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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고대영 신임사장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릴 때가됐다”(취임사 전문)

KBS 고대영 신임사장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릴 때가됐다”(취임사 전문)

등록 2015.11.24 11:18

홍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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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KBS 본관 TV공개홀에서 KBS 제22대 고대영 사장 취임식이 열렸다 / 사진제공= KBS24일 오전 KBS 본관 TV공개홀에서 KBS 제22대 고대영 사장 취임식이 열렸다 / 사진제공= KBS


KBS 제22대 고대영 사장이 24일 취임했다.

24일 오전 KBS 본관 TV공개홀에서 KBS 제22대 고대영 사장 취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고대영 사장은 취임사를 통해 변화를 강조했다. 공영방송으로서의 구태의연을 버리고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방송사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또 변화의 기반 위에서 창의력과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포맷과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다음은 취임사 전문.

사랑하는 KBS임직원 여러분! 제22대 KBS 사장 고대영입니다.

저는 지난1985년, 바로 이 자리에서 입사식을 거쳐 KBS인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다시 서보니 30년 전, 신입사원 시절의 감회가 새롭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언론사의 일원이 됐다는 긍지,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던 ‘감동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지난 30년 세월을 돌이켜보면 KBS는 제게 큰 언덕이었습니다. 내세울 만한 학벌도 연줄도 없는 제가, 공영방송의 일원으로 소신껏 일할 수 있다는게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이제 조직의 수장으로 봉사할 기회까지 주셨으니 KBS에 대한 무한한 영광과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그런데 사장이 됐다는 기쁨 못지않게 걱정도 앞섭니다.

제가 오늘 서있는 이 자리, 3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장비가 조금 달라졌지만 방송제작 방식은 그대로이고 우리 회사의 수입구조도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익숙한 풍경입니다.

그러나 회사 문밖을 나가면, 아니 우리 손바닥 안에서부터 우리의 삶은 180도 변해 있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면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이 점이 제가 느끼는 걱정의 근원일 겁니다.

사람들의 미디어 소비 습관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방송사가 정한 편성표대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은 이미 옛말입니다. 미디어 지형도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IPTV가 지배적 매체로 자리잡았고 미디어 생태계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재송신이나 VOD협상에서도 지상파의 주도권은 약화됐습니다. 지상파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최근 그 추세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광고수익도 급전직하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 회사 매출은 2002년 월드컵 이후 거의 정체 상태입니다.

저는 KBS에 입사한 이후 ‘생존’이라는 말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IMF 시절, 회사 사정이 나빠지긴 했지만 생존이란 말까지 꺼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장이 된 오늘, 가장 먼저 꺼내든 화두가 생존이라는 것이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제품의 가치는 가격보다 높아야 하고, 가격은 생산비용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상파는 광고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지상파 상품의 가격이 고객이 인식하는 가치보다 낮을 수 있다는 방증입니다. 지난 4년간 우리 회사는 평균 440억 원의 사업 적자를 봤습니다. 이것은 생산비용이 가격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두 가지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KBS가 생존위기를 겪고 있다는 말은 공정보도와 균형잡힌 여론 형성,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한다는 공영방송의 숭고한 목적 또한 위기에 처했다는 뜻입니다. 30년을 KBS인으로 살아오면서 저를 지탱해준 세 글자는 ‘자부심’입니다. 대한민국 최대 언론사의 일원이어서가 아니라 공영방송 KBS가 수행하는 역할에 따른 자부심이었습니다. 지금 그 자부심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랑하는 KBS 가족 여러분.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구체적인 해답은 앞으로 모든 KBS인들과 함께 찾아가야겠지만 한 가지 원칙은 명확합니다.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릴 때가 됐습니다. 웬만큼 변화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 정도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이상으로, 크게 변해야 합니다.

우선 조직이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의 조직구조, 1973년 공사가 창립됐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미디어환경이 모두 변했는데 우리는 그대로입니다. 직종 중심으로 설계된 조직은 수명이 다한 지 오래입니다. 직무 중심, 고객 중심, 시장 중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직종의 벽을 깨뜨리고 직종을 중심으로 키워온 기득권을 내려놓읍시다.

공영성과 경쟁력은 마치 별개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낸 소중한 수신료를 효율적으로, 또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경쟁력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업무를 대하는 태도도 더 엄격해져야 합니다. 인사나 제작과정에서 개인적 관계가 작용하고, 회사의 이익보다 출연자나 외부거래사의 이익을 앞세운 경우가 없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런 일탈은 사라져야 합니다. 오랜 관행을 바꾸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내외부로부터의 압력과 저항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함께 한다면 저는 어떤 어려움도 굳건히 헤쳐 나갈 것입니다.

노사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노사는 위기를 함께 극복해갈 동반자입니다. 저는 노와 사가 상호존중하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것을 제안합니다. 노조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지만, 법과 규정을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대응할 것입니다.

변화를 수용함과 동시에 지켜야 할 것도 있습니다. 공영방송으로서 갖추어야 할 공정성, 객관성입니다. 보도, 시사 뿐 아니라 모든 콘텐츠에 기본으로 내재돼야 할 가치입니다. 공영방송 KBS에 대한 자부심의 근본 원천입니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습니다. 때문에 이를 확실히 구현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저는 ‘편성규약의 정비’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기존의 편성규약과 방송제작가이드라인, 공정성가이드라인, 윤리강령 등은 목적이 중첩되거나 선언적인 수준에 불과합니다. 내용도 구체적이지 못한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이러한 규정을 통합하고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내용을 담은 새로운 규약이 필요합니다.

편성규약의 정비를 통해서 BBC편집가이드라인 수준의 ‘KBS편성기준’을 마련하고, 그 실행을 담보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경영진부터 실무제작진까지 지켜야 할 방송규범을 명확히 하고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할 가능성을 차단할 것입니다.

새로운 규약의 핵심은 제작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는데 있습니다. 제작의 지휘계통을 따라 책임의 규모에 맞게 권한을 설정할 것입니다. 권한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KBS임직원 여러분.

이런 변화의 기반 위에서 창의력과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포맷과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겠습니다. 조직개편을 비롯해 인사와 평가, 보상시스템 등 각종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30년 후에도 지금 같은, 아니 지금보다 더 높은 신뢰도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영방송 KBS의 조직기반을 구축하겠습니다.

또 사옥 신축을 통해 노후화된 건물과 공간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연구동이나 별관 등 우리의 모든 자산을 재평가하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작업에 나설 것입니다.

사랑하는 KBS 가족 여러분.

저는 지난 30년간 KBS사람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KBS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적당한 변화로는 생존이 어렵습니다. 비록 생각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KBS가 위기를 극복하고 공영방송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데는 누구도 이의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KBS의 미래를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KBS 가족 여러분.

이 변화에 동참해 주십시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30년 후에도 우리 후배들이 KBS인이라는데 자부심을 누릴 수 있도록 세계 최고의 공영방송을 만드는 길에 함께 나섭시다.

감사합니다.

홍미경 기자 mk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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