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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비와 유리천장

오피니언 기자수첩

바비와 유리천장

등록 2023.07.28 09:01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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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er
영화 '바비'에서 '바비랜드'의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핑크색 바비랜드에는 대통령 바비·의사 바비·변호사 바비·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바비·퓰리처상을 받은 기자 바비 등 바비가 지배하는 세상이 펼쳐진다. 최고경영자(CEO) 바비도 있을 것이다.

바비랜드에서 켄은 그냥 켄이다. 바비가 눈길을 줄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항상 바비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자신감은 없다. '전형적인 바비'가 인간 세상인 '리얼월드'로 떠날 때는 함께 가자는 말도 못 한다.

리얼월드에서 바비는 바비의 제조사인 마텔의 최고경영진들과 만난다. 바비는 여성 임원을 찾지만 남성들뿐이다. 마텔의 CEO로 나오는 윌 페렐은 말한다. "우리는···한 명 이상의 여성 CEO가 있었어!"

몇 년 사이 ESG 경영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기업들은 ESG 경영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유통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ESG 경영에서는 고용 평등과 다양화, 인권과 성평등이 강조된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여성 임직원 비율이나 여성 이사 비율, 여성 경영진 비율 등이 수록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유통 기업들은 여성 고객이 대부분인 소비재를 취급하면서도 정작 여성 관리자는 적다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았다. 최근 들어 CEO나 요직에 올라가는 여성 임원이 꽤 눈에 띄기는 했지만, 여전히 임원 비율은 턱없이 낮다.

기삿거리를 찾다가 주요 유통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보게 됐다.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 비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확인하면서 자연스레 영화 바비가 떠올랐다. '아 이게 리얼월드구나!'

신세계의 전체 임직원 수 현황을 보면 지난 3년간 여성 임직원 수는 남성 임직원 수의 2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중간 관리자 여성 비율은 ▲2020년 17.9% ▲2021년 17.5% ▲2022년 19.4%로 집계됐고 여성 경영진 비율은 ▲2020년 6.9% ▲2021년 11.8% ▲2022년 17.5%이었다.

현대백화점의 최근 3년간 여성 임직원 비율은 56~58% 수준이었다. 그런데 여성 임원 비율은 ▲2020년 11.4% ▲2021년 10.9% ▲2022년 10.4%로 나타났다. 이마트와 롯데쇼핑은 여성 임직원 비율은 공개했지만, 임원 비율은 기재하지 않았다.

편의점 업계는 남성 임직원이 여성 임직원보다 많았다. GS리테일의 전체 임원 중 여성 임원 비율은 ▲2020년 0% ▲2021년 9% ▲2022년 14%였다. BGF리테일은 총관리직 대비 여성 관리직(직책자+실무관리자) 비율이 ▲2020년 1.1% ▲2021년 1.0% ▲2022년 1.4%에 불과했다.

육아휴직 등으로 퇴사하는 여성이 많기 때문 아니냐는 주장도 힘을 받긴 어렵다. 백화점 업계는 자발적 퇴사자 수와 비자발적 퇴사자 수를 고려하더라도 여성 임직원 수가 더 많은 편이고, 편의점 업계는 애당초 여성 임직원 수가 남성 임직원 수보다 더 적은 만큼 퇴사자도 그보다 적다.

눈에 띄는 몇몇 사례를 들어 유리천장이 깨졌다 혹은 유리천장이 얇아졌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온건한 이들은 "그래도 바뀌고 있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또한 거짓이 아니다.

문제는 리얼월드의 인간들이 몇 없는 여성 임원의 사례를 크게 부풀리고 마치 진짜 대세인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영화 바비에서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를 보여주며 여성 인권에 기여해왔다'고 바비들은 믿고 있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 수치를 보면,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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