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처럼 보이는 중동의 과감한 투자 행보는 사실 치열한 생존전략이다. 다가올 석유 고갈과 친환경에너지 전환 시대를 대비해 석유 외에 중동 내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다.
미래 전략에 단연 앞서있는 곳은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다. 두바이는 세계 교통의 허브로 완전히 자리 잡은 데다 두바이 부동산은 전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자금의 세탁소 역할을 하고 있다. 두바이는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10년간 1경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카타르는 스포츠 등 엔터테인먼트와 언론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 아시안게임을 연달아 유치한 것도 그 일환이다. 아랍권을 대표하는 방송사인 알자지라의 거점이 카타르에 있고 중동지역 내 웬만한 스포츠 경기 중계권을 독점하고 있는 방송사인 beIN도 카타르에 있다.
중동의 패자를 자처하는 사우디의 거침없는 행보도 이런 경쟁 도시와 국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복심이 숨겨져 있다.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친환경과 재생에너지, AI를 강조하는 것은 아직 이 분야를 선점하는 중동 내 국가나 도시가 없다는 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두바이와 아랍에미리트 연방을 이루고 있지만 경쟁 관계이기도 한 아부다비나 샤르자도 같은 맥락에서 디지털, AI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연방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토호국으로 꼽히는 샤르자가 최근 대외협력과 국제무대 진출에 적극적인 것만 봐도 중동이 얼마나 포스트 석유 시대를 걱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막대한 투자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과 중국의 'BIG 2'의 총성 없는 경쟁을 비롯해 중동에서 발주하는 각종 수주전에도 세계 유수의 기업이 달려들고 있다. 미국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전격 방문해 관계 정상화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이에 질세라 중국도 중동과의 밀착 관계를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국제 경쟁에 치열하게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말 빈살만 왕세자가 방한했을 때 정부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왕세자를 극진히 대접했고, 재벌기업의 총수들도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기 위해 총출동했다. 지난 12일 아랍에미리트(UAE)의 토호국 중 하나인 샤르자의 셰이크 사우드 왕자가 방한해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 대표와 만나 AI 관련 포괄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우리나라는 건설 분야나 원전, 반도체, 방위산업에서 상당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건설‧플랜트‧토목 분야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1970년대부터 꾸준히 성과를 내는 분야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엔 우리나라가 가격경쟁력에서 엄청난 우위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고품질의 시설을 빠르게 짓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가진 강점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인건비가 치솟고 중동 근무를 기피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반면 다른 국가와 기업들은 중동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나서고 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사업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정부가 주도해서 우리나라 기업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 각 분야 진출을 노리는 '원팀 코리아'도 좋은 전략이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국내를 대표하는 그룹사도 중동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총수가 현지를 수시로 찾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얼굴을 자주 비추고 의지만 가지고 있어서는 부족하다. 이젠 철저한 수주전략과 공정관리, 분석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고 리스크를 미리 내다보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현장에서 결재하고 간이영수증을 사무실 한편에 대충 모아뒀다가 한 번에 처리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관행부터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중동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을 보면 중동의 철저한 계약주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각종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빈번하다.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 tvN의 예능프로 '장사천재 백사장'이 모로코에서 곤혹을 치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정치와 국제경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치열한 전쟁터다. 우리의 수준과 준비가 국제적이어야 국제무대에서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뉴스웨이 장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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