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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박삼구, 새드앤딩으로 끝난 ‘10년의 동거’

[아시아나 매각]산업은행-박삼구, 새드앤딩으로 끝난 ‘10년의 동거’

등록 2019.04.16 18:56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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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재무구조개선 약정’서 시작해 올해 ‘아시아나항공 매각’까지 이어져‘금호타이어 공방’ 땐 갈등 고조되기도이동걸, 박삼구 통큰 결단에 일단 호평“금호아시아나 대주주, 진정성 보였다”

그래픽=강기영 기자그래픽=강기영 기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하겠다는 결단을 내리며 산업은행과의 갈등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금호타이어 등 굴지의 기업과 함께했던 이들의 오랜 악연이 종지부로 향하는 순간이다.

16일 산업은행에 따르면 채권단은 이달말에서 5월초 사이 새로운 경영개선 약정(MOU)을 체결한 뒤 본격적으로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착수한다. 대상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6868만8063주)다. 여기에 유상증자까지 포함하면 인수가격이 1조원을 웃도는 대규모 거래인 만큼 매각 종결까진 6개월 정도가 소요될 전망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박삼구 전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장장 10년에 걸친 산업은행과의 악연을 청산하게 된다. 비록 주축인 아시아나항공은 내주지만 매각 대금으로 유동성 문제를 풀어내면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을 중심으로 그룹의 명맥을 유지하고 장기적으로는 담보로 잡힌 금호고속 주식도 되찾아올 수 있다.

금융권 전반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박삼구 전 회장과 산업은행 모두 ‘실익’을 챙긴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

◇무리한 확장이 자초한 ‘불편한 동거’···그리고 첫 번째 퇴진=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9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며 불편한 관계를 시작했다.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줄줄이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아시아나항공마저도 자율협약 체제에 놓였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삼구 전 회장의 실책이 원인이었다. 2002년 회장에 오른 그는 공격적으로 덩치를 키우기 시작한다. 2006년 대우건설(6조4000억원)을, 2008년엔 대한통운(4조1000억원)을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두 회사를 사들이는 데만 10조원 이상을 투입한 결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 서열 7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는 ‘독’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기업 인수를 위해 끌어다 쓴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유동성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는 대우건설 인수에 시가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을 써낸 게 화근이었다.

이로 인해 박삼구 전 회장의 입지는 크게 흔들린다. 설상가상으로 2009년 ‘형제의 난’까지 불거지며 그룹은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결국 박 전 회장은 퇴진해 명예회장으로 물러났으며 이후 어렵게 손에 넣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도 각각 산업은행과 CJ그룹에 매각하게 된다.

◇경영복귀와 갈등의 시작···금호타이어 공방에 최고조=그러던 박삼구 전 회장은 산업은행의 지원에 힘입어 위기를 넘겼고 2010년 11월 다시 경영일선으로 돌아왔다. 이어 2015년 금호산업을 인수하며 그룹 재건을 예고했다.

사실 산업은행과 박삼구 전 회장 측의 갈등이 싹튼 시기는 바로 이 때부터다. 그룹 경영 악화엔 박 전 회장의 책임이 크다는 인식에 산은 등 채권단 내부에서는 그의 복귀를 못마땅해 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금호타이어 매각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이면서 양측의 갈등은 극도로 치닫는다. 박삼구 전 회장이 2017년초 금호타이어 인수를 선언한 게 단초였다. 당시는 산업은행이 중국 더블스타를 금호타이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협상을 벌이던 시기였는데 박 전 회장까지 컨소시엄을 꾸려 인수전에 가세하면서 채권단과 대치했다. 박 전 회장은 금호타이어의 ‘상표권’을 무기로 삼았고 산은은 ‘매각 무산 시 금호그룹 지원을 중단하고 책임을 추궁하겠다’며 그를 압박했다.

물론 이 대결은 산업은행의 승리로 끝났지만 양측의 불화는 쉽게 봉합되지 않았다. 금호타이어를 포기한 박삼구 전 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7년말 금호홀딩스와 금호고속의 합병을 강행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산은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동걸 회장 체제로 이어진 ‘갈등의 고리’=이동걸 현 산업은행 회장 체제에서도 양측의 악연은 계속됐다. 이 회장의 취임 초기까지만 해도 금호타이어 매각 이슈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었고 지난해부턴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우려가 번지며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많았다.

특히 이동걸 회장은 취임 직후 곧바로 박삼구 전 회장과 대면했다. 매각의 최대 걸림돌인 ‘우선매수권 문제’를 담판 짓기 위함이다. 끝내 박 전 회장은 우선매수권을 포기하고 상표권 사용 문제도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재인수 기회를 완전히 빼앗겼다는 점에서 감정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졌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항공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기내식 대란과 오너리스크, 기체 결함 등으로 아시아나항공의 현실화하자 이동걸 회장이 “현금흐름이 급격히 나빠진다면 바로 개입하겠다”고 경고하면서다.

즉각적인 조치는 없었다. 자율협약이 끝난 상태라 더 이상의 개입은 ‘월권’이라는 이유였다. 이동걸 회장도 ‘사안이 기업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자구계획 등이 어긋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바 있다. 이에 박삼구 회장도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여신 기한 연장을 목적으로 금호고속 보통주 14만8012주 등을 산은에 담보로 제공하는 선에서 황급히 불을 끈 것으로 감지된다.

그러나 올 들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에 경고등이 켜지자 이동걸 회장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았다. 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 감사의견을 받은 이른바 ‘감사보고서 사태’를 기점으로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해달라며 우회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박삼구 전 회장이 ‘용퇴’의 뜻을 알리며 아시아나항공 경영정상화에 대한 협조를 구했을 때도 이동걸 회장은 쉽게 답을 해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신뢰 회복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채권단이 ‘1원’도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견해에서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한 번의 ‘퇴짜’ 끝에 채권단으로부터 자구계획을 승낙받기에 이르렀다. ‘오너일가의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맡기는 대신 5000억원을 지원해달라’는 원안에서 후퇴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계획을 담은 게 주효했다. ‘수정 자구안’을 제출하던 당일에도 박삼구 전 회장은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과 이동걸 회장을 찾았다.

◇“책임감 보여준 박삼구”···아름다운 결말?=다행스럽게도 이들의 오랜 악연은 ‘훈훈하게’ 끝맺을 것으로 보인다. 그룹 연간매출의 60%를 책임지는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만큼 채권단도 우호적이다.

이날 이동걸 회장은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삼구 전 회장이 책임자로서 어려운 시점에 회사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줬다”면서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산업, 대주주가 진정성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과 1만여 직원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차원에서 이 같이 결정한 것”이라며 “그가 남은 일정에서도 본인의 능력이 되는 한 채권단과 최대한 협조하기로 약속했다”며 뒷얘기를 전했다.

아울러 이동걸 회장은 “박 전 회장 역시 항공업계 발전에 기여한 분인 만큼 마지막 단계에서 그의 인격을 폄하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해 앞으로가 관건이다.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매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주체가 인수 의향을 내비치느냐도 변수다.

이와 관련 이동걸 회장은 “채권단은 이번 결단이 그대로 이행될 것이란 확신을 가졌고 이를 담보할 모든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면서 “적자 노선 정리 등 노력을 거치면 아시아나항공의 회복 가능성이 충분한 만큼 반드시 원매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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