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남양유업 사태는 그동안 우리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이른바 갑을(甲乙)관계의 불편한 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을’들이 참아왔던 목소리가 폭발한 것일 뿐이다.
갑의 ‘본사’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비단 남양유업 일만이 아니다. 강제 판매, 밀어내기 등 본사 ‘갑의 횡포’가 산업계 전반에 존재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공정한 ‘갑을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업들은 ‘갑을문화’ 청산해야 한다는 움직임으로 확산됐다.
업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든 거래 계약서에 갑과 을이란 명칭을 없앴다. 이와 함께 갑을 관계가 아닌 존중을 바탕으로 협력자와 동반자 관계로 재정립하는데 적극 나서며 다양한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을’들은 표면적 대책보다는 근원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계약서에서 갑을관계 표시를 삭제하고 동방성장을 위하는 것만으로는 불공정한 거래관계의 틀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 여론에 밀려 보여주기식 대책만을 내놓는 갑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적에 대한 직원들의 압박감, 생산성 아닌 거래단가로 맞추려는 사고 등이 달라지지 않으면 제2의 남양유업 사태는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을’들은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와 횡포를 없애기 위해 입법조치를 동원해서라도 엄격한 제도적인 제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를 위해 남양유업 사태에서 드러난 본사·대리점주 간 불공정 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갑을관계법’ 입법 논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가맹사업주와 가맹점, 하도급, 대규모 유통업을 관장하는 이들 법안은 을에 해당하는 상대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갑의 횡포 재발방지책으로 공정거래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과 밀어내기를 강제할 경우 손해의 최대 3배를 보상토록 하는 대리점거래 공정화법 법안 제정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갑을관계에 있어 갑을이 문제이기보다는 ‘갑을’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학계 한 관계자는 “수평적 거래 관계를 수직적 주종 관계로 착각하는 비뚤어진 갑을 관계를 바로잡으려면 경제민주화 차원의 제도적 개선책도 필요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 문화와 의식도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유통업계에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도매유통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제조사가 독점적인 유통망을 보유한 한국만의 독특한 시장 구조에서는 언제든지 터질 수밖에 없는 갈등이었다”며 “제조와 유통이 완전히 분리되고 제조사에 종속되지 않는 강한 대리점을 유통 중소·중견기업처럼 육성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보라 기자 kin337@
뉴스웨이 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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