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은행 시장 완전 경쟁 체제로 전환" 신규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작업 추진할 듯
이복현 금감원장 "5대 은행 과점 체제 깨뜨려라"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이 형성한 과점 시장을 완전 경쟁 체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여·수신 등 은행 서비스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제공되도록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제도와 방안을 마련하자는 게 이번 주문의 골자다.
이 원장은 여·수신 시장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행사하는 5대 시중은행이 과점적인 게임을 하면서 높은 수준의 가격이 형성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모든 부담을 떠안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2019년 기준 제1금융권 시장 현황을 보면 5대 은행이 원화 예수금의 77%, 원화대출금의 67%를 점유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시장이 이들 은행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구조를 해소해야만 예대금리차 이슈 등을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완전 경쟁이 이뤄져야 가격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원장의 발언은 주요 은행이 직원에게 고액 성과급을 지급한 데서 비롯됐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은 총 1조3823억원으로 전년 대비 3629억원 늘었는데, 이를 놓고 정부는 '공공재적 성격'을 감안해 고통분담에 힘써달라고 연일 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英 '챌린저 뱅크' 주목하는 금감원···신규 인가 속도내나
금감원이 말 그대로 은행 수를 늘리려는 것이라면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당장 변화를 줄 수 있는 영역은 인터넷전문은행과 지방은행 정도다. 따라서 카카오·케이·토스뱅크에 이은 네 번째 인터넷은행 인가에 착수하거나 대전·세종·충남·충북 등 4개 시도의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에 힘을 실어주는 게 방법이 될 것으로 업계는 진단한다.
특히 금감원은 '챌린저 뱅크' 활성화에 성공한 영국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작년 11월 펴낸 보고서를 보면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은행의 시장 진입이 용이하도록 인가 체계를 개편해 '챌린저 은행'의 안착을 유도했다.
'챌린저 뱅크'는 영국에서 등장한 소규모 신생 특화은행을 의미한다. 기존 대형은행의 지배적인 시장영향력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아톰뱅크'가 대표적이다.
은행 시장 집중도가 높아지고 소비자 만족도는 떨어지자 2013년 영국 건전성감독청(PRA) 신은행스타트업(NBSU) 조직을 발족하고 새로운 인가 체계를 구축했다. 소규모 특화은행의 진입자본을 500만 유로에서 100만 유로로 낮추고, 인가 방법도 간소화했다. 설립 준비를 거쳐 본인가를 받거나 최장 12개월간 제한적인 영업만 이어가다가 조건을 갖추면 전체 은행업에 대한 허가를 받도록 하는 식이다.
그 결과 2022년 2월말까지 총 30개사가 신규 라이선스를 획득했고 인가 취소 판정을 받은 세 곳을 제외한 27곳이 지금까지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챌린저 뱅크는 모바일과 같은 디지털 유통 채널을 통해 저축·대출·보험·신용카드와 같은 소매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오프라인 채널이 없는 대신 저렴한 수수료 정책을 편다. 핀테크가 주도한다는 점에서 금융기관·산업자본 중심의 인터넷은행과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사업 구조는 우리나라의 카카오뱅크 등과 유사하다.
금감원도 이를 토대로 인터넷은행을 늘리거나 핀테크 업체의 금융업 진출 확대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외부에선 조만간 당국의 새 은행 설립 계획이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혁신·안정성' 담보 못하면 도태"···제도 개선도 숙제
문제는 새로운 은행을 만들어 시장에 안착시키기까지의 과정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은행업의 디지털화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데다, 금융회사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부분도 모두 챙겨야 해서다.
무엇보다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큰 숙제다. 비대면 거래 증가로 모든 금융사가 모바일 채널에 집중하는 분위기라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서비스와 플랫폼을 내놓지 못하면 출발부터 난항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금 확보도 마찬가지다. 최소 자본금을 낮춘다고 해도 현행 은행업 규제 속에 여·수신 등 영업을 이어가려면 일정 규모의 자금 여력을 유지해야 해서다.
앞선 인터넷은행 인가 과정에서도 '키움뱅크'를 비롯해 '소소스마트뱅크', '파밀리아 스마트뱅크'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이들 모두 혁신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담보하지 못한 탓에 고배를 마셨다. 상품 등 서비스 형태나 금융주력자를 배제한 주주 구성 등 이슈가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당국이 획기적으로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시장에 은행을 추가하려는 계획은 공회전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덧붙여 일각에선 새 은행이 과연 과점 구도를 깨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한다. 출범 후 순항을 거듭한 카카오뱅크도 총여신 시장점유율을 1.7%(2022년 6월말 기준, 한국기업평가)로 2018년 대비 0.9%p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시중은행과 비교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면서 "신규 인가가 여의치 않다면 5대 은행을 제외한 다른 곳에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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