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발 명목성장률 21.9%···소득 확산 시차에 주목소비 회복에 물가 압력도···10월 금리 결정은 열어둬

사진 왼쪽부터 곽범준 조사국 경기동향팀장, 안성근 통화정책국 정책기획부장, 박종우 부총재보, 최창호 통화정책국장, 유재현 국제국 국제기획부장, 배문선 통화정책국 정책협력팀장. 사진=한국은행
반도체 수퍼사이클에 힘입어 급증한 국민소득이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기업 이익 개선과 세수 확충은 침체된 내수 회복을 견인하는 동력이 되지만, 자칫 민간 소비로 급격히 확산될 경우 잠재된 물가 상방 압력을 자극할 수 있고, 주택 등 자산시장으로 유입될 경우 금융불균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소득 증가의 파급 속도와 앞선 두 차례 금리 인상의 시차 효과를 종합적으로 점검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의 시기와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방침이다.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1.9%로 실질GDP 성장률 3.8%를 크게 웃돌았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가격이 오르면서 수입가격에 비해 수출가격이 얼마나 유리해졌는지를 나타내는 교역조건이 크게 개선된 영향이다.
생산보다 빠르게 늘어난 소득···내수 확산은 시차 문제
한은의 근사치 기준 기여도 분해에서 교역조건 개선은 상반기 명목GDP 성장률에 15.0%포인트(p) 기여했다. 실질GDP 성장과 내수 디플레이터의 기여도는 각각 3.8%p, 3.1%p였다. 생산량 증가뿐 아니라 수출품을 더 높은 가격에 팔면서 늘어난 소득까지 살펴야 경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기자설명회에서 "고도성장기에나 나올 법한 숫자들이 나오고 있다"며 소득 증가가 소비와 자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통화정책에서도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늘어난 소득은 기업에서 정부와 가계로 시차를 두고 전달되고 있는 모양새다. IT뿐 아니라 조선·기계 등 여타 제조업의 수익성도 개선됐고, 상반기 국세수입은 223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조9000억원 늘었다. 반면 명목임금 상승률은 1분기 3.4%, 2분기 2.1%에 그쳤다. 기업 실적과 가계의 소득 개선이 같은 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은은 IT 호황의 효과가 관련 기업과 종사자에게 제한되면 소비 회복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제약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박 부총재보는 이를 내수 파급 자체가 없다는 의미보다는 시차가 길어질 가능성에 가까운 것으로 설명했다. 이례적으로 큰 소득 증가와 세수 확대 등을 고려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전반에 퍼질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 늘면 물가 압력···자산시장 향하면 부채 위험
소득 개선은 소비 회복의 동력이지만 물가 안정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한은은 그간 높아진 비용 압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수요 측 압력도 커져 물가상승률이 상당 기간 목표를 웃돌 것으로 봤다. 실제 파급 강도는 늘어난 소득 중 얼마가 저축이나 자산 취득 대신 소비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자산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도 경계 대상이다. 박 부총재보는 "여유자금들이 자산시장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금융안정 쪽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명목GDP 증가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낮아지더라도 부채 관리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부채 비율이 주요 선진국보다 여전히 높고 소득 개선이 주택 매입수요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가격 상승 기대와 차입 확대가 맞물릴 위험도 남아 있다.
유가·환율과 금리 인상 효과 함께 점검
중동 리스크는 물가 전망의 불확실성을 더한다. 박 부총재보는 중동 긴장 고조가 성장과 물가 모두에 부정적이지만 현재 여건에서는 성장보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봤다. 다만 단기간의 유가 흐름만으로 기존 전망 시나리오가 바뀌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환율 하락이 물가를 낮추는 효과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곽범준 한은 경기동향팀장은 "최근 환율 하락이 수입물가에 하방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유가 상승 등 상방 요인까지 종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3.1%, 근원물가 상승률 3.3%에는 통신료 인하의 기저효과가 있으나, 누적된 유가 충격과 수요 압력으로 근원물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연속 인상해 연 2.50%에서 연 3.00%로 높였다. 박 부총재보는 "금리 인상이 물가 압력을 낮추는 데는 시차가 있는 반면 소득 증가에 따른 수요 압력은 갈수록 커질 수 있다"며 양쪽 효과를 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불균형에 대한 경계가 곧바로 10월 인상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주택 공급과 거시건전성 정책을 함께 장기간 추진해야 할 문제여서 금리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박 부총재보는 10월 회의에 대해 "회의 직전까지 입수되는 데이터들을 종합적으로 점검해서 결정하는 라이브 미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 증가가 내수와 물가로 번지는 속도, 이미 시행한 금리 인상의 효과, 중동 정세를 함께 확인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편 한은은 반도체 업황에 대한 기대 변화와 레버리지 투자에 따른 주식시장 변동성도 경계했다. 박 부총재보는 "최근 증시 변동성 확대에 메모리 반도체 업황 전망 변화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레버리지 투자 등이 변동성을 더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레버리지 ETF 규모가 상당 부분 줄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뉴스웨이 문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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