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딸기’ ‘유쾌한씨의 껌씹는 법’ 등의 음악스타일로 90년대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삐삐밴드를 기억하는가. 당시는 상상치도 못했을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각종 사고(?)로 파란을 일으켰던 삐삐밴드가 데뷔 20주년을 맞이해 19년만에 새 앨범을 발매했다.
꽤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첫 인상부터 여전히 ‘강렬’하고 또 ‘파격’적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펍 한쪽에 앉아 다소 조용한 듯 개인 시간을 즐기고 있는 이들의 첫 인상은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그대로였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며 숙취에 괴로워하던 박현준은 인터뷰 도중 취재진들에게 몇 번이고 질문을 되묻는가 하며, 돌발 행동 등으로 꽤나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나마 정상(?)이었던 이윤정과 달파란이 인터뷰를 이끌어 갔다.
왜 이들은 20년 전 데뷔 후 꼬박 3년이라는 짧은 활동 후 다시 대중들 앞에 서게 됐을까. 당시 매니저였던 현 팝뮤직 대표가 20주년 기념으로 앨범을 발매해보자는 제안이 시발점이었다.
“갑자기 연락이 와서 삐삐밴드 20주년이 다가오는데 앨범을 낼 의향이 있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하는 일들이 많아서 ‘오빠들이 하면 하겠다’고 했죠. 오빠들이 당연히 안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런데 다들 흔쾌히 하겠다고 했고,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진행됐어요. 본인들 하는 일도 있을거고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예전처럼 편하고 쉽고, 또 빠르게 진행이 되더라고요.”(이윤정)
“일단 재밌을 것 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워낙 짧게 활동했지만 사고들도 있었고 여러 가지 추억할만한 기억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같이 하면 재미있는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궁금함이 앞섰어요.”(달파란)
삐삐밴드는 지난 1995년 1집 ‘문화혁명’을 통해 키치적 스타일을 가미한 펑크록으로 데뷔했으며 2집 ‘불가능한 작전’에서 무그와 리듬 프로그래밍을 앞세운 뉴 웨이브 사운드를 선보이며 가요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활동을 중지했다. 여성 보컬 이윤정이 돌연 미국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제가 좀 어려서 오빠들이 어려웠어요. 전 일렉트로닉 음악에 빠져있었고 오빠들은 밴드 출신이어서 저와 가는 길이 조금 달랐죠.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걸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럼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거야’라는 생각으로 미국으로 향했죠. (웃음) 이후 고구마(권병준) 씨가 합류해 오빠들은 ‘삐삐롱스타킹’으로 활동했고 우리와 한 식구라 친하지만 이번에 함께하려 해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했어요.”(이윤정)
삐삐밴드는 이윤정의 돌연 미국행에 남성 보컬 고구마를 영입해 ‘삐삐롱스타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밴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7년 완전히 해체하며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이윤정은 현재 스타일리스트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간간히 일렉트로닉 음악쪽에서 활동했다. 또 달파란은 영화음악과 함께 일렉트로닉 장르로 음악적 방향을 선회해 활동하고 있으며 박현준은 꾸준히 밴드 활동을 이어왔다.
20년의 공백기간이 있었지만 새 앨범 발매를 위한 작업 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빨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요즘은 컴퓨터로 하니까 음악 작업이 빨라서 좋더라고요.(웃음)”(박현준)
오랜 공백기 때문에 정규 앨범을 기다린 팬들에게는 조금은 아쉬운 EP앨범이다. 달파란은 “각자 하는 일이 있다보니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 EP앨범을 냈어요. 세월이 많이 지나서 우리를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잘 모르고 앨범 작업을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EP앨범이지만 삐삐밴드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앨범이다.
“삐삐밴드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명함처럼 내미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달파란) “우리는 파격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고 아직도 이런 음악을 할 수 있고, 더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앨범이예요.”(박현준)
“이번 앨범으로 ‘특별히 무언갈 이야기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정말 마음 편하게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었어요. 예전부터 음악을 만들 때 어떤 장르를 고집하지는 않았어요.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소리들이 있으면 다 갖다 썼던 것 같아요. 음악 장르에 대해선 비교적 자유롭게 생각을 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달파란)
꽤나 큰 충격이었다. 삐삐밴드라는 그룹사운드는 어린 나이의 본인에게는 ‘이런 가수도 있구나’라고 신선함을 안겨준 밴드였기 때문이다. 번지르르한 무대 의상이 아닌 동네 슈퍼갈 때 입을법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거나,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욕이나 침을 뱉는 등의 자칫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사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냥 헤프닝일 뿐이예요. 그게 어떤 사람을 제재할 행위는 아니잖아요. 방송국이라는 매체가 얼마나 권위적인 위치인지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보시면 돼요.” (달파란)
“전 그 당시 미국에서 모니터링을 했는데 멋있다고 생각했었어요. 라이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고 밴드였기 때문에 그런걸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제재 없이.”(이윤정)
‘파격’이 아니라 음악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퍼포먼스라고 선을 그었다. 90년대, 그 당시 가요계는 어쩌면 너무나 많은 것들에서 제재를 가했고, 뮤지션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뺏아 간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사건들 때문이었는지 대중들은 삐삐밴드에게 늘 ‘파격’이라는 단어를 대입시켰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파격’이라는 단어는 여러번 오르내렸다. 이윤정의 창법도 창법이지만 각종 사건사고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삐삐밴드는 ‘파격’ 단어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 같은 경우는 ‘딸기’ 이미지가 너무 오랫동안 각인 돼 있어요. 20년간 이름보다 ‘딸기’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았죠. 그게 최고점이고 최대치라는 분들이 많아서 다른 걸 시도하는 자체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파격이라는 단어가 왜 자꾸 붙는지는 모르겠어요. 일부러 우리는 파격을 지향한 적은 없어요. 우리끼리 음악하면서 정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뿐이예요. 우리가 나쁜 영향을 미치는 듯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우리는 악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안녕하세요’ 노래 할 때처럼 예의바르게 노래 부르는 밴드였어요. (웃음) 가사에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죠. 근데 세상은 참 이상해요. 지금 제 모습(양 옆머리를 파격적으로 밀었다)으로 우리 아들이 있는 어린이집에 가면 어머니들이 다들 놀라서 도망가시더라고요. 우리 아들은 머리가 긴데 주변에서 다들 뭐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들이 ‘여자들은 머리가 길어야 하고 남자들은 짧아야 된다고 하더라’고 묻는데 ‘그건 아니야’라고 했어요.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게 엄마인 나 밖에 없다는 게 슬프더라고요.”(이윤정)
또 이윤정은 자신의 목소리가 특이하고 파격적이라는 평가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 제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직업란에 ‘가수 이윤정’. 그건 좀 저한테 안 어울리는 것 같고 그냥 특이한 악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어떻게 플레잉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악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빠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나오고, 또 다른 아티스트들을 만나면 저렇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악기들이 종류가 많잖아요. 제가 이런 악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세요.”(이윤정)
20년이라는 시간동안 누구나 그러하듯, 삐삐밴드 멤버들 각자에게도 인생의 부침이 있었을 것.
달파란은 “20년이면 굉장히 긴 시간이니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좋은일, 나쁜일 많았죠. 음악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그런 경험들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표현하는 게 조금 더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윤정은 “아기를 낳을 때 굉장히 인생이 달랐죠”라고 쑥스럽게 웃기도 했으며 박현준은 “후회되는 것도 있었고, 제가 많이 알려지면서 있었던 장, 단점 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좋았던 건 아니었어요”라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는 듯 했다.
“삐삐밴드에서 밴드를 붙인 이유는 저희가 나올 때만 해도 노래방에서 ‘밴드 불러봐’ 하는 정도의 대우였어요. 원래는 그룹사운드가 아닌 밴드가 맞는 말이거든요. 저는 그게 너무 마음에 안들더라고요. 왜 밴드라는 말이 저급하게 취급되나 싶었죠. 지금은 밴드라는 말이 정상적인 말이 됐잖아요. 그게 제가 기여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게 참 자랑스럽습니다.”(달파란)
이렇게 오랜 기간 각자의 길을 걸었던 이들이 삐삐밴드로 다시 뭉쳤다. 그러면서 삐삐밴드는 ‘파격’이라는 수식어보다 또 다른 수식어를 기대하고 있다.
“‘독보적인’이라는 수식어 어때요? 삐삐밴드는 색깔을 가진 밴드였으면 좋겠어요.”(이윤정, 달파란) [사진=팝뮤직 제공]
김아름 기자 beaut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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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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