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많고 굴곡 많았지만 ‘환골탈퇴’명품학군 형성···강남권 부럽지 않아외부 유입 많지 않아 매맷값 보합세
길음동하면 ‘단장의 미아리고개’란 옛노래가 처음으로 떠오른다. 이곳을 설명하기 위해선 한국전쟁의 상흔으로 슬픔과 눈물, 한(恨)을 간직한 미아리고개를 빼놓을 수 없다.
미아리고개는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사대문 안팎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런 탓에 전쟁 당시 북한군 탱크가 이 고개를 넘어 서울을 점령했다.
또한 퇴각하는 북한군에 끌려가는 가족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한 곳이다. 경사가 어찌나 가파르던지 우마차도 쉽게 다니지 못하고 중간에 쉬었다가 넘는다는 이 고개에는 곳곳에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담겼다.
1960년대 차량이 늘면서 미아로의 정체와 사고가 잦아지자 확장공사가 진행됐다. 이 공사로 남북 방향으로 축대벽을 만들면서 자연히 굴다리가 생겨났다.
중구에서 이주해온 시각장애인 역술인들은 굴다리에 터를 잡았다. 1980년대 중반 외국인들도 찾는 관광코스가 됐다. 이런 명맥이 이어져 올해 성북구가 동네 관광상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 차례 확장공사에도 차량정체는 계속됐고 2007년 성북우체국~창문여고 구간을 왕복 7~8차선에 이르는 대로로 확장하면서 드디어 숨통을 틔웠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아리 텍사스촌’이다. 이곳은 고갯길을 넘자마자 시작된다.
이 지역이 성매매 집결지로 유명해진 것은 1968년 ‘종삼(종로3가 사창가)소탕작전’이 시행 이후 포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미아시장 근처 월곡동 88일대에 터를 잡으면서부터다.
텍사스라는 명칭은 당시 유행하던 서부활극에서 총잡들이 말에서 내려 1층 바에서 술을 마신 뒤 2층으로 옮겨 성매매하는 상황을 빗대 유래됐다. 이들은 이른바 ‘9·23 사태’로 불리는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하나둘 떠났다.
길음뉴타운은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은평·왕십리와 함깨 시범뉴타운으로 지정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다음해에는 신월곡 1·2·3구역으로 나뉘어 미아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불과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사연 많고 굴곡 많던 서민들이 모여살던 동네가 미아리고개 넘어 길음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북 뉴타운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성매매집결지라는 오명이 붙은 텍사스촌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길음뉴타운은 어두운 과거를 모두 털어낸 듯 보였다. 길음뉴타운 인근 D 공인중개소 대표는 “강북 최고 명문학군을 자랑한다”며 “요즘엔 학군 탓에 ‘강남권으로 굳이 이사할 필요를 못느끼겠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 길음뉴타운 인근에는 영훈초·국제중, 대일외고, 개운 초·중교, 성신여중·고교, 창문여고, 숭덕·정덕초교와 고려대, 성신여대, 국민대, 동덕여대, 서경대 등 대학들도 인접하다.
다만 현지 부동산 중개업계소 대표들은 대부분 전세가율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높지만 전세세입자들이 매매로 돌아서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W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최경환 효과로 시장이 살아난다는 보도를 접했으나 이 곳은 매맷값은 물론 매수·매도자의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면서 “문의 전화가 가끔씩 걸려 오긴 하지만 호가를 문의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다른 관점의 주장도 있었다. C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전세가율이 높은 것은 전세 재계약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보니 나타난 기현상”이라며 “월세세입자들이 매매로 전환하는 사례는 심심치 않게 있다”고 말했다.
성동규 기자 sdk@
뉴스웨이 성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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