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눈속임의 유혹, 소비자 신뢰 갉아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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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의 유혹, 소비자 신뢰 갉아먹다

등록 2025.11.14 07:33

김다혜

  기자

reporter
식품업계에 '눈속임의 유혹'이 번지고 있다. 가격은 그대로지만 양은 줄고 원산지는 바뀌고 있다. 소비자는 예전과 같은 제품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다른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겉보기엔 변함없지만 실질적인 가치는 줄어드는 '조용한 인상'이 일상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다. 포장과 디자인은 그대로지만 중량이 줄거나 구성품이 빠진다. 기업들은 원가 상승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충분한 안내 없이 진행되는 조정은 사실상 가격 인상과 다르지 않다. 소비자는 외형만 보고 제품을 선택하지만, 구매 후 느끼는 만족감은 달라진다. 그 차이가 쌓일수록 불신은 깊어진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소비자를 기만하는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꼼수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제품 용량 축소 시 표시 의무 강화, 정보 공개 기준 세분화, 소비자 고지 의무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소비자가 제품 변화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법과 제도만으로 신뢰를 회복하기는 어렵다. 정직은 제도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은 치킨업계에서 불붙었다. 일부 순살 메뉴의 주재료를 닭다리살에서 안심으로 바꾸고, 중량을 줄였지만 가격은 그대로였다. 소비자들은 '꼼수 인상'이라 반발했고 결국 원상복구했다. 소비자는 가격표보다 정직함에 더 민감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원산지 변경 논란도 소비자 신뢰를 흔들고 있다. '이탈리아 초콜릿'으로 알려진 제품의 생산지가 최근 중국으로 바뀌었다. 유통사 측은 "품질 기준은 동일하다"고 설명했지만 사전 고지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소비자가 기대한 브랜드 이미지와 실제 제품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신뢰의 균열은 깊어진다.

물론 기업들의 사정도 있다. 원재료비, 인건비, 물류비가 오르며 제조업 전반이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부담을 '소비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전가하는 순간, 단기적 비용 절감은 장기적 신뢰 손실로 되돌아온다. 눈속임으로 버틴 비용 절감은 결국 브랜드의 신뢰를 갉아먹는 부메랑이 된다.

식품기업의 경쟁력은 원가 절감이 아니라 신뢰의 관리 능력에서 나온다. 용량을 줄이거나 원산지를 바꾸는 일이 불가피하다면 그 사실을 명확히 알리면 된다. 소비자는 변화를 이해할 수 있지만 기만에는 관대하지 않다. 투명하게 설명하는 기업은 오히려 '정직한 브랜드'로 인식돼 더 큰 신뢰를 얻는다.

지속 가능한 식품 산업은 투명성 위에서만 유지된다. 소비자의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지만 다시 쌓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눈속임의 유혹은 잠시 이익을 줄지 몰라도, 결국 신뢰라는 자산을 갉아먹는다. 식품업계가 지켜야 할 진짜 경쟁력은 정직함이다. 눈속임이 아니라 투명함이, 꼼수가 아니라 신뢰가 브랜드의 미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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