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윤상현과 만났다, 캐주얼한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한 윤상현은 원래 알고 있던 사이 마냥 자연스럽게 기자와 융화됐다.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약간 귀여운 인상에 파마머리, 여유로운 너스레, 재치 있는 입담이 더해져 ‘윤상현’이라는 한 사람이 완성됐다.
그는 따뜻한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최근 종영한 종합편성채널 JTBC ‘욱씨남정기’에서 상대 여자배우였던 이요원이 극중 즐겨 먹던 커피다. 윤상현은 “대체 이요원이 먹는 커피는 어떤 건지 궁금해서 시켜봤다”고 센스 넘치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심지어 인터뷰를 하던 도중 윤상현이 고개를 까딱이길래 뭔 일인가 싶었더니, 창 밖으로 극중 윤상현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임하룡이 지나가고 있었다. 놀라운 인연에 “임하룡 선생님도 오시기로 했냐”고 물었더니 100%로 우연이라고. 이 남자, 인생 자체가 훈훈하고 유쾌한 시트콤 그 자체다.
◆ 누가 뭐래도 사랑꾼 맞아요
윤상현에게 ‘욱씨남정기’는 유난히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가수 겸 작사가 메이비와 결혼을 하고 딸을 낳은 후 처음으로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 게다가 그는 극중 아들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이자 아버지와 철 없는 동생과 함께 사는 가장이었다. 이에 윤상현은 남다른 책임감을 느꼈고 캐릭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촬영 끝나고 새벽에 집 들어가면 제 냄새가 나나 봐요. 아기가 깨면 울어야 하는데 웃어요. 또 5개월 밖에 안된 애가 내가 티비에 나오면 보고 웃어요. 그래서 ‘한 신 한 신 최선을 다해 잘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아이가 자라면 다 볼 거잖아요. 아빠가 이런 연기를 했다는 걸 자신 있게 보여주고 싶어요.”
본인은 눈치를 못 챘겠지만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자 좀 더 적극적으로 말을 하던 윤상현이었다. 딱 ‘딸바보’ 그 자체였다. 어린 딸을 향한 애정은 윤상현의 연기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예전에는 악역도 많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못하겠다. 멜로신이 진한 것도 좀 가리게 되고”라며 딸이 생긴 후 달라진 점을 밝혔다.
“요즘 육아예능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출연할 생각 없냐”고 묻자 윤상현은 단호하게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그는 “아이가 다 크고 판단력이 서서 ‘아빠 이거 하고 싶어’ 했을 때 해주고 싶다. 지금은 자유롭게 놀게 해주고 싶다. 육아예능은 고려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딸이 하는 짓을 봐서는 저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가만히 있지를 않고 잘 웃어요. 호기심도 많고, 액티브하고요. 아내를 닮았으면 차분할 텐데 시끄러운 걸 보면 절 닮았어요. 그럼 공부는 싫어할 것 같고···(웃음) 제가 그림, 음악, 운동, 등산 다 좋아하는데 아이도 그럴 것 같아요. 같이 등산하고 낚시도 하며 지내고 싶어요.”
대답에 이어 냉큼 딸 자랑을 늘어놓던 윤상현은 천상 아빠였다. 보통 첫째 딸은 아빠를 많이 닮는다던데, 이에 윤상현은 내심 흡족한 모습이었다. 말을 하며 딸의 모습이 떠오른 듯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렇게 윤상현이 웃음 가득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던 것은 바로 아내 메이비 덕분일지도 모른다.
“메이비는 집에서 가정교사였어요. 제가 노래 연습 하고 있으면 ‘가사 꼭꼭 씹어 부르라’고 조언도 해주고, 드라마 모니터링도 계속 해줬어요. 전 웬만하면 아내 말 다 수용하는 편이에요. 와이프 말 들어서 안 되는 게 하나 없어요. (웃음)”
윤상현은 메이비를 두고 정신적 지주, 자신을 어린애라고 표현했다. 본인은 단순하고 생각이 짧은데 와이프가 많이 채워준다는 것. 싸울 때도 있지만 나중에 그 의중을 파악하고 반성하게 된다고. 특히 지금은 생각이 많이 깊어진 것 같다던데, 그는 “여자 잘 만나면 바뀌기도 하나 보다”라며 이마저도 메이비 덕으로 돌렸다.
“저에게는 돈 같은 것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는 일이 더 중요해요. 음악도 해야 하고, 등산도 낚시도 해야 하고, 가족여행도 가야 하고··· 머릿속에 그런 계획을 생각하며 살고 그렇게 꼭 실천해요. 남자들은 나가서 돈 벌어오고 투자도 하고 골프도 하고 그런다는데, 저는 가족들하고 하는 걸 좋아해요, 어렸을 때 가족들과 한 게 없거든요. 딸에게 어린 시절 기억을 좋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아내에 대한 이야기 역시 거침 없이 술술 이야기하던 윤상현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정말 사랑꾼이시네요”라고 했더니, 그는 진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를 했다. “진짜 궁금한 게, 제가 왜 사랑꾼이에요?”
◆ 윤상현의 코믹은 남다르다
윤상현은 아이가 커서 배우를 한다고 하면 찬성한다고 했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이유보다 자신에게 맞는 일, 연기를 하면서 행복을 느꼈기 때문. 그래서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면 허락을 할 것 같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다 보니 주체적으로 하게 됐다. ‘욱씨남정기’에서도 그랬다.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계속 다시 연기하고, 장면을 좀 더 맛깔나게 만들어줄 애드리브도 생각한다. 회의 중 립스틱을 바르며 입을 크게 벌리는 장면, 사장님과 동료를 때리는 장면 등 많은 장면이 윤상현의 적극적인 재치로 탄생했다.
이 장면들은 남정기의 돌발행동으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역시 코믹 연기에는 대가인 윤상현이다.
“시청자들이 딱 짚어서 ‘이 사람은 이 연기에서 최고야’라고 해주는 건 감사해요. 하나 분야에 대해 연기를 잘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전 솔직히 멋있는 연기는 잘 못하는 것 같거든요. 찌질한 연기가 하기에 편하고, 어렸을 때부터 학교 다닐 때 학예회 하면 꽁트를 만들고 개그도 짰어요. 남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연기가 나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남정기는 때로는 진지한 모습으로 심금을 울렸다. 윤상현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연기를 해온 걸 보면 한 가지 모습으로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라는 게 여러 가지 모습이 있을 텐데, 그걸 보여주면 연기할 맛이 나는 것 같다”고 연기관을 밝혔다.
그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싶은 게 윤상현의 욕심이다.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나이 먹고 무슨 작품 했는지 쫙 봤을 때 치중되지 않고, 여러 역할을 하다 보면 하면서 즐거울 것 같아요. 다양한 역할마다 상대배우가 다르고, 그 배우마다 매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이 호흡을 했을 때 시너지도 달라요.”
그 연기 안에는 진정성이 녹아 들어야 한다. 윤상현은 진심을 다해 연기를 대하고 있으며, 선배 배우들을 통해 이를 배웠다.
“제가 연기의 기본도 모를 때 카메라 앞에서 대사만 뱉었어요. 그런데 제 첫 인생작 ‘겨울새’에서 박원숙 선생님이 연기하시는 걸 보고 감정을 잡는 법을 배웠어요. 임하룡 선생님도 아버지 같으셨는데, 그만큼 연기하기가 편했고 어린 친구들과 격 없이 지내시는 걸 보고 많이 느꼈어요. 좋은 선배님들을 보면서 나도 좋은 배우가 되야겠다는 생각,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가 어떤 모습이냐고 물었다. 윤상현은 연기자로 데뷔해 인기를 얻은 후 작품에 소홀히 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자신은 카메라 앞에서 발산하지 못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생긴다고. 다작은 아니더라도 연기자이면 팬들에게 그만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은 배우의 밑거름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이요? 일본 팬미팅도 있고··· 무엇보다 드라마 찍느라고 육아를 소홀히 했어요. 메이비한테 너무 미안해요. 옆에서 제가 애를 봐줬어야 했는데. 당분간 집에서 계속 육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연기로 시작해 사랑을 거쳤다가, 다시 연기에서 사랑으로 끝난 ‘기-승-전-사랑꾼’ 인터뷰였다.
이소희 기자 lshsh324@
뉴스웨이 이소희 기자
lshsh324@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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