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매년 해넘긴 임단협···고착화 분위기노사 관계 악화시킨 노진율, 오히려 승진해 논란대표가 겸직하던 안전기획실장 맡아, 사고만 발생非전문가, 중대재해 사고 재발···'방패막이' 비판도
현대중공업의 임단협이 해를 넘긴 배경에는 그동안 노무를 책임져 온 노진율 사장의 리더십 부재가 있다. 노 사장은 조선부문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 현대중공업 소속이다. 현대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과 함께 그룹의 조선 3사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그룹 모태라는 상징성은 물론 지역적 기반인 울산에 위치하고 직원 규모가 1만3000명이 넘는 등 한국조선해양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노 사장은 그동안 총무와 인사, 노사 업무를 두루 관장하는 경영지원본부에서 오랜 기간 경력을 쌓았다. 경영지원본부는 사실상 안실림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나름 '엘리트 코스'로 꼽힌다. 하지만 실제 노 사장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평가는 낙제 수준이다. 노사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킨데 이어, 안전경영 부문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권오갑 회장이 2014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로 복귀하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부분은 '노사 관계'다.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이던 권 회장은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긴박한 부름을 받고, 4년 만에 현대중공업으로 돌아왔다. 당시 정 이사장은 급속도로 악화된 노사 관계를 해결하고, 극심한 경영난에서 벗어날 대책을 강구할 것을 지시하며 위기수습 전권을 위임했다.
권 회장은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구조조정을 준비했다. 현대오일뱅크에서 합을 맞춘 임원들을 불러들였고, '경영분석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하지만 이보다 시급한 것은 노조를 달래는 것이었다. 현대중공업은 1995년 이후 19년 연속 무분규 타협을 이뤄왔지만, 20년 만의 파업 위기에 빠졌다. 사측과 노조측 임금인상안이 10만원 가량 차이가 벌어지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탓이다.
권 회장은 취임 첫 날부터 노조를 찾아가 노조위원장과 면담을 갖고, 임단협 타결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파업 찬반투표가 열리는 당일에는 본사 정문에서 직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넸고,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동참해 달라"며 직접 작성한 호소문을 배포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노조의 파업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해 말 70차례의 교섭 끝에 극적인 합의안이 도출됐다. 권 회장의 진정성을 받아들인 노조가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고, 사측 역시 이에 부응하는 수정 제시안을 내놓으면서 연내 타결을 이뤄냈다.
문제는 권 회장 측근인 노 사장이 노사 관계를 회복하는데 이렇다 할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 사장은 2016년 3월부터 경영지원본부 직무대행을 맡았다. 경영지원본부의 노사 관련 주요 업무는 임단협 교섭과 노사협의회 운영 등이다. 하지만 2016년 교섭은 해를 넘겼고, 이듬해 12월 30일 가까스로 2년치 임단협 교섭에 대한 잠정 합의안을 만들었지만 부결됐다. 2018년과 2019년, 2020년에도 임단협은 연내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지난해 임단협 역시 공회전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달 15일 잠정합의안이 마련됐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사실상 현대중공업 노조의 임단협 장기화가 관습처럼 굳어지게 된 데에는 노 사장의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더욱이 지난해 말 실시된 현대중공업 새 지도부 선거에서는 강성파인 정병천 지부장이 당선됐다. 회사 내부에서는 노사 문제를 악화시킨 노 사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강력한 불만의 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 노 사장은 승진했다. 이를 두고 내부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는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현대중공업은 올해 1월 노 사장을 '특별' 승진시켰다. 노 사장의 직책은 전사 최고안전책임자(CSO)인 '안전기획실장'이다. 안전기획실은 기존 안전경영실이 변경된 조직으로, 노 사장은 조선 계열사 전반에 걸쳐 안전 기능을 총괄한다. 안전경영실장은 그동안 대표이사가 겸직할 만큼 요직 중의 요직으로 꼽혔다. 노 사장이 단독으로 직책을 맡게 된 데에는 권 회장의 입김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노 사장은 이번 승진으로 노사 문제의 책임을 피하게 됐고, 오히려 막강한 권력을 잡게 됐다.
노 사장이 안전기획실장에 오른 시점은 현대중공업에서 올해 첫 사망사고(1월24일)가 발생한 지 사흘 만이다. 당시 현대중공업 측은 "그동안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노 사장 역시 "전에 관한 시설, 장비, 교육 등 모든 것을 기본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안전한 사업장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공수표에 그쳤다. 지난 2일 울산조선소에서 원인 미상 폭발사고가 발생해 하청업체 작업자 1명이 또다시 사망한 것이다. 올해 첫 사고가 발생한지 68일, 노 사장이 안전기획실장으로 선임된지 66일 만이다. 고용노동부는 우선 사망사고가 발생한 작업 현장에 대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일부 생산이 지연될 전망이다. 또 고용부는 사고 원인과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산 여부 등을 조사 중이다. 원청과 하청을 포함해 약 3만여명이 근무하는 만큼,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일각에서는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노 사장이 안전부문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직원 반발이 상당했음에도 불구, 사측이 강행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노 사장을 안전책임자로 전면에 내세운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는 흉흉한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대표이사나 경영책임자는 구속 등 강력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비(非)전문가인 노 사장이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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