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 개봉 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정우성은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일 것이란 선입견을 갖고 있는 대중들이 많다. 지금까지 그가 맡아온 배역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정말 오해다. 정우성은 유머스럽고 개그감도 넘치며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고도 넘치는 매너남이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신의 한 수’와 같은 멀티 캐스팅 영화에서도 그의 배려심은 장점으로 작용했다. 어쩌면 그게 진짜 원동력이 됐을 수도 있다.
“나 때문에 흥행 중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태어나서 들어본 말 중에 가장 말이 안 되는 말이에요.(웃음) 오롯이 영화 자체의 힘을 관객들이 느낀 것 아닌가요. 배우 혼자 잘나서 흥행이 되는 건 절대 없어요. 영화란 시나리오의 완성도 좋은 스태프와 그에 딱 맞는 배우들의 조합이 이뤄졌을 때 시너지가 폭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신의 한 수’는 그냥 정말 즐길 수 있는 영화에요. 멍하니 와서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는 영화. 이런 장점이라면 최고 아닐까요.”
그의 말처럼 ‘신의 한 수’는 완벽한 상업적 코드에 맞춰진 기획성 액션 영화다. 고리타분한 ‘복수극’을 대전제로 깔고 선역과 악역의 대결 구도가 명확하게 갈려져 있다. 주제 의식도 이미 수 없이 반복된 ‘권선징악’이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열광한다. 이 부분에서 ‘신의 한 수’의 흥행 포인트 첫 번째가 발생한다. ‘바둑’이란 소재와 액션이란 장르의 결합이다. 도저히 매치가 안된다.
“저 역시 그 부분이 가장 궁금했어요. 우선 전 바둑을 전혀 몰라요. 그런데도 시나리오를 받아 읽었는데 너무 재미가 있더라구요. 바둑 용어들이 무슨 무협지의 고사성어 같았어요. 바둑에 문외한인 제가 이 정도로 재미가 있다면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더군다나 바둑이 정적인 스포츠로만 알고 있잖아요. 절대 그렇지가 안더라구요. 반상 위의 전투라고 하잖아요. 액션과 정말 잘 맞는 부분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정말 잘 이끌어 주셨죠.”
그래도 바둑에 대한 문외한인 그가 바둑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니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우선 바둑이란 스포츠가 단 시간안에 습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바둑’의 경우 한-중-일로 이어지는 삼국의 스포츠란 인식이 강하다. 국내 저변 인구가 탄탄하다. 영화 속 그의 디테일이 자칫 오점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촬영전 한국기원 소속의 프로바둑 기사 분에게 아주 조금 배웠어요. 글쎄 배웠다고 하기에도 민망해요. 그냥 착수(바둑돌을 바둑판에 놓는 동작) 정도 인데, 이 착수 만으로도 그 기사의 실력과 경험을 프로바둑 기사 분들은 볼 수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영화 속에서 착수 동작의 클로즈업도 많아서 신경을 많이 썼죠. 그냥 주머니에 바둑돌을 가지고 다녔어요. 침대 옆에도 두고(웃음). 그냥 테이블만 있으면 주머니에 돌을 꺼내서 ‘탁탁탁’ 두는 식이었으니까요(웃음). 사실 좀 배워보려고 했는데, 기사분이 ‘그냥 배우지 마세요. 시간 되시면 동네 기원에 취미로나 다니세요’라고 하더라구요. 정식으로 배우려면 3년은 족히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냥 깨끗하게 포기했죠(웃음).”
워낙 ‘신의 한 수’에 빠져들었기에 정우성은 여러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합류에도 발 벗고 나섰다. 극중 ‘주님’으로 출연한 안성기의 캐스팅에는 정우성의 공이 컸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극 전체의 액션 강도 역시 상당히 쎄다. ‘감시자들’에서 함께 한 최봉록 무술감독에 대한 합류도 정우성이 먼저 제안했다고. ‘감시자들’을 통해 서로에 대한 ‘감’이 통해왔기에 이번 작품에서도 함께 하고 싶었단다.
“제가 어떤 힘을 써서 여러 분들을 합류시킨 것은 절대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위치도 아니고(웃음). 우선 안성기 선배님은 제작진에서도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너무 대선배님이고 ‘드려도 될까’라고 고민들을 하셔서 ‘아니 부딪쳐 보면 되지 않냐’라고 말하고 제가 좀 나섰죠. 다행히 선배님이 흔쾌히 승낙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져. 최 감독은 이번 영화로 무술 감독으로 ‘데뷔’를 했는데, ‘감시자들’에서 저랑 너무 잘 맞았어요. 제가 제작진에 건의를 했죠. 액션스쿨 최봉록 감독팀이 어떻겠냐고. 조범구 감독님과 제작사에서 너무도 흔쾌히 응해주셨죠. 그리고 보셨지만 최 감독님이 너무 잘해주셨어요.”
하지만 그렇게 단짝인 최 감독과의 액션 시퀀스 ‘합’(액션의 동작)을 맞추는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큰 부상을 겪기도 했다고. ‘신의 한 수’ 속 유명한 액션 장면인 ‘냉동창고’ 촬영신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단다. 당시 다친 부상으로 이날까지도 팔꿈치에 뼈가 돌아다니고 있다며 만져보라고 팔꿈치를 내밀었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국내에서 가장 액션을 잘하는 배우’로 극찬한 정우성이지만 순간의 실수가 큰 사고를 만들어 냈다고.
“지금 팔꿈치에 뼈가 하나 조각나서 돌아다니고 있어요(웃음). 액션이란 게 그래요. 잠깐 방심하면 큰 사고가 나요. 냉동창고에서 최진혁과 싸우는 장면인데 상대방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하는 장면이었어요. 카메라에 대고 가격을 해야 하는데 안전바를 쳐버린 거에요. 뭔가 ‘딱’하는 소리가 나고 아프더라구요. 병원에 갔더니 뼈 조각이 돌아다닌다고 하네요(웃음). 뭐 ‘놈놈놈’때는 팔이 부러졌는데도 줄 감고 촬영도 했는데요 뭘. 시간 나면 병원 가서 빼야죠.”
영화 속에서 아쉬웠던 부분과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한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 유명한 ‘딱밤’ 장면과 이시영과의 키스신을 선택했다. 이 장면에 숨은 얘기가 있단다. 정우성은 “딱밤 장면을 아주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면서 “그 장면은 나도 참 웃긴다. 뭔가 절묘함이 들어있다. 작가분이 아주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반면 아쉬운 부분은 이시영과의 키스신, 당초 키스신이 아닌 베드신이었다고. 그는 “많이 아쉽다(웃음). 아니 농담이다. 사실은 그 부분에 나와 감독님의 상의로 키스신으로 대체했다. 되게 불필요한 장면처럼 느껴졌다”면서 “완성본을 보니 솔직히 키스신도 필요없어 보였다”고 설명했다.
데뷔 20년 차에 접어든 그는 최근 공백기가 없이 쉼없이 달리고 있다. 자칫 소모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주변의 의견도 많다. 지난해 ‘감시자들’부터 ‘신의 한 수’ 그리고 촬영 중인 ‘마담 뺑덕’과 ‘나를 잊지 말아요’까지 1년 동안 무려 4편에 각기 다른 인물로 등장한다. 정우성의 소모성을 걱정하는 팬들의 시각이 많다. 본인은 어떨까.
“한 20년을 해오니깐 이젠 내가 뭐를 잘하고 뭐를 즐기는지 알 수 있게 됐어요. 촬영장이 가장 즐거워요. 너무 뻔한 대답인데 그게 정답인 걸 어떻게 해요. 놀이동산 가는 기분이에요. 20년이 지나니깐 그걸 내가 느끼겠더라구요.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만의 방식이 이제 생긴 거죠. 소모성? 글쎄요. 내가 하는 배역들이 ‘도전’이란 단어 안에서 해석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극을 운반하는 사람이잖아요. 제가 운반할 수 있는 무게라면 견디는 것 뿐이에요.”
영화 ‘비트’를 자신의 인생 중 ‘신의 한 수’로 꼽는 정우성이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30대 이상의 남자 팬들은 ‘절친’ 이정재와의 열연이 돋보인 ‘태양은 없다’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다시 한 번 ‘태양은 없다’를 보고 싶다. 정우성은 “언제나 그 가능성은 정재씨와 함께 열어두고 있다”면서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다면 진행될 것이다. 아마도 몇 년 안에 우리 둘이 함께 하는 걸 꼭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최근 ‘마담 뺑덕’을 위해 7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운다는 정우성. 그에게 어쩌면 ‘도전’이란 단어는 일상을 넘어 습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정우성에겐 ‘신의 한 수’가 아닐까.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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