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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의 ‘젖줄’···태동하는 울산 친환경 VRDS

[르포]SK이노베이션의 ‘젖줄’···태동하는 울산 친환경 VRDS

등록 2019.12.01 14:00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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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해사기구 규제 대응해 ‘황 함량’ 저감 총력1조원 투입해 매년 3천억원 추가 이익 ‘승부수’내년 1월 완공···3월부터 일 4만 배럴 생산 돌입총 88만명 일자리···친환경 ‘사회적 가치’ 쌍끌이

친환경 설비 VRDS. 사진=SK이노베이션친환경 설비 VRDS. 사진=SK이노베이션

“인체로 보면 간단합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조정실은 사람의 머리죠. 수없이 보이는 배관들은 혈관입니다. 얽히고설켜 있지만 간략히 따지면 전부 머리에서 나온 중요한 판단 과정의 통로인 셈이죠.”

27일 찾은 울산 CLX는 그 크기만큼이나 빽빽한 배관으로 장엄했다. 826만㎡(약 250만평)에 이르는 생산시설은 한 눈에 담기 힘들었다. 서울 여의도 3배 면적이니 사람의 눈높이에선 수없이 뻗은 배관이 끝도 없었다.

현장 관계자의 ‘인체 비유’를 듣고서야 눈 앞에 펼쳐진 단면을 전체에 대입해 조망했다.

단일 석유화학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이곳에서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닻을 올렸다. 자회사 SK에너지를 통해서다.

이날 중점으로 들여다본 VRDS(감압잔사유 탈황설비) 공사 현장에선 막바지 배관 작업이 분주했다. VRDS 현장 규모만 울산 CLX 내 2만 5000평에 이르며 배관 길이는 총 240km에 달했다. 전기·계장 공사에 들어간 케이블 길이는 1100km로 서울에서 울산 거리 3배를 넘었다.

배관을 타고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공간에서 현장 노동자의 막바지 비지땀이 친환경 승부수로 영글었다. 땀에 흠뻑 젖어 상황 설명을 위해 다가온 관계자는 “25년 이상 경험에서 이렇게 기대되고 긴장되는 프로젝트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VRDS는 친환경 선박 연료유 생산 설비다. 이날 진행된 작업은 가장 큰 설비인 반응기(리액터) 연관 공정에 집중됐다. 반응기는 VRDS의 원료인 감압 잔사유에서 황을 제거하는 것으로 핵심 설비다. VRDS는 내년 1월 완공 이후 3월까지 시험 가동을 마칠 계획이다.

SK에너지는 2017년 11월 약 1조원을 투입해 이곳에 VRDS 건설 삽을 떴다. 국내 유일무이 행보다. 이런 투자 금액은 SK에너지가 2008년 약 2조원을 투입해 가동한 제2고도화설비(FCC·중질유 촉매분해공정) 이후 최대치다. 또 다른 ‘환골탈태’를 위한 승부수이자 시대 변화에 맞춘 속도전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근래 국내 석유화학 역사에서 가장 큰 일대의 사건”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런 행보는 국제해사기구(IMO)가 시행할 ‘선박용 연료유 황 함량 규제’에 대응한 선제 조치다. IMO는 2020년부터 황 함량을 0.5% 미만으로 낮추라고 2016년 10월 결정했다.

이에 맞춰 SK에너지는 VRDS 완공으로 고유황 중질유에서 황을 제거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IMO 기준에 맞춘 저유황 중질유를 생산해 하루 총 4만 배럴의 저유황유를 생산할 수 있다.

경제성도 어느 정도 계산이 섰다. SK에너지 관계자는 “VRDS 가동 후 매년 3000억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규제에 따른 글로벌 시장 변화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앞다퉈 2020년 이후 대체 돼야 하는 선박용 고유황유 규모가 일 3.5백만 배럴에 이르며 이 가운데 약 56%인 일 2백만 배럴이 저유황유 혹은 선박용 경유로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환경 저유황 연료유 수요가 늘면 VRDS를 장착한 SK에너지 석유화학 사업에 새로운 성장과 수익 창출 수순은 확실시된다. SK에너지는 일찌감치 이런 예측을 받아들여 석유제품 수출 전문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과 협업했다.

SKTI는 이미 한국에서 18개 선사와 저유황유 장기 계약을 맺는 등 안정적인 거래선 확보에 나섰다. 자체적으로 운영 중인 저유황중유 블렌딩 사업으로 연 33백만 배럴을 시장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선박 연료유 시장은 단일 시장 기준으로 육지 연료유보다 큰 시장이므로 선제적으로 업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환경 설비 VRDS. 사진=SK이노베이션친환경 설비 VRDS. 사진=SK이노베이션

규모와 중요성에 비례해 대규모 노동력도 투입됐다. VRDS 프로젝트에는 총 33개 업체가 시공에 참여 중이다. 지난해 1월 공사 시작 시점부터 2020년 완공까지 일 평균 1300명에 누적 총 88만명의 근로자들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3월 SK에너지와 울산시가 체결한 ‘지역 일자리 창출 양해각서(MOU)’ 따른 것이다. SK에너지는 공사 기간 투입되는 업체와 인력을 가급적 울산 지역 중심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선과 자동차 등 울산의 주력 업종 부진으로 침체한 지역 경제에 모처럼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호평도 나왔다.

‘친환경’에 방점을 찍은 만큼 SK그룹 차원에서 내건 ‘사회적 가치’와도 연결된다. VRDS는 SK이노베이션이 친환경 사업 확장을 목표로 시행 중인 ‘그린 이노베이션’ 전략을 구체화할 사업 모델이기도 하다.

SK에너지는 VRDS 상업 가동을 시작으로 사업 특성상 불가피하게 마이너스로 산정된 사회적 가치를 상쇄하겠다는 계획이다. SK에너지가 생산할 황 함량 0.5% 저유황중유는 기존 3.5%인 고유황중유 대비 황 함량이 1/7에 불과하다. 고유황중유를 저유황중유로 대체하면 황산화물 배출양은 1톤당 24.5KG에서 3.5KG으로 약 86% 감소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VRDS를 기반으로 IMO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동시에 동북아 지역 내 해상 연료유 사업 강자로 도약할 것”이라며 “친환경 그린 이노베이션 전략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을 지속 개발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우호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의 VRDS 설비 운영 노하우와 기술력의 압도적 경쟁력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앞서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은 이곳을 찾아 “SK 울산 CLX는 SK이노베이션의 심장이자 우리나라 산업의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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