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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낙태죄 폐지’ 청원 공식 답변

[전문] 청와대, ‘낙태죄 폐지’ 청원 공식 답변

등록 2017.11.27 07:57

우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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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민정수석의 낙태죄 폐지 답변.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화면 캡처조국 민정수석의 낙태죄 폐지 답변.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화면 캡처

청와대가 26일 국민청원 23만건을 넘긴 ‘낙태죄 폐지’와 관련 공식 답변을 내놨다. 낙태죄 폐지의 답변은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이 나섰다. 조국 민정수석은 답변을 통해 여성계가 주장했던 ‘낙태죄 폐지’라는 전향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았으나, 국제사회 흐름이 ‘낙태죄 폐지’인 점을 주지시켰다.

다음은 조국 민정수석의 낙태죄 폐지 답변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조국입니다. 지난번 '친절한 청와대' 소년법 개정 청원 답변으로 인사 드리고 다시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낙태죄 폐지에 관련된 청원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낙태죄 폐지 청원은 '원치 않는 출산은 여성은 물론 태어난 아이, 국가, 모두의 비극으로 여성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하는 현행 낙태죄를 폐지해달라'는 내용으로 지난 9월 30일 게시 이후 한달만에 약 23만명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예민한 주제입니다. 낙태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적인 함의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오늘은 낙태라는 단어 대신에 모자보건법이 사용하고 있는 임신중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우리나라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임신중절은 처벌됩니다. 임신중절을 행한 여성은 물론 그것을 시술한 의사도 처벌됩니다.

그런데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된 후 아주 예외적 조건에 한해서 임신중절을 허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부모가 우생학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흠결이 있는 경우 또는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서 임신된 경우에만 임신중절이 허용됩니다.

그동안 관련법 개정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00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예외적 허용 조항도 아예 삭제해서 임신중절을 완전히 금지하자'는 입법 청원도 있었습니다.

지난 2007년에는 정부가 낙태를 둘러싼 법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법 정비 방안을 연구하고 공청회를 개최하여 사회적 논의를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낙태 예외조항에 본인 동의 사유와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고 배우자의 동의조항과 우생학적 윤리적 사유를 삭제하는 등이 논의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위헌 대 합헌이 4 대 4로 팽팽했습니다.

결정문에는 찬반 진영의 주장이 잘 담겨 있습니다. 먼저 합헌 의견을 보면 '사익인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크지 않고 태아도 성장상태와 관계 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하여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위헌 의견은 '임신 초기 자발적 임신중절까지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했습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제로섬으로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어렵습니다. 둘 다 우리 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임신중절이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가장 최근 조사자료가 2010년 자료입니다.

추정 낙태 건수는 16만9,000여건이나 의료기관에서 행해진 합법적 인공 임신중절 시술 건수는 1만800여건으로 합법에 의한 영역은 6%에 불과합니다.

또 실태 조사자료에 따르면 미혼 여성보다 기혼 여성이 더 많습니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별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임신중절 사유는 '원치 않아서'라는 이유가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미혼이라서' 그리고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어서' 등도 상당한 숫자입니다.

임신중절을 줄이려는 당초 입법 목적과 달리 불법 임신중절이 빈번히 발생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기소는 연 10여건 정도입니다. 처벌은 더욱 희소합니다.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입니다. 임신중절 시술로 인해서 생명권이 박탈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불법 시술 양산 및 고비용 시술비 부담,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합니다. 이제는 태아 대 여성, 전면 금지 대 전면 허용 이런 식의 대립 구도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입니다.

현재 OECD 35개국 중에 본인 요청에 의해서 인공 임신중절이 가능한 국가는 25개 국가입니다. 예외적으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는 4개국까지 합치면 OECD 회원국 중 80%인 29개국에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본인 요청에 의해서 중절이 가능한 경우에도 통상 12주 이내만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개국은 사전 상담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상담 이후 시술까지 2일에서 8일까지 숙려기간을 두어서 무분별한 시술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보건학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2006년 세계보건기구 연구를 인용해서 매년 전 세계에서 2,000만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그중 6만8,000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 같은 세가지 경우를 다 같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교제한 남성과 최종적으로 헤어진 후에 임신을 발견한 경우, 어떻게 합니까?

둘째, 별거 또는 이혼 소송 상태에서 법적인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발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 실직이나 투병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 양육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임신했음을 발견한 경우, 어떻게 합니까?

이런 세가지 경우 현재 임신중절을 하게 되면 그것은 범죄입니다.

근래 프란체스코 교황은 임신중절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 사회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청원을 계기로 정부는 법제도 현황과 논점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그리고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여성가족비서관실, 국민소통수석실 담당자가 세차례에 걸쳐서 쟁점을 검토하고 토론했습니다.

당장 2010년 이후 실시되지 않은 임신중절 실태조사부터 2018년에는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한번 낙태죄 위헌 법률 심판사건이 진행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마련되고 사회적 법적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실제 법 개정을 담당하는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연유산 유도약의 합법화 여부도 이런 사회적, 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와 함께 정부차원에서 임신중절 관련 보완대책도 다양하게 추진하겠습니다. 먼저 청소년 피임 교육을 보다 체계화하고, 내년에 여성가족부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가능한 곳부터 시범적으로 전문 상담을 실시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막막한 당사자들을 지원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신중절 관련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현장 정보가 쌓여나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대통령께서 이미 지시한 바처럼 비혼모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도 구체화될 전망입니다. 적극적 경제적 지원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입양 문화의 활성화도 함께 진행될 것입니다.

이상의 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은 물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비혼이든 경제적 취약층이든 모든 부모에게 출산이 기쁨이 되고 아이에게 축복이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국가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겠습니다.

뉴스웨이 우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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