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인플레이션 목표 웃돌아···시장 기대감 확대 선긋기"예금이 안정적 조달원 아니야"···디지털 뱅크런 대비 조언도부채 겪는 국가엔 "부채 구조 재조정···개혁 필요해"
"선진국의 사례에서 구조적 경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금은 더이상 은행들의 안정적 조달원이 아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연차총회에 참석 중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은행 통화정책 뿐 아니라 거시경제와 관련한 생각을 쏟아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국 금융 상황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고금리 더 오래 유지될 수도···금리인하 기대 선긋기
이 총재는 지난 3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진행된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인플레이션이 지난달 4%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좋은 소식이 있지만 여전히 근원인플레이션은 목표 경로치를 웃도는 상태"라며 "지금 이 시기에 피봇(통화정책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은은 지난 2월과 4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그간 가파르게 올렸던 기준금리 효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2021년 8월부터 긴축을 시작해 지난 1월까지 기준금리가 3.00%포인트(p) 오른만큼 금융안정 상황과 경기 회복 등을 복합적으로 보겠다는 의미다.
같은 날 열린 거버넌스 세미나에 패널 토론자로 나서 "아시아의 경우 인플레이션이 낮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목표치보다 높은 국가들이 있다"며 "언제 정책을 전환할지 말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인플레이션이 많이 높은 상태라면 이를 조정해 나중에 전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한국의 경우 4월 물가상승률이 3.7%로 낮아졌지만 근원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높다면서 "선진국의 긴축정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시장 기대보다 고금리가 오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4분기 경제가 역성장(-0.4%)한데 이어 올해 1분기(0.3%) 성장률도 부진해 한은 통화정책 방향이 전환(피봇)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특히 물가가 한은의 예상경로대로 완만히 낮아지는 추세여서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연내로 전망하는 관측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지난달 11일 금통위에서 동결을 결정한 이후 기자간담회에서도 "물가안정목표에 완전히 수렴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시장의 확대 해석을 경계한 바 있다.
이 총재는 또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인 1.6%를 소폭 밑돌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가 늦어지는 영향 때문"이라며 "한국이 지난 20~30년 사이 일본을 따라잡은 것처럼 중국 역시 한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우리가 지난 20년에서 30년 사이에 일본을 따라잡은 것처럼 중국도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이제는 중국과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려 하기보단 가치사슬의 수준을 높이고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구조개혁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금리차로 인한 환율 문제와 관련해선 "지난해 미국이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네 차례 하면서 강달러 현상이 많은 국가에서 나타났다"며 "다만 미국과 유럽의 금융 안정 문제를 감안할 때 (기준금리의) 빠른 인상을 지속할 수 없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긴축 사이클 역시 곧 끝날 것으로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미국과 유럽 내 은행 위기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은행 상태는 어떻게 평가하나는 질문에 이 총재는 "미국과 유럽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사태는 시장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 시장은 채권 만기가 (미국에 비해) 짧은 편이며 변동금리 위주의 시장으로 구성됐다"고 설명했다.
예금은 안정적 조달원 아니야···부채 문제에 대한 조언도
이 총재는 국내 은행들이 맞딱트린 새로운 위기에 대한 언급도 내놨다. 그는 "최근 금융스트레스가 대두되고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은 금융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예금이 더 이상 안정적인 자금조달원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이 파산 과정에서 발생한 뱅크런 사태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한국은행이 새로운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한국의 경우, 디지털은행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발달됐기 때문에 빠른 뱅크런에 대비해야 한다"며 "금융규제나 감독 체계에 있어서 긴급자금조원이나 예금에 대한 관리감독을 보다 탄탄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과 관련해 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고 진단하면서 미국 달러화 강세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이어질 수 있는데, 아시아 국가들이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은 통화·재정 정책에 많이 의존해 경제를 개혁했다"며 "그런데 우리는 이를 일시적으로 이용하더라도 성장률에 대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선진국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채 문제를 겪고 있는 국가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이 총재는 "부채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마도 거시정책의 운영, 그리고 미시 정책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부채 구조의 재조정이 필요한 경우 고통을 감수해야 하며 일부 정치적 손실이 있더라고 개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성공 경험에 대해서는 낮은 부패 수준과 건전한 거시경제 정책, 초기의 자본통제, 유능한 공무원 등의 요인을 꼽았다.
그는 "과거 한국 정부는 자본유출에 대해 다소 엄격히 관리했고, 그것이 저축분을 활용한 인프라 개발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다자주의 기관으로부터 지원이 있었고 부패가 적었기 때문에 현명하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뉴스웨이 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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