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으로 기억한다. ‘그때 또 다시’와 ‘결혼해줘’로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두 번이나 차지하며 골든컵을 가슴에 품고 펑펑 울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같은 해 임창정은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였던 H.O.T.를 제치고 ‘KBS 가요대상’에서 영광의 대상을 받으며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요즘 세대들에게는 영화배우 혹은 야구선수(천하무적 야구단)로 기억하는 임창정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은 만능엔터테이너의 원조다. 지난해 감성적인 발라드 ‘나란 놈이란...’과 임창정 특유의 코믹댄스로 인기를 끌었던 ‘문을 여시오’의 디지털 싱글로 대중들과 3년만에 호흡한 임창정이 5년만에 정규 앨범 12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임창정은 그동안 영화배우로써 꾸준히 관객들을 만나 왔지만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팬들과의 자리가 늘 그리웠다. “콘서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규앨범을 발매하게 됐어요. 제가 콘서트를 15년 전에 해보고 못해봤거든요. 행사만 몇 번 했었고 그때마다 재미가 없고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죠. 영화도 찍어야 하고 노래도 해야하니까 콘서트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앨범 활동이 뜸해지고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가수들의 콘서트를 다녀보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하고 예전의 콘서트 문화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느 걸 느꼈어요. 지금은 팬클럽이 아니지만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팬들에게 한 공간에서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노래를 같이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콘서트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앨범을 내게 됐죠. 제가 가수라는 것을 인지 시키려면 방송활동을 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디지털 싱글을 냈습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내친김에 정규앨범을 내보자는 생각에 정규앨범까지 발매하게 됐네요.(웃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사와 대중적인 멜로디,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임창정 특유의 감성 보이스가 묻어나는 음악들로 가득 채워진 이번 앨범은 임창정이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이번 앨범은 열 다섯 곡 중 70%가 발라드로 채워졌다. “지난해 디지털 싱글 ‘문을 여시오’는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싶어서 냈던 곡이예요. 절 보시는 분들이 재미있어하고 제가 흥겨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 앨범 발매 때 사장님께서 ‘회사 입장도 좀 생각해달라’고 하셨죠.(웃음) 그래서 발라드를 선택하게 됐어요. 첫 번째 활동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아요.” 임창정은 지난해 디지털 싱글 ‘문을 여시오’로 중국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다른 K팝스타처럼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부르면 무조건 갑니다. 중국에서도 불러주셔서 갔었죠. ‘춘완’이라는 무대에도 서보고...중국 분들이 ‘문을 여시오’를 정말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임창정은 그렇게 자신의 이름 세글자를 조용히 알리고 있었다.
임창정은 10여년전 연기에 몰두하고 싶어 은퇴를 선언 했다가 번복하는 일도 있었다. 여러 방송에서 은퇴 이야기를 하면 창피하다며 피하고 싶어했던 그가 말문을 열었다. “번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무대 울렁증도 있었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했죠. 무대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긴장이 되고 남의 팬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싫었고 제가 노래 부르는 도중 관객들이 입구를 쳐다보는 것도 싫었어요. 그래서 은퇴를 생각했었죠. 뭐 지금은 그것마저 다 초월이 됐지만요. 그러다 문득 더 늦기전에 저를 원하는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분을 위해 노래를 해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죠. 이제 은퇴 선언은 안할래요.(웃음) 노래는 오랫동안 할 것 같아요. 처음엔 제가 ‘인기가요’ 같은 음악프로그램에 나오는 게 웃긴 것 같더라고요. 저는 한 번 누려본 사람이잖아요. 많은 후배들이 그 무대를 서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는데 그 친구들의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제 생각이고 또 회사를 생각한다면 괜한 미안함을 가진 것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웃음) 제가 잠시라도 은퇴를 하지 않았더라면요? 가요계를 점령하지 않았을까요.(하하하)”
진짜다. 서두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임창정은 90년대 후반 최고의 가수이자 명품 발라더였다. 당대 최고의 음악프로그램 골든컵은 쉽게 허락하는 자리가 아니였다. 특히나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음원차트 판도가 변화하는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최근에는 2003년 발표한 ‘소주 한 잔’이 차트에 재진입 해 역주행 하는 등 ‘임창정’의 곡은 시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히트곡 뿐 아니라 매번 발매되는 신곡이 음원순위 점령에 대한 욕심도 당연하다. “솔직히 욕심이 나죠. 사실 음원 1등은 나올 때 마다 했었어요. 지난번에 ‘오랜만이야’가 발매 됐을 때는 슈퍼주니어 음원이 나오기 전까지 12시간 정도 1위를 했었죠.(웃음) 희한하게 음원 나올때마다 바로 1등을 하더라고요. 음원이 1등을 한다는 건 가수에게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또 제가 1등을 한다는 건 제 나이 또래에 살기 퍽퍽하고 힘이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 마치 대리만족을 시켜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1등 하는 것은 나쁘지 않는 것 같아요.”
자신을 긍정의 아이콘이라고 말하는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지난해 5월 결혼 7년만에 이혼했다. 아픔의 시간도 고스란히 잘 견뎌 냈던 임창정에게 심경도 조심스레 물어봤다. “고민한다고 벌어진 일이 없어지거나 되돌아갈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앞으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많이 힘들면 그게 잘 안되는게 사실이죠. 그때는 제가 웃는 것도 이상한 상황이 돼 버렸어요. 툭툭 털어버릴 수도 없었죠. 그래서 충분히 많이 힘들어 보고 고민도 해보자고 생각했죠. 그러다 어느날 제 얼굴을 봤는데 이제 그만 힘들어 해도 되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웃자’고 생각했어요. 더 고민한다고 해서 그대로 돌아갈 수 없을테니 그만하자고요. 그때부터 억지로라도 웃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전에는 주변에서 측은하고 안쓰럽고 힘내라고 이야기하시더니 이제는 무슨 좋은일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생각해보니 억지로 웃으면 정말 거짓말처럼 웃는상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웃는다는 건 열심히 할 자세가 돼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래서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웃고, 제가 먼저 바뀌니까 행복해진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긍정적인 그는 결국 자신의 아픔과 상처의 시간들도 고스란히 인내하며 새 앨범에 녹여 냈다.
연예계 원조 만능엔터테이너라고 하면 임창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가수, 배우, 예능인. 그 어느 하나도 소홀한 것이 없고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만의 색깔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저는 대중 예술을 하는 광대라고 생각해요. 저를 필요로해서 보고싶어하는 그 자리에 가 있는 광대일 뿐, 어디든 갈 수 있고 날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예요. 임창정의 이름 앞에 가수나 배우, 코미디언 등의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는 않아요. 직업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전 그냥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끝내며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할 수 있게 도움을 줬던 팬들과 동료들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번 앨범 땡스 투에 처음으로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어요. 이름을 쓰는 자체가 너무 무의미하더라고요.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에게 참 고맙습니다’라고 썼어요. 제 주위에서 저를 걱정해주는 사람만큼이나 더 많은 분들이 저를 걱정해주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어느 누구를 위해 저는 앞으로 노래를 부를 것이고 연기를 할 것이고 계속 웃고 재롱도 부릴거예요. 동료들도 참 고맙지만 제 앨범을 사주는 팬들에게 더욱더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아 참, 콘서트장에도 돈 내고 많이 와주실꺼죠.(하하하)”
[사진=NH미디어 제공]
김아름 기자 beautyk@
뉴스웨이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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