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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주 얼굴이 그려낸 ‘악의 연대기’ 속 무게감

[인터뷰] 손현주 얼굴이 그려낸 ‘악의 연대기’ 속 무게감

등록 2015.05.18 08:15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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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손현주는 진화하고 있다. 사실 좀 그렇다. 손현주에게 ‘진화’란 단어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꽤 무례한 언사다. 이미 그를 가리켜 ‘갓’현주라고 언론들은 평가하고 있다. 연기에서 만큼은 ‘신의 경지’에 오른 존재감을 스스로가 손사래 쳐도 어쩔 수 없다. 몇몇 작품들은 그렇다. 조금 모자란 완성도가 눈에 거슬려도, 배우들의 무게감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도, 믿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원동력이 바로 확실한 보증수표, 즉 손현주 같은 배우의 존재감이란 점에선 이견이 나올 수 없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가장 평범한 얼굴, 아니 솔직히 말해 평균보다 조금 더 평범한 진짜 소시민의 얼굴 속에 그는 영화를 담아낸다. 그래서 영화 ‘악의 연대기’가 범상치 않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손현주란 얼굴이 완성한 진짜 영화 같은 스크린 속 세계를 들여다 봤다.

다른 영화 촬영이 겹쳐서 이날도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인터뷰 장소에 왔다. 바로 전날까지 지방에서 촬영을 한 뒤 인터뷰에 늦을까봐 근처에서 잠을 자고 왔다는 그는 냉커피 한 잔을 시원스럽게 빨대로 쭉 빨아 들이켰다. 가까이서도 봤고, 멀리서도 봤고, 영화로도 봤지만 참 평범한 얼굴이다. 그런데 이 얼굴 속에 수많은 장르가 뒤섞여 담겨 있다.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하하하, 그거 못생겼단 소리 아니에요? 우리 집 애들이 웃겠네요. 제가 어디 가서 생긴 걸로 서열 정하면 아마 꼬리 쪽은 제 담당일거에요. 참 평범하게 생겼죠. 아니 좀 떨어지잖아요. 솔직히. 하하하. 자주 만나는 후배나 친구들 중에서도 장 혁이가 제일 잘생겼지 아마? 진짜 주변에 비주얼들 없네. 아이고. 참나. 하하하. 뭐 이 얼굴로 그래도 아직은 배우질 잘하고 있으니 불만족스럽지는 않아요.”

농담이 진하게 섞인 질문과 대답이었지만 사실 손현주의 최고 무기는 그 얼굴이다. 물론 연기에 대해서는 논할 가치조차 없음은 굳이 설명 안 해도 된다. 그의 얼굴이 표현한 ‘악의 연대기’ 속 최창식 반장의 고민과 고통 그리고 선택의 악순환은 끊을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만 켜져 나갔다.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그게 진짜 죽을 맛이었죠. 최창식이란 인물. 그냥 나 자신을 수도 있고, 기자님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우리가 알고 있는 또 누군가의 모습일 수도 있고. 그만큼 평범한 인물이에요. 우리가 살면서 어떻게 백로처럼 고고하게만 살아요. 살다보면 때도 타고 그러는 건데. 최창식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숨겨야 하는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주변에는 말을 못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감춰야 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진짜 미치는 거죠.”

연출을 맡은 백운학 감독은 ‘악의 연대기’ 제작보고회 그리고 언론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연이어 손현주의 연기에 극찬을 쏟아냈다. “손현주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편집 과정에서 눈물을 머금고 잘라낸 손현주의 장면이 있다” 등 백 감독의 손현주 사랑은 유명했다.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아 진짜 감독님 때문에 쑥스러워 미치겠어요. 진짜 그러지 좀 말라고 그래요. 하하하. 편집된 장면이 뭐 특별한 내 연기가 담긴 장면은 아니라. 어린 꼬마에게 돈 3만원을 쥐어주며 뭐라고 위로하는 장면인데, 그게 극 흐름 상 좀 걸림돌이라 편집을 한 것 같아요. 뭐 쉽지 않은 촬영이었단 점은 누누이 말씀드려도 부족할 정도에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백 감독이 저한테 ‘눈빛만으로 8가지의 인간 감정을 표현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정말 황당해서 ‘감독님 나와서 해봐요’ 그랬죠. 하하하.”

감독을 잘 ‘타지’ 않는 배우로 유명한 손현주이지만 ‘악의 연대기’의 백운학 감독은 2003년 영화 ‘튜브' 이후 무려 12년 만에 현장에 복귀한 감독이다. 절치부심의 기간이 오래된 만큼 의욕이 컸을 것이고, 원하는 바와 지적도 많았을 법했다. 배우들 맏형으로서 감독과의 호흡과 조율이 궁금했다.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그게 뭐 조율이랄 것도 없어요. 사실 제가 촬영장에서 한 가지 지키는 것 가운데 하나가 모니터를 안보는 거에요. 모니터를 보면 자꾸 내가 뭘 하게 되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미 좋은 연기로 오케이를 받았지만 내가 자꾸 뭔가 떠오르고 그걸 시도하게 되는 거죠. 한 마디로 폼을 잡게 되요. 제가 진짜 싫어하는 게 폼 잡는 거에요. 내 느낌에 맞게 때로는 감독님의 요구에 맞게 가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백 감독님하고는 정말 잘 맞는 호흡이었죠. 큰 요구도 없었고, 절 많이 믿어주셨어요.”

그에게 수식어처럼 따라 붙는 ‘갓’(God)이란 단어는 연기에 대한 진한 농도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전작 ‘숨바꼭질’때만 해도 그랬다. 그 당시에도 손현주는 ‘갓’이었다. 하지만 영화계에선 검증되지 않은 주연이었다. 상대역인 문정희와 신인 감독 허정의 연출이란 점에서 ‘숨바꼭질’의 성공을 예감한 사람은 전무했다. 하지만 흥행 포텐이 터졌다. 그리고 이젠 검증된 배우로서 ‘악의 연대기’를 이끌어야만 한다.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일부 기자님들이 제게 절정기 혹은 ‘갓’이란 얘기를 자꾸 하시는 데 전 단 한 순간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어요. 우선 ‘갓’이란 단어 좀 제발 쓰지 말아주세요(웃음). 이순재 선생님 박근형 선생님 신구 선생님 백일섭 선생님 등 연기 달인 분들이 얼마나 많으세요. 진짜 민망해요(웃음). 그리고 절정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배우로선 끝이라고 봐야죠. 그냥 그때 그때 물 흐르듯 날 맡기고 있어요. 절정기? 저한테 그런 건 없어요. 하하하. 저 배우일 오래 하고 싶어요(웃음)”

아무래도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손현주를 화제로 몰았던 점은 그의 암수술일 것이다. 갑작스럽게 갑상선암 수술을 받게 됐다. 한 동안 건강에 신경 쓰느라 촬영에도 지장을 줄 수 밖에 없었다고. 그 생각만 하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단다. 물론 지금은 완쾌 수준이고, 그렇게 좋아하는 술도 조금 할 수 있다고.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사실 촬영이 지난 해 5월에 시작됐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늦어졌죠. 감독님 스태프 배우들 모두가 나 하나 때문에 기다려줬어요. 너무 감사하죠. 제가 뭐라고. 미안한 만큼 정말 촬영 시작하고 나서 죽기 살리로 매달렸죠. 제가 얼굴이 아주 평범해서 조금만 대충해도 티가 확나요. 하하하. 그래서 진짜 죽기 살기로 매달렸어요.”

인터튜가 끝날 때쯤 물어봤다. 사실 손현주는 발군의 코미디 감각을 지닌 배우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어둡고 음침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며 무채색의 색깔을 입혀 나가고 있는 듯했다. 전작 ‘숨바꼭질’도 그랬고, 손현주 필생의 대표작이 된 드라마 ‘추적자’도 그랬다.

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사진 = 호호호비치 제공

“그러고 보니깐 진짜 그러내요. ‘숨바꼭질’ 끝내고 ‘악의 연대기’ 시나리오를 곧바로 받았어요. 사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추적자’ 이후로 색깔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글쎄요. 스릴러를 좋아해서 계속 이어가는 것은 아닌데 이젠 좀 그만해야 하나? 그런데 다음 작품도 스릴러인데 어떻하지? 죽겠네요. 하하하.”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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