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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신식 주화, 유통되지 못한 이유는?

우리나라 최초 신식 주화, 유통되지 못한 이유는?

등록 2014.12.13 20:28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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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사진=온라인 커뮤니티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가 공개돼 화제다.

13일 온라인커뮤니티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는 1888년(고종 25년) 경성전환국에서 발행한 1원 은화, 10문 적동화, 5문 적동화 3종이다.

특히 이들 주화에는 ‘개국 497년’이라는 연호가 들어가 있고 주화의 앞면 상부에는 태극인장이 찍혀 있다.

이들 주화에는 ‘개국 497년’이라는 연호가 들어가 있고 주화의 앞면 상부에는 태극인장이 찍혀 있으며 좌우에는 오얏나무 가지가 교차돼 있다. 뒷면 중앙에는 쌍룡이 그려져 있다.

태극은 국가를 의미하고 오얏나무 가지는 이씨 왕실을 뜻한다. 쌍룡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수 있다.

하지만 1888년에 발행된 3종의 신식 화폐는 실질적으로 유통되지 못했다. 신식 화폐를 주조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금과 은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조폐 수익이 많지 않았고 사회·경제적으로도 신식 화폐를 받아들일 기반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주화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우리나라 최초 신식 주화, 신기하다”, “우리나라 최초 신식 주화, 유통되지 못한 이유가 있었구나”, “우리나라 최초 신식 주화, 고급스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김은경 기자 cr21@

뉴스웨이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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