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생활 접점 장악하라"···은행권, 수신 경쟁 지형도 다시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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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접점 장악하라"···은행권, 수신 경쟁 지형도 다시 그린다

등록 2025.11.14 11:10

박경보

  기자

금리 경쟁력 약화에 생활기반 중심 수신 전략 전환미성년·예비부모·모임·사업자 등 특화계좌 출시 확산전문가 "특화상품으론 부족···선제적 이탈 관리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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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의 수신 경쟁이 금리 중심에서 생활 기반 플랫폼 전략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금리 인하와 고객 이동성 확대가 겹치며 기존 방식만으로는 수신 기반을 지키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앞으로는 계좌를 생활에 얼마나 깊게 연결하느냐가 각 은행의 수신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14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들은 4분기 들어 특화 수신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이 비대면·전용계좌 중심으로 범위를 넓히는 가운데 시중은행도 미성년·예비부모·모임·사업자 등을 겨냥한 신규 상품을 선보였다.

케이뱅크는 지난 11일 은행권 최초로 '비대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정책자금 전용통장'을 출시했다. 100% 비대면 통장 개설이 가능해지면서 정책자금 이용 고객의 접근성과 편의성이 크게 향상될 전망이다.

카카오뱅크는 '우리아이통장·적금'을 중심으로 가족 단위 사용성을 강화하고 메시지·공동관리 기능 등 생활형 인터페이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토스뱅크는 '태아적금', 아파트 관리비 자동납부 기능을 포함한 모임 기반 서비스로 예비부모·공동체 고객군을 빠르게 끌어들이는 모습이다.

신한은행은 시중은행 가운데 생활·참여형 수신상품을 가장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 3일 출시된 '오락실 적금'은 게임 미션 성과에 따라 금리가 달라지는 상품으로, 저축의 재미를 금융 체험으로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SOL모임통장'은 공동지출·납부·정산 수요를 계좌 내로 끌어들였고, 정산·송금·경비 처리를 한 화면에서 끝내도록 설계된 'Npay biz 신한통장'은 소상공인 락인을 겨냥한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KB국민은행은 고객이 직접 우대조건을 구성하는 'KB나만의 적금'을 중심으로 생활 기반 거래를 계좌 사용성과 연결하고 있다. 신규고객을 대상으로 생활 결제·이체를 우대조건으로 설계해 초기 락인 구조를 강화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지난달 30일 출시된 하나은행의 '모두 다 하나통장'은 입출금과 증권 계좌를 통합해 국내·미국 주식을 바로 거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급여이체·주식거래를 우대조건으로 묶었고, 미성년 비대면 개설 기능까지 결합해 가족 단위의 초기 고객군 확보 전략도 구체화했다.

은행권 예금 기반 '흔들'···정부 정책적 요구도 부담


은행권의 특화 수신상품 경쟁이 치열해진 배경은 예금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은행권의 수신 기반은 예년과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통상 은행의 총수신은 상반기에 증가하지만 올해는 오히려 여유자금(총수신–여신)이 마이너스(-1조6900억원)를 기록하는 예외적 상황이 나타났다.

은행 자산의 대부분이 대출과 유가증권 투자로 구성되는 만큼, 여유자금 축소는 국채·정책채 등 유가증권 흡수 능력 저하로 직결된다. 특히 예금보호한도가 상향된 올해는 4분기 만기 재예치 경쟁이 불가피한데다 정부의 국채·기금채 발행 확대, 정책 관련 채권 수요 증가가 동시에 맞물려 있는 상황이다. 정책적 요구를 뒷받침할 자금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수신 확충 전략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수신금리가 낮아지고 빅테크의 생활 중심 서비스가 확장되면서 기존처럼 금리만으로 고객을 붙잡는 구조가 통하지 않는다는 위기감도 은행권 전반에 확산됐다. 모바일 앱 안에서 고객이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고 생활 속 편의 기능으로 묶어두는 것이 은행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 됐다는 얘기다.

일상 거래 데이터 축적돼야···미국은행은 AI 적극 활용



다만 생활밀착형 수신상품 출시가 실질적인 수신 잔액 증가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 미성년·예비부모 대상 계좌는 가입자 증가 속도는 빠르지만 예수금 증가로 곧장 연결되기 어려워서다. 이벤트성 적금 상품도 단기 자금 유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계좌 수 확대만으로는 락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일상적인 거래 데이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축적할 수 있느냐가 장기 성과를 가르는 변수로 꼽힌다. 결제·이체·납부 등의 반복적인 생활 거래가 꾸준히 발생해야 평균 잔액이 유지되고 주거래 전환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금융상품으로의 이동경로도 생활금융 기능이 촘촘할수록 확장될 여지가 커진다.

금리가 다시 오르거나 경쟁사가 더 매력적인 생활금융 기능을 선보일 경우 고객 충성도가 얼마나 유지될지도 관건이다. 생활밀착형 계좌가 주거래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일시적으로 유입됐던 고객이 다시 경쟁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특화상품 경쟁을 넘어 '수신잔액이 빠져나가는 흐름'을 먼저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상품을 늘리는 것보다 어떤 고객의 돈이 언제 빠져나갈지 미리 파악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먼저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주영민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예금 증가율 둔화로 유동성 리스크에 직면한 미국 은행들은 고객행동 분석 및 맞춤형 마케팅, 동적 금리 최적화, 핫머니 리스크 관리 등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경쟁력을 혁신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며 "은행들은 앞으로도 데이터 활용 능력 강화 및 고객 중심 전략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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