이 정신이 오늘의 현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존경을 담아 '왕회장(회장 중의 회장)'이라 불렀습니다.

뉴스웨이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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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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