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버릴거야”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나직하지만 한(恨)을 담아 읊조린다. 부인을 두고 어린 제자와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향해 죽여버리겠다 말하는 여주인공에게 돌을 던질 시청자가 있으랴.
불륜 피해자가 되어 오열하는 여주인공에게 시청자는 감정을 이입한다. 눈물을 닦고 불륜을 저지른 남자주인공을 향해 복수하기를 바라며, 어느새 그를 응원한다.
맹목적으로 오열하는 여주인공은 매력이 없다. 그렇기에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더 처절하고 불쌍하게 당하고 또 당해야한다.
9월, 안방극장 여주인공들은 눈물이 마를 날 없다.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내연녀를 향해 분노하기도, 부모가 운영하는 회사를 빼앗고 약혼남 마저 빼앗아간 파렴치한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여기 안방을 울리는 비련의 여주인공 3인방이 있다.
‘애인있어요’ 김현주, ‘내 딸 금사월’ 전인화, ‘위대한 조강지처’ 강성연이 그 주인공. 이들은 왜 울어야만 했을까.
◆ 똑순이 김현주가 그리는 캔디
“결혼하자고 한 거, 나 혼자 좋아서 실수했다. 결혼 자체가 실수였고, 지금 후회한다”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극본 배유미, 연출 최문석)에서 바람을 피우고도 자신을 향해 당당히 말하는 남편 최진언(지진희 분)을 향해 도혜강(김현주 분)은 분통을 터트린다.
최진언은 불륜을 저지르지만 당당하다. 대학 교수인 진언은 후배 강설리(박한별 분)과 바람을 피운다. 내연녀 강설리 역시 마찬가지. 두 남녀를 보고있자니 분통이 터지는데 도혜강은 그런 진언에게 기회를 준다.
당당한 차도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상처를 숨길 수밖에 없다. 감정을 표현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도혜강은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다 뺨을 날리기도 한다.
김현주는 두려움과 배신감에 휩싸인 도혜강으로 완벽 변신했다.
안방극장에 똑순이 캐릭터로 분했던 김현주이지만 이번에는 눈물의 여왕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두고 젊은 후배와 바람이 난 남편을 향해 불만을 말하지만 소용없다. 김현주는 밤이고 낮이고 눈물로 새운다.
뺨을 때리고 미행을 해봐도 소용없다. 이미 엇나간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늦었다. 김현주가 감당해야 할 상황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김현주를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남편 최진언으로 분하는 지진희의 뻔뻔함이다. 지진희는 눈 하나 꿈쩍 하지 않고 바람을 피우고, 옆에 누워서 다른 여자를 떠올린다.
지진희의 내연녀 설리 역을 연기하는 박한별 역시 마찬가지. 지진희 앞에서 보이는 얼굴과 김현주 앞에서의 얼굴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들뜬 열정은 김현주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다.
그런 김현주를 향해 시청자들은 응원을 보내고 있다.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 남편 지진희는 날로 악해지고, 김현주는 나날이 불쌍한 캔디가 되고 있다.
◆ 처참히 밟힌 전인화, 눈물 닦고 복수 나선다
지난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소위 대박을 터뜨린 MBC ‘내 딸 장보리’를 집필한 김순옥 작가가 주말극 펜대를 다시 잡았다.
지난 9월 5일 첫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내 딸 금사월’(극본 김순옥, 연출 백호민)에서는 오민호(박상원 분)과 결혼식을 앞둔 신득예(전인화 분)을 빼앗아 결혼하는 강만후(손창민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극 중 강만후는 애가 둘이나 딸린 이혼남이면서 신지상(이정길 분)이 경영하는 회사를 탐낸다. 신지상의 딸인 신득예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강만후는 신지상을 살해하고 전처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밀월여행을 떠난다.
강만후가 저지르는 악행에는 설득력이 없다. 그렇기에 더 자극적이고 분노를 유발한다.
신득예를 연기하는 전인화는 캔디 중에 캔디다.
미래를 사랑하고 천하에 은인이라 믿었던 남편이 알고 보니 아버지의 모든 것을 빼앗고 살해했다면 어떨까. 한 남자에 의해 전인화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회사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무것도 그 곁에 남지 않았다.
전인화는 모두 잃고서야 손창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과거 손창민이 저지른 악행을 목격한 자가 남긴 쪽지를 발견한 것. 이를 알게 된 전인화가 복수에 나설지 궁금증을 자극하는 상황.
복수만 하면 된다. 벼랑 끝에 몰린 전인화는 잃을 게 없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듯 풍족한 그였지만 손창민이 모든 걸 앗아갔다.
이제 칼자루는 전인화가 쥐었다. 그가 복수를 시작하며 김순옥 표 막장 복수극이 점화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 강성연, 남편 불륜 눈물로 지새는 캔디형 여주인공
배우 안재모는 최근 주부들에 공공의 적이 되었다. 뻔뻔한 불륜남을 연기하는 안재모는 말 그대로 불륜의 끝판왕이다.
현재 방영 중인 MBC 일일드라마 ‘위대한 조강지처’(극본 황순영, 연출 김흥동)에서 스타 대학교수 윤일현(안재모 분)은 아내 유지연(강성연 분)을 두고 바람을 피운다.
상대는 제자이자 딸 과외선생인 조수정(진예솔 분). 윤일현과 조수정은 자택에서 딸과 아내의 눈을 피해 버젓이 바람을 피운다.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상황. 이후 불륜이 유지연에 발각되지만 이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다.
윤일현은 오히려 유지연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을 모두 자신에게 돌린 후 내연녀 조수정에게 건넨다. 이후 윤일현의 일방적인 요구로 이혼을 하게 되고 유지연은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만다.
강성연은 출산 후 ‘위대한 조강지처’로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눈물이 마를 날 없다.
극 중 강성연은 가면을 쓴 남편으로부터 재산을 빼앗기고 조롱을 당하는 것도 일상이다. 재산을 빼앗아 집 근처에서 내연녀와 함께 동거하는 남편을 향해 분통을 터뜨린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것은 딸. 행여 딸에게 피해가 갈까 가슴 졸이는 엄마일 뿐이다.
◆ 캔디는 테리우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김현주-전인화-강성연은 등장과 동시에 눈물을 쏟는다. 눈물이 마를 날 없다.
이들 뒤에는 악랄하고 뻔뻔한 남편이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왔다 장보리’ 연민정 뺨치는 독해진 남자들이 이들을 울리는 것.
당하고 울고 홀로 마음 졸이는 캔디형 여주인공이지만 형태는 진화했다. 모습을 들여다보면 재밌다.
오늘날 안방극장에 나타난 캔디형 여주인공은 더 이상 테리우스를 기다리지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봤자 누군가 자신에 테리우스를 보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테리우스를 기다리다간 굶어 죽고 마는 현실을 잘 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복수에 나선다. 어설픈 복수가 아닌 치밀한 복수를 계획하고 일격을 가한다.
이들은 모두 눈물을 닦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상대를 향해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이제 시청자들은 이들이 얼마나 시원하고 통쾌하게 복수를 펼칠지 지켜볼 일만 남았다.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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