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외람되지만 그 열기와 깊이, 날카로움에 비해 상대적으로 토론자들의 답변내용들은 미흡하거나 엉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마도 세미나의 시간적 제약이나 국내의 일천한 ESG전문성 현주소의 반증이 아닐까도 싶다. 지난달에 이어 이번 글에서도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ESG 관련 물음들에 대해 필자의 견해를 정리해 보았다.
◇ESG평가를 제품에 맞출 것인가? 경영 과정에 맞출 것인가?
이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둘 다 맞춰야 한다" 쪽이다. 즉 "평가 대상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ESG 친화적인지, 해당 기업의 경영 원칙과 방식 등이 ESG에 부합한지"를 입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둘 중 하나만 ESG친화적이라면 그것은 온전한 ESG기업이라 할 수 없다.
이 문제는 ESG투자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 전통적인 ESG평가와 투자는 '네거티브 스크리닝'에서 출발했다. 이는 다양한 섹터의 상장기업 중 술, 담배, 도박, 마약, 포르노 산업 등 이른바 '죄악 산업'들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모든 산업을 투자 대상으로 하는 전략을 말한다. ESG투자가 '윤리투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려 주는 대목이다.
전통적인 ESG평가는 '죄악 산업' 이외의 모든 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 가치중립적이다. 즉 해당 섹터나 제품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을 배제하고 해당 기업의 경영 원칙과 방식에만 초점을 맞춰 평가했다. 현존하는 대다수 ESG평가와 관련 프레임워크는 이 관점에서 확립되어 운영되고 평가된다.
ESG투자의 주류화가 촉진되면서 전통적인 죄악 산업들도 투자 대상에 포함되었다. 해당 산업 내에서 ESG 경영 최고기업을 선별하여 투자하는 이른바 '섹터 내 베스트 전략'이 그것이다. 이는 수익률 추구와 ESG 가치 추구를 절충한 일종의 '개량적 접근이자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전략을 둘러싸고 윤리투자 진영에서는 강한 비판이, 주류 투자 진영에서는 옹호의 목소리가 병존한다.
필자는 후자의 입장이다. 즉 ESG투자는 마약, 포르노 등과 같은 범죄 연루 산업들을 제외하고, 그 외의 모든 산업들이 투자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 하에서 해당 제품 생산의 전과정(全過程) 상 발생하는 ESG 임팩트와 부하량에 대해 평가하고, 아울러 해당 기업의 ESG 경영원칙, 방식 및 프로세스 등에 대해서도 입체적으로 평가해야 명실상부한 ESG평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하에서 'ESG 밈'은 모든 산업군에 확산 전파 흡수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하는 이치'에 부합한다.
레거시 에너지 업종인 석유 산업과 재생 에너지로 평가받는 2차 전지 산업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우선 석유는 ESG관점에서 부정적인 에너지원으로 평가받는다. 탄소배출의 주요 원인제공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전개발을 통해 석유를 공급하는 회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필자는 이 역시도 석유가 사용되는 여러 산업의 가치사슬 전 과정에서 ESG 임팩트와 부하량을 종합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당장은 난해하기에 불가능한 작업일지 모르지만 향후 ESG 평가 산업이 풀어나가야 할 과업이 아닐 수 없다.
알려졌듯 원유는 정제과정을 거쳐 휘발유, 등유, 경유, 중유, 나프타 등으로 분리된다. 이 '제품유'들은 자동차, 항공기, 선박 등의 연료로 쓰인다. 이 밖에도 석유는 각종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이중 나프타는 석유화학의 필수적인 기초 원료다. 나프타는 일정한 공정을 거쳐 플라스틱 등 합성수지와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 합성 제품들은 TV,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 스마트폰, 주택과 차량 내장재, 세제, 샴푸, 화장품, 약품, 각종 의료기기, 페인트 등 각종 문명의 이기들을 만든다. 우리가 입는 옷도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고어텍스 등 석유를 원료로 하는 합성섬유에서 나온다. 심지어 음식조차도 석유화학 기술로 만들어진 비료로 재배되어 우리들의 식탁 위에 올라온다. 비료가 없다면 수많은 인류가 기아로 죽어 갈 것이다.
이런 석유에게 누가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따라서 석유산업을 평가하면서 탄소배출, 환경 훼손이라는 부정적 효과와 석유로 인한 현대문명, 편익, 후생, 약품 및 의학 기술 등 긍정적 효과를 대차 대조하듯 균형 있게 평가하고 판단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인 2차 전지 산업은 어떠할까? 2차 전지는 전기자동차의 필수 불가결한 에너지원이다. 일반적으로 2차 전지는 ESG 진영으로부터 '탈(脫)탄소화'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제품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 덕분에 전기자동차 역시 ESG 친화적인 제품으로 분류된다. 글로벌 ESG 펀드들도 2차 전지와 전기차를 ESG 친화적 섹터로 분류하여 투자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461억 달러인 글로벌 2차 전지 시장은 2030년 3517억 달러로 8배가량 급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 생산과정 상에서 2차 전지 제품의 ESG 영향과 부하량을 평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2차 전지 생산을 위해서는 다량의 금속이 필요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금속을 6.2배 더 사용한다. 여기서 리튬, 니켈, 코발트, 희토류 등이 핵심적인 광물들이다.
이 핵심 광물 채굴과정에서 환경파괴와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한다. 전 세계 코발트 매장량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콩고에서는 채굴과정에서의 아동노동 문제, 인권 침해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리튬 채굴과정에서는 삼림이 훼손되고 수질 및 토양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인류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명목으로,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을 반(反) ESG적 방식으로 채굴하고 있다. 오염의 총량은 불변하고, 오염 발생 지역만 이동시켰을 뿐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2차 전지와 전기차 섹터가 친환경적이고 ESG 친화적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그 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제 모두(冒頭)의 질문으로 돌아와 글을 맺는다. ESG평가는 제품에도, 경영방식에도 공히 맞춰져야 한다. 전통적인 ESG 평가가 죄악 산업만 배제하고, 나머지 모든 섹터에 대해 가치중립적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섹터 생산의 전 과정상 발생한 ESG 임팩트와 부하의 총량을 측정해야 명실상부하다. 이러한 입체적 평가가 가능할 때 ESG평가는 ESG투자 자금의 물꼬를 제대로 틀어 지속 가능한 세계로 안내할 수 있을 것이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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