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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家 남매 싸움에···고 조양호 ‘가족경영’ 철학 재조명

한진家 남매 싸움에···고 조양호 ‘가족경영’ 철학 재조명

등록 2020.03.11 08:03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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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vs 조현아, 전문경영인제 놓고 충돌조양호 전 회장, 생전 가족경영 중요성 강조단기실적 부담 적고 장기비전 아래 투자 가능항공업 특성상 전문성·글로벌 네트워크 필수

뉴스웨이 DB.뉴스웨이 DB.

한진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이들 부친인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의 생전 경영철학이 재조명받고 있다.

조씨 남매가 가장 크게 충돌하는 부분은 ‘전문경영인제’ 도입 여부다. 조 회장 측은 항공업 전문가로 구성된 현 경영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조 전 부사장이 이끄는 3자 주주연합은 오너일가 퇴진과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조 전 회장은 장기적인 비전 아래 그룹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가족경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해 왔다.

조 전 회장은 지난 200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TF)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주식 배당금 등 단기적인 수익에 치중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족경영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이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이 가족끼리 협력하라며 남긴 공동경영 유훈과 맥락을 같이 한다.

조 전 회장이 오너이기에 가능하던 과감한 투자 사례도 적지 않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조 전 회장은 항공기 제조사 보잉의 주력 모델인 737-800과 737-900 기종 27대의 구매 계약을 맺었다. 이에 보잉은 감사의 의미로 계약금을 줄이고, 유리한 금융 조건을 제시했다. 특히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의 글로벌 성장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초반에 발생한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과 사스(SAS) 사태 등 글로벌 위기로 항공산업은 침체기에 빠졌다. 이 여파로 대부분의 항공사는 구조조정과 항공기 주문 축소 등 위축경영을 했다.

조 전 회장은 이 시기에 에어버스 A380 초대형 차세대 항공기와 2005년 보잉 787 차세대 도입을 잇따라 결정했다. 경기 회복 시기에 맞춰 항공기를 도입하기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실제 세계 항공 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선 2006년부터 항공사들의 항공기 주문이 쏟아졌고, 제작사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단기적인 성과가 중요한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는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불구,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조 전 회장은 또 “승계 문제는 자격을 우선 갖춰 인정을 받게 한 뒤 그 다음에 결정할 사안”이라면서도 “장남을 전문경영자로 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조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점 찍어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3남매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조 회장 편에 선 배경에도 이 같은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 전 부사장 역시 애초부터 전문경영인제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 그가 조 회장을 향해 칼날을 겨눈 결정적 계기는 경영참여 불발이다. 조 전 부사장은 동생에게 경영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거절당했다. 또 자신의 측근들이 임원인사에서 대거 퇴진하자 결국 반기를 든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해 12월23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 회장은 가족들이 협력하라는 선대 회장의 공동 경영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고, 지금도 가족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 측은 “회사 경영은 회사법 등 관련 법규와 주주총회, 이사회 등 절차에 따라 행사돼야 한다”며 “이번 논란으로 회사 경영 안정을 해치고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반박했다.

조 전 부사장은 초반 위협이 통하지 않자 KCGI, 반도건설과 연합군을 결성했다. 하지만 시장을 설득하기 위해선 공동전선을 구축할 명분이 필요했다. 이들은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를 전문경영인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조 전 부사장 측의 요구대로 전문경영인이 지휘봉을 잡게 된다면, 대한항공이 글로벌 국적사 위상을 잃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항공사 대표는 얼라이언스 등 동맹과 항공기·엔진 등 제작사, 파이낸싱 업체까지 전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성과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 조 전 회장은 45년간 대한항공을 이끌며 다양한 인맥을 확보했다.

부친과 함께 해외 출장에 자주 따라나서던 조 회장 역시 여러 인맥을 쌓으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7년 대한항공 사장에 오른 뒤 델타항공과의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를 주도적으로 추진, 성사시키기도 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는 오너 리스크 해소라는 장점을 가지지만, 단기 업적 주의에 빠지기 쉽다”며 “임기가 한정될 수밖에 없어 경영전략 지속성을 갖추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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